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트라이커’ 이젠 박주영

 

차범근(1970년대)→최순호(80년대)→황선홍(90년대)→박주영?(2000년대)

시대별로 한시대를 풍미한 한국축구의 간판 킬러들이다. 고려대 1년때(71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79년부터 11년간 독일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현 수원삼성 감독. 그는 국내보다는 독일에서 훨씬 코리안의 이름을 날렸다. 분데스리가 성적은 308경기 98골.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 신기록. 독일 언론은 차범근을 향해 ‘황색폭격기’라는 별병을 붙이며 아시아선수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도 독일 등 유럽에서 ‘차붐’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올드팬들이 적지 않을 정도다.

차범근에 이어 80년대 ‘코리안 킬러’의 바통을 이은 선수는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기술고문.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청소년대표로 활약했던 최고문은 80년에는 성인대표까지 겸했다. 그리고 그해 아시안컵에서 4경기 연속골(7골)을 뽑아내며 당당히 득점왕에 올랐다.

해외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차범근 감독과는 달리 최고문은 청소년 때부터 일찌감치 주목을 받은 ‘될성 부른 떡잎’이었던 셈이다.

90년대 킬러는 단연 황선홍 전남코치다. 88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뒤 94년 아시안게임 득점왕에 올랐고 월드컵 무대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모두 4차례 출전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에 월드컵 첫승을 안긴 폴란드전 결승골의 주인공. 99년 일본프로축구(J리그) 득점왕(24골)까지 등극, 한국의 힘을 떨쳤다.

2000년대 한국킬러의 계보를 이을 선수는 누굴까. 안정환(요코마하), 이동국(광주)이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대표팀을 이끈 간판 공격수. 한국선수 최초로 이탈리아 프로축구(세리에A)를 경험한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때 2골을 넣으며 일약 월드스타로 도약했다. 그리고 98년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한 이동국도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0년 아시안컵에 잇달아 출전하며 2000년대를 이끌 재목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킬러가 되기에는 왠지 부족한 점이 있다.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대표팀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이동국은 2002년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하는 결정적인 결격사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가 막 반환점을 돈 가운데 축구팬들의 눈은 쉼없는 골행진을 벌이는 청소년 킬러 박주영에게 쏠리고 있다. 출중한 실력을 갖춘 박주영은 벌써부터 한국축구의 고질병인 골결정력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약관의 나이지만 벌써부터 대표팀 발탁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는 아직도 5년여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앞으로 2005년 세계청소년대회, 2006년 독일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남아공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대회가 변함없이 열린다. 그리고 안정환·이동국·박주영 등 2000년대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스타들도 변함없이 그라운드를 누빌 것이다. 누가 과연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킬러가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어린 나이에 믿기 어려운 출중한 기량에다 미래에 대한 무한한 발전 가능성까지 갖춘 박주영이 0순위 후보임에 틀림없다.

〈김세훈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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