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꿈틀…] 택배시장 르포… ″하루 19시간 일 쉴틈 없어요″
기사입력 : 2005.02.06, 17:52

“지난 추석때만 해도 이렇게 바쁘진 않았는데…. 경기가 약간 보이는 것 아닙니까?”

10년 경력의 베테랑 택배원 신종대(45)씨는 설을 앞두고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꾸러미가 다소 늘어난 것 같아 기쁘다며 환히 웃어보였다.

기자는 설을 앞두고 명절 경기를 체험해 보기 위해 5일 하루 동안 신씨의 택배차에 동승,그의 담당구역인 서울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를 함께 돌았다.

서초동에서 주부 한모(48)씨는 보자기에 곱게 싸인 한과세트를 전달받고는 “작년에 너무 힘들어하는 동서를 조금 도와줬더니 내외가 선물을 보냈다”며 “어려워할까봐 아직 전화도 안했는데 이렇게 챙겨줄 줄 몰랐다”고 웃었다. 정성들인 선물을 받아들며 고마워하는 모습에 기자의 마음도 훈훈해지는 듯했다.

방배동 모 아파트에서 한과세트를 받아든 김모(36)씨는 수령증에 사인을 한 뒤 “아저씨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신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함박웃음을 담은 얼굴로 돌아선 신씨는 곧장 같은 아파트 7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는 “시간당 10개 이상의 선물을 전달하려면 단거리 선수처럼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신씨가 근무하는 서울 양재동 한진택배 강남지점에 들어서는 순간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고에 가득 쌓인 택배 물량과 이를 분류하는 바쁜 손길이었다. 비상근무태세에 들어간 이 지점에선 요즘 하루 2만 박스 내외의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120명 전직원이 매달려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해도 밤 11시가 넘어야 끝난다. 유광기 지점장은 “작년 설에 비해 물량이 10% 정도 늘었다”면서 “극심했던 불황이 끝나려나보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물량도 늘었지만 선물가격대도 올랐다. 신씨는 “지난 2년간 유행했던 참치캔이나 햄세트 등 2만원대 이하 저가상품이 줄어들고 정육 곶감 한과 등 5만원대 상품이 늘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택배차에 실린 100여개의 물품 중 70%가 곶감 한과 버섯 생선 등 비교적 비싼 상품들이었다.

부유층 밀집지역은 택배차 행렬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방배동의 한 빌라촌 경비원 이모(54)씨는 “이곳에는 외환위기 당시 명절에도 선물배달이 많이 됐던 곳”이라며 “올 설엔 택배차가 더 자주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는 “직장동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서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도 택배주문이 작년 추석때보다는 늘어난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반면에 이해찬 국무총리가 독려를 했는데도 공무원들간의 선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신씨는 “누가 어디로 이사갔는지 알 정도로 이곳을 잘 알지만 아직 이름 있는 공무원에게 배달한 공무원의 선물은 보지 못했다”면서 “공무원사회는 아직 움직이기는 힘든 모양”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쯤 도착한 곳은 전직 야당총재의 집. 고향에서 올라온 조그만 생선세트가 전달됐을 뿐이다.

밤 10시반 신씨의 마지막 택배를 받아든 주부 이모(44)씨는 “기대도 안했는데”라고 반색을 하면서 “나도 이웃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겠다”고 웃었다.

강준구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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