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간 끌어온 이혼협의 마침표 김미화, 이혼후 첫 심경고백

“크나큰 아픔 겪었지만 다시 서야죠. 저를 믿어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웃을 겁니다.”



개그우먼 김미화가 이혼의 아픔을 딛고 힘겹게 다시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7일 협의 이혼으로 19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그녀. 김미화는 “행복해지고 싶었다”는 말로 팬들의 이해를 구했다.



“두 딸 키울 수 있게 돼 감사해요”

무명시절부터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방송인으로서 생체기 하나 없는 순탄한 길을 걸어온 개그우먼 김미화. 그녀는 늘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만을 전했다. 웃음 보따리를 양어깨에 이고 다니는 탓에 그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워낙 천성이 밝은 사람이긴 하지만 짙고 어두운 이혼의 그림자로 혹여 우울한 모습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편안한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가벼운 듯 웃는 낯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결혼생활 19년만에 파경, 합의이혼한 개그우먼 김미화. 지난해 4월 남편 김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뒤 꼭 9개월만이다. 



“본의 아니게 걱정 끼쳐드려 팬들에겐 정말 면목이 없어요. 십수년을 고민해온 문제였어요. 갑자기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혼 앞에 오히려 더 담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결론은 나 있던 거니까. 한동안은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걱정도 많이 됐는데 정리가 대체로 잘 돼 다행이에요. 저한테는 아이들이 굉장히 소중하거든요. 부모가 계속 안 좋은 모습 보이는 것도 아이들한텐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싶어 하루 빨리 마무리 지어졌으면 했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원하던 아이들을 제가 키울 수 있게 돼 결과에 만족해요. 서로 한발짝씩 양보해 완만하게 합의를 봤습니다.”



언제나 밝고 당당한 모습의 김미화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이혼’ 앞에서만큼은 씩씩할 수 없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두려워 ‘참고 살자’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는지 헤아릴 수 없다. 아이들부터가 걱정이었다. 정작 자신이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기에 내 아이들만큼은 같은 전철을 밝게 하기 싫었다. 이혼이 내 앞날에 혹시라도 걸림돌이 되면 어쩌나 걱정도 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가족 어느 한사람 행복한 사람이 없더란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김미화는 무엇보다도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부모라고 맨날 싸우기만 하고 괴로워만 하니 이런 모습 아이들에게 길게 보여 좋을 게 없겠더라구요. 이것저것 째다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남도 중요하지만 나도 소중한데 나를 잊고 살았구나, 나를 버리고 살았구나, 주로 남한테 보여지는 인생을 살았구나’ 싶으니까 미치겠데요. 누군가는 ‘참고 살지’라며 손가락질할지 모르겠어요. 물론 사람이 저마다 생각이 다른 거니까 욕하시는 분들 이해를 못하는 바도 아니에요. 하지만 전 참 오래 참았다 생각해요.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어렵사리 이혼을 결심한 뒤에도 자기와의 싸움은 계속됐다. 무엇보다도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한없이 움츠러드는 자신부터가 감당이 안되더란다. 흔들리는 엄마의 모습에 혹여라도 상처받을까 아이들을 잠시 미국 이모집에 보냈던 적도 있다. 나를 다잡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는 그녀.



“이혼한다고 기자회견 가진 직후 한달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목욕탕엘 가도 예전에는 반갑게 인사하던 아주머니들이 자꾸만 절 이상한 시선으로 보며 피하는 것 같은 거예요. 한번은 식당엘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아이구, 김미화씨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라며 골방으로 절 안내한 적도 있어요. 나름 주인 양반은 절 배려한다고 배려한 건데 골방에 앉아 있으니 그렇게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 없데요. ‘내가 이거 진짜 엄청난 죄를 지은 건가’ 생각 들면서 움츠러들기 시작하는데 당시엔 정말 앞이 다 깜깜하더라구요. 계속 이런 식이면 내가 어떻게 살지 싶은 게… 그래도 그간 제가 잘못 살진 않았나봐요. 많은 분들이 제게 격려의 말을 해주셨고, 또 용기를 북돋워주셨거든요.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 분들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행복하게 잘 살아야죠.”



한땐 남편을 죽일 듯이 미웠했던 적도 있다. 원망도 컸다. 하지만 이젠 그 어떤 미움도 그녀의 마음 속엔 남아있지 않다.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하면 언제든 보게 할 생각이에요. 저 역시도 비록 이렇게 갈라서긴 했지만 아이들의 아빠로, 친구처럼은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예전에 가졌던 미움 같은 건 제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다 사라져버렸어요.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제가 남편과 헤어졌다고 아이들에게서까지 아빠를 빼앗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혼협의 과정 중에 따로 살면서도 아빠에게 아이들을 두 번 정도 보낸 적이 있어요. 이젠 저도 저지만 그 사람도 행복해져야 해요. 아이들의 아빠니까요.” 



김미화는 요즘 그 어떤 때보다 밝게,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어젠 ‘말아톤’을 봤는데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했더라구요” 이렇듯 이젠 혼자서도 극장을 다 찾을 정도다. 김미화는 요즘 압구정동 모 아파트에서 친정 어머니,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마음 고생이 심해 살이 쪽 빠졌겠다 싶겠지만 어머니의 각별한 챙김 덕에 체중도 3-4kg나 늘었단다.



“이게 다 어머니 때문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다 좋은데 식고문을 그렇게 해요. 라디오가 늦게 끝나다보니 집에 들어가면 밤 10시 정도 되거든요. 그러면 그 시간에 꼭 밥을 먹으라며 절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히시요. 이런 게 행복 아니겠어요. 여자 넷이 한집에서 함께 사는데 서로에게 다 잘됐어요. 어머니가 사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많이 힘들고, 또 외로워하셨었거든요. 저희 딸들도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서 컸기 때문에 안정감을 찾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구요. 저 또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시니 안심하고 바깥일을 볼 수 있잖아요. 이젠 정말 행복하게 잘 살 일만 남은 것 같네요.” 



지난 몇년간 이어진 고단한 삶으로 인해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씩 다시 채워갈 차례. 앞으로는 사랑하는 두 딸과 함께 웃을 일만 가득하길 바래본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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