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땅’神향해 몸 낮추다

 
앙코르유적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앙코르와트 사원이 전부인 줄 안다. 앙코르 유적지엔 지금까지 발굴된 사원만 1,000여개에 달한다. 건축기법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제각각 다르다.

#바욘사원의 앙코르의 미소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안내되는 곳은 대개 앙코르 톰이다. 앙코르 톰이란 큰(톰) 도시(앙코르)라는 뜻이다. 사람의 얼굴을 새겨놓은 남문 앞의 다리는 머리가 7개나 되는 뱀을 붙잡고 있는 수많은 석상으로 장식돼 있다. 석상의 표정과 기묘함 때문에 꼭 인간의 땅에서 신화의 땅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남문을 넘어서면 바욘사원이다. 바욘은 12세기말부터 13세기초 자야바르만 7세가 지은 사원. 처음엔 힌두사원이라고 알려졌지만 나중에 불교사원으로 밝혀졌다. 자야바르만 7세는 스스로를 관음부처로 생각했다고 한다. 54개의 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36개만 남아 있다. 탑마다 4면으로 관음부처의 얼굴을 새겼다. 관음불은 모두 216개나 된다. 각기 다른 표정을 가진 부처의 모습이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섬뜩하다. 사원 어느 곳에 있든지 웃는 듯, 노려보는 듯한 기묘한 표정의 부처상들이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아무리 찾아봐도 두 눈을 가리지 않고서는 부처의 눈길을 피할 곳이 없다. 알듯 말듯한 불상의 미소 속에 사원의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숨어 있는 듯하다.

#타 프롬의 스펑나무

앙코르 여행자들에게 물었더니 꼭 타 프롬 사원을 꼭 가보라고 권한다. 조각이 아름답다거나, 신전이 화려해서가 아니다. 타 프롬은 유네스코조차 복원작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무너지고 있는 사원이다. 기둥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었고,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새겨진 조각상들이 부서지고 깨져서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스펑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나무가 뿌리로 유적지를 친친 동여매고 있다. 비록 성한 곳은 하나 찾을 길 없지만 사원에 들어서니 전투가 막 끝나고 난 파괴된 신전에 서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신비한 모습 때문에 영화 ‘툼 레이더’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눈길을 주는 곳마다 파괴의 상처가 또렷해서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반테이 스레이의 목잘린 신상

반테이 스레이는 앙코르와트나 앙코르톰과 20여㎞ 떨어져 있는 까닭에 1910년에 발견됐다. 다른 사원들은 검은 돌로 이뤄진 데 반해 반테이 스레이는 붉은빛을 띠고 있다. 반테이 스레이는 ‘여인의 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사원에 새겨진 여신상들이 너무 정교하고 아름답기 때문. 특히 한쪽으로 머리를 쓸어내린 여인상은 ‘앙코르의 보석’이라고 불린다. 반테이 스레이에 홀딱 빠진 앙드레 말로는 몰래 조각상을 훔쳐가려다 붙잡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선가 잿빛 유니폼을 입은 여경들이 다 무너진 창틀에 걸터앉아 사원을 지키고 있다. 씁쓸하다.



#앙코르와트의 일출

앙코르와트는 새벽부터 순례자들로 붐볐다. 사원의 탑 너머로 뜨는 일출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새벽 4시30분이면 호텔을 나선다. 전력난 때문에 가로등도 없는 어둠속에서도 1~2시간을 기다린다. 사진작가들은 사원의 모습이 환히 비치는 연못 앞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여행자들은 사원의 문턱에 앉아 일출을 맞이한다. 새해 새아침 동해에서 볼 수 있는 ‘해맞이 의식’이 전 세계 여행자 수천명이 몰려든 가운데 매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맞이는 마치 사원에 대한 하나의 경배의식처럼 경건하다. 낮에 보는 앙코르와트도 화려하고 장엄하다.



5.5㎞나 되는 성벽, 65m높이의 탑, 회랑을 따라 조각된 세밀한 벽화…. 앙코르유적지 외에 관광자원이라곤 학살현장인 ‘킬링필드’밖에 없지만 전 세계에서 연간 1백만명이나 되는 여행자들이 날아오는 것도 이런 매력 때문이다. 앙코르유적지 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 폭은 어른 발크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위태롭게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써서 기어오르듯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런 거대한 유적지를 만든 크메르인들이 왜 계단은 좁게 만들었을까. 가이드의 대답이 걸작이다. “신들의 공간에 오르려면 모든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야 하니까요.” 앙코르는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다.

▲앙코르 길잡이

▶교통

캄보디아에 가는 직항편은 없다. 태국을 거쳐 가는 것이 일반적. 방콕에서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시차는 한국시간보다 2시간 느리다. 화폐는 리엘. 1,000리엘이 우리 돈으로 250원 정도. 미국 달러를 쓰는 것이 가장 편하다. 1달러짜리 잔돈을 많이 가져가는 것이 좋다. 태국 바트도 통용된다.



비자가 필요하다. 현지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1인당 20달러. 관광객들이 많으면 2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 출입국 공무원들이 출국심사를 빨리 해주겠다며 급행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단체고객의 경우 10달러 정도 달라고 한다. 급행료를 안 준다고 해서 입국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비자를 받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비자수수료가 더 비싸다. 주한 캄보디아대사관(02-3785-1041).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11월부터 3월 사이. 건기로 비가 오지 않고 가을날처럼 맑다. 앙코르 유적지 입장권은 1일권 20달러, 3일권 40달러, 1주일권 60달러.

▶숙박

시엡립은 1960년대 한국의 자그마한 중소도시 같이 초라하지만 유적지 인근에는 시설 좋은 특급 호텔이 있다. 메르디앙 앙코르 호텔이 가장 최근에 지어졌으며 유적지에서 불과 5분 거리로 가깝다. 르 메르디앙 한국 예약사무소(02-794-4011).

▶먹거리

현지에는 한국식당도 많고 북한 평양랭면도 맛볼 수 있다. 평양 옥류관에서 파견된 요리사들이 만든다고 한다. 가야여행사(02-536-4200)는 앙코르 유적지와 태국의 파타야를 잇는 3박5일짜리 상품을 내놨다. 메르디앙에 묵는다. 입장료와 비자, 공항세를 모두 포함 1백34만9천원.

<캄보디아|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작성 날짜 : 200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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