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주부 ‘기러기 아빠’ 주제 첫 박사논문
40대 주부가 ‘기러기 아빠’에 대해 처음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다음달 연세대에서 ‘비동거 가족경험-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란 논문으로 학위(목회상담학)를 받는 최양숙씨(48)가 그 주인공이다.
최씨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 기러기 아빠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자식 잘 키우기’로 요약된다”면서 “자식을 부모의 분신으로 바라보는 문화, 아버지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현실이 기러기 아빠를 낳았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자녀의 미래를 담보로 가족 전체가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자녀의 학벌을 인생의 성공과 연결짓는 조급함, 잘못된 교육제도 등과 함께 부부간의 불화와 고부갈등 등의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씨는 “자녀를 자신과 한몸인 것처럼 느끼는 부모자녀동일체감이 기러기 아빠들의 특징”이라며 “이는 결국 사랑이라기보다는 미성숙한 나르시시즘의 일종”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최씨는 20명의 기러기 아빠를 심층 면접했다. 대상은 의사(4명), 변호사(4명), 교수(3명), 대기업임원(2명), 사업가(2명) 등 40~50대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로서 주로 미국, 캐나다에 아내와 자녀들을 보냈으며 1년에서 최고 11년까지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비동거 동기로는 ‘자녀공부’ ‘자녀의 국내부적응’ ‘외국체류후 잔류’ 등을 들었다.
최씨가 이들과의 면접과정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기러기 아빠들이 ‘돈만 보내주면 교육은 엄마가 알아서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과정에서 생겨난 ‘아버지 부재’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아빠 노릇의 절반을 포기한 결과 심각한 가족해체현상도 빚어진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로부터 ‘왜 아빠처럼 구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고 부부간의 의사소통 단절로 인해 이혼위기에 놓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최씨는 ‘내보내는 순간 자식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어느 기러기 아빠의 씁쓸한 자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녀의 조기유학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린 뒤에도 국내 교육제도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머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출신으로 17년간 전업주부로 지내오던 최씨는 두 딸이 고1, 중1이 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인 학문의 길에 접어들었다. “기러기 아빠의 희생에 대한 의구심에서 연구가 시작됐다”면서 “면접대상자들이 솔직한 속내를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앞으로 ‘기러기 엄마’와 자녀를 면접해 기러기 가족 연구를 완결지음으로써 ‘불멸의 기러기 박사’가 되는 게 학문적 목표”라고 말했다.
〈글 한윤정·사진 강윤중기자 yjhan@kyunghyang.com〉
입력: 2005년 0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