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명품이 주어진다면 금상첨화일 터. ‘첼로 마라’는 명품 중의 명품이자 연주자들의 ‘꿈의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실제 명기 ‘마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명품 바이올린이 300여년에 걸쳐 5개국을 떠돌며 다양한 연주자들을 만나는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논픽션판이자 첼로 버전쯤 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린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90평생 바이올린 외에도 첼로와 비올라,하프,기타 등 1100여개의 악기를 만들었다. 그중 650개 정도가 현재까지 전하며,남아있는 50대의 첼로 중의 하나가 바로 ‘마라’다.
1711년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마라는 올해로 294세. 잘 만들어진 현악기는 400년 동안 진화하고,또 400년 동안 퇴화하므로 아직 전성기를 100년이나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라의 몸값은 무려 500만 달러(한화 60억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첼로다.
마라의 ‘인생유전’ 역시 ‘레드 바이올린’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마라’라는 애칭은 첫 주인인 첼리스트 조반니 마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 그를 시작으로 마라는 영국 왕궁과 이탈리아,상트페테르부르크,부에노스아이레스,빈의 화려한 무대에 등장했고,그의 주인 목록에는 영국 왕 조지 4세도 올라있다.
첫 주인인 마라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술과 여자,사치에 빠졌던 프로이센의 궁정악사. 돈이 궁해지자 마라를 팔아버리지만 그가 모차르트와 하이든,괴테 앞에서 마라를 선보임으로써 이 첼로의 명성이 시작되었다. 마라는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페체에게 넘겨진 후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톤퀴스트,영국인 앤서니 피니를 거쳐 아마데오 발도비노의 소유가 되지만 1954년 마라를 싣고있던 배가 침몰해 수장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다행히 뭍에 닿아 구조되고,9개월 동안 700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다시 무대에 서 유명세를 더했다.
마라의 현재 주인은 오스트리아의 첼리스트 하인리히 시프. 흥미롭게도 시프가 마라를 손에 넣기 전에 쓰던 1757년산 과다니니는 지금 장한나의 것이 되었다.
책은 이밖에 기상이변이 나무를 단단하게 했다거나 목재에 뿌린 살충제가 음향을 개선시켰다는 등 수많은 학자들이 정교하면서도 풍부한 음색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골몰해왔지만 아직까지 정설로 밝혀진 것은 없다고 전한다. 그저 이런 추측들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명성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데 기여했을 뿐이라는 것.
마라를 거쳐간 많은 연주자들은 사라지고 없으나 300년을 버텨온 마라의 음색은 여전히 많은 음악팬들을 매료시키고 있으니,결국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 셈이다. 저자는 11년 경력의 아마추어 첼리스트이자 작가(볼프 본드라체크·이승은 옮김·생각의 나무·1만2000원).
권혜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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