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워도 돈 때문에”…설에도 귀향 못하는 조선족, 노숙자들
기사입력 : 2005.02.06, 20:14

"한국에 나와있는 (조선족)사람들은 모두 생이별한 이산가족과 같습니다. 이맘때면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해지지요."

6일 오후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는 주일 예배를 보러온 조선족 동포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인 듯 예배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4년 전 지린성에서 왔다는 최모(38)씨는 "설은 중국에서도 가장 큰 명절이라 지방에 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며 "이즈음엔 고향 생각에 일손이 안 잡힌다"고 말했다.

민족최대 명절인 설을 맞았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나 가난에 떠밀려 거리로 나온 노숙인들,남을 위해 연휴를 반납한 사람들….

특히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기대 속에 우리나라로 건너와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조선족 동포의 경우 설이나 추석 등 큰 명절 때면 가족 생각이 각별해진다. 연변 출신인 김모(35)씨는 3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에 건너와 식당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요즘 같은 때면 가족들 생각에 하루에도 몇번씩 귀국 충동을 느끼곤 한다. 김씨는 "고향에 부모님과 아들 딸이 살고 있는데 오늘 아침 안부전화를 했다"며 "언제 오느냐며 보채는 아들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울먹였다.

서울조선족 교회관계자는 "한국의 중국 동포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쓴 비용과 가족들의 생활비 때문에 몇년이 지나도 귀국 한번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 교회는 오는 10일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인기가수 등을 초청해 '2005년 중국동포를 위한 설날 대잔치 행사'를 열 계획이다.

길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인에게도 설은 찾아오지만 고향이나 가족을 만나지는 못한다. 서울역 3층에서 만난 강모(42)씨는 "대구에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고 있지만 무슨 낯으로 고향에 내려가겠느냐"며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를 못챙겨 너무 죄송할 뿐"이라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역 노숙인들은 오히려 귀성객이 몰리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철도 공안이나 인근 백화점 경비원들과 실랑이가 더 잦아졌다. 일부는 선물을 한아름 든 귀향객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시는 63개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2298명을 위해 1인당 1만원씩 설 비용을 지원했다. 서울 송림동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설 당일인 9일 50여명의 노숙인들이 모여 떡국과 과일을 나눠 먹는 행사를 계획 중이다.

김민호기자 alethe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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