[베이징에서] 중국의 ‘빨리빨리병’
요즘 중국 베이징(北京)은 조용하다. 1주일의 춘절(설날) 연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마주쳐야 했던 인파는 온데간데 없다. 공사판에서 열심히 일하던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의 노동자)들도 대부분 귀향했다. 물론 춘절때마다 사원이나 공원에서 열리는 장터인 먀오후이(廟會) 정도는 예외적으로 흥청거리지만 거리는 인적이 드물 정도다.
오랜만에 텅텅 빈 베이징 거리를 나섰다가 도심에서 가장 넓은 창안(長安)가 대로변에 짓고 있는 LG 쌍둥이 빌딩 건설 현장을 지나쳤다. LG 중국 본사가 짓고 있는 쌍둥이 빌딩은 2002년 8월 착공해 오는 8월 준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정이 한창이다.
이 빌딩 바로 옆에는 신화(新華)보험이 지은 새 사옥이 자리잡고 있다. LG보다 공사는 늦게 시작했지만 지난해 연말 준공을 했다. 중국 건설업계 관행에 따라 정식 허가를 받기도 전에 미리 공사를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너무 서두르다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번은 아랫집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올라왔다. 부엌의 싱크대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더니만 아랫집으로 흘러간 모양이다. 이후 배수를 할 때는 늘 신경을 쓰고 있다.
어떤 주재원은 새 아파트를 구입해서 입주했으나 화장실이 막혀 몇번이나 아파트 관리회사와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또 다른 주재원은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보일러가 터져 방마다 물바다가 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들이 입주한 아파트는 모두 ㎡당 분양가가 5,000위안(약 75만원)~1만위안(1백50만원)이 넘는 고급형이다. 이들 아파트는 겉은 번듯하지만 실제 내부는 실용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배관을 비롯해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베이징은 공사중이라고 할만큼 곳곳마다 번듯한 빌딩이나 아파트가 줄을 이어 올라가고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왕징(望京) 일대에서만 신규 분양 아파트가 10곳을 넘을 정도다. 새로 지은 아파트를 지나치면서 “저곳은 무엇이 부족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굳이 건설 공사만이 이런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하다가 도중에 느닷없이 끊길 때가 있다. 접속 속도도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느리다. 오죽하면 시원하게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 방학때마다 비행기 타고 귀국하는 유학생마저 있을까. 도로 맨홀이 고르지 않아 덜컹거리는 바람에 운전자들이 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불편은 개발도상국인 그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는 단기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생겨나는, 압축성장의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질은 그렇지만 아무튼 양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경제 강국에 끼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런 꿈을 이루려면 질 높은 인력 확보와 서두르지 않고 내실을 다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자(孔子)는 지방 행정 책임자로 나간 제자 자하(子夏)가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무욕속(無欲速). 무견소리(無見小利).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견소리즉대사불성(見小利則大事不成)”이라고 말했다. 너무 서두르면 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온 뒤 죽순이 돋아나는’ 격으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발전의 상징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실을 다지지 못할 경우 부실 공사 우려가 높다. 우리가 개발독재 시절 이미 경험했던 바이기도 하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의 정신은 중국인들은 물론 우리도 늘 되새겨야 하는 교훈이다.
〈홍인표 특파원 ipho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