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자살’ 는다

설연휴 동안 지병이나 경제난 등을 이유로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어버이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외롭게 홀로 지내다 숨진 사실이 잇달아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노인복지 기반은 아직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까닭에 노인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것은 사실상 ‘고려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식에게 짐 되기 싫다”=설 이튿날인 10일 오후 8시쯤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모텔에서 투숙객 조모씨(63·여)가 극약을 마시고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주인 이모씨(60)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씨가 전날 강서구 화곡동의 딸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한 뒤 이 모텔에 투숙,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10여년 전 이혼하고 3남4녀를 떡볶이·풀빵 장사로 키운 조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수백만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안하다. 엄마 노릇 못해서. 내가 죽더라도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내용의 유서를 자녀들 앞으로 남겼다.

이에 앞서 6일 오후 1시18분쯤 서울 강남역 지하철 역에서는 이모씨(71)가 역내로 진입하던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소 후두암을 앓던 이씨는 아들과 함께 살았으나 최근 건강 악화로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현실에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쓸쓸한 생의 마감=10일 오후 11시쯤 정모씨(24·대학생)는 설이 됐는데도 가족을 찾아오지 않는 아버지(52)를 찾아갔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아버지를 부둥켜 안은 채 통곡해야 했다. 평소 간경변 등을 앓으면서도 서울 종로구 익산동의 한 냉열기 수리점 안에서 살아온 아버지는 이날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또 이날 오후 1시쯤에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벽산빌딩 뒤편 쪽방촌에서 혼자 살던 김모씨(65)도 방안에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오랫동안 자녀들과 연락이 끊어진 채 생활해오면서 지병을 앓아왔고 최근 음주가 심해졌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에 따라 신체 기능이 급격히 약해져 숨진 것으로 보고있다.

같은 날 낮 12시10분쯤에는 서울 잠수교 북단 하류 50여m 지점에서 ㅂ씨(54·여)가 익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평소 우울증에 시달려온 ㅂ씨가 최근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했다는 가족 진술로 미뤄 신병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한 것으로 보고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안상훈 교수는 “과거엔 노인부양을 가족공동체 안에서 해결했지만 지금은 국가의 몫이 됐다”며 “개인은 노동력이 있을 때 국가공동체에 기여하고, 국가는 이들의 복지를 적극 해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주·김동은기자 fai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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