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아우슈비츠
기사입력 : 2005.01.27, 18:54

‘구스타프 바그너는 고문과 살해가 기쁨이었던 죽음의 천사였다.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점심을 거를 정도였던 그는 도끼나 삽으로,아니면 맨주먹으로 살인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갓난아이들을 엄마의 품에서 낚아채 손으로 찢어죽였다’.(‘히틀러와 홀로코스트’,송충기 역)

이 ‘인간의 탈을 쓴 야수’ 바그너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소비부르 집단학살수용소 부소장이었다. 소비부르,트레블링카,벨제크,마이다네크,그리고 아우슈비츠(또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유대인은 물론 인류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름들.

생각하면 때로 인간이라는 게 스스로 부끄럽지만 인류 역사에서 ‘인종 청소’ 등 대량 학살은 드물지 않다. 다만 그 중에서도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는 몇 가지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는 지적을 받는다. 우선 희생자들의 고통과 가해자들의 만행 측면에서 그때까지 어떤 전례도 찾을 수 없다는 점. 바그너의 경우는 그저 ‘사소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특징은 효율적인 학살을 위해 ‘일관공정식’ 대량 살인을 체계화하는 한편 이를 위해 강력한 근대국가의 모든 기구와 재원,근대 공학,과학 및 의학적 전문 기술을 총동원했다는 점. 실제로 대량 학살 메커니즘에는 바그너 같은 직접적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법률가,의사,회계원,사무원,철도 노동자 등 ‘평범한’ 독일인 수만명이 연루돼 있었다. 또 대량 살인의 체계화는 유대인 체포,수용소 이송,‘최종 해결’ 과정에서 최신식 펀치카드 방식을 도입하는가 하면 유대인이 겪는 고통의 정도를 통계화할 만큼 고도화돼 있었다.

이런 대량 살인의 핵심이 예의 집단학살수용소였다. 옛 소련의 굴라그와도 달리 강제노동 등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살인을 위한 곳.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게 독가스 살해와 함께 요세프 멩겔레의 생체실험 등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사망자 수 최소 110만명,최고 400만명.

바로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60주년 기념식이 27일 열렸다. 참석자들은 이스라엘과 독일의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과 정부 대표단,그리고 수용소 해방의 주역 옛 소련 군인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등 독일 지도자들이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을 맞아 참회와 함께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강조한 것을 보면서 난징 학살과 731부대의 생체실험 등 홀로코스트 못지않은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발뺌에만 급급한 일본 정부와 지도자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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