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땅 日 야쿠시마…7,200살 나무를 만나다

 
수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거목(巨木)들이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곳, 천지창조 이전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땅 ‘야쿠시마’.

일본 열도의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현은 지난해 12월 한·일 정상회담 장소로 주목을 받았다. 가고시마현의 중심부인 이부스키에서 뱃길로 130㎞, 약 1시간15분을 달리면 야쿠시마섬(屋久島)이 나온다. 우리나라 울릉도의 3배 정도 크기의 이 섬은 전체 면적의 90%가 산으로 말이 섬이지 산악지대라는 느낌을 준다. 해발 1,935m인 최고봉 미야노우라을 비롯,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야쿠시마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섬 전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산처럼 보인다.



야쿠시마는 아열대와 냉·온대 등 다양한 기후대의 영향으로 산정에는 고산식물이 해안선에는 아열대식물이 자란다. 이 때문에 일본 전역에 분포하는 식물의 70%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손길을 거부한 채 자연의 질서만을 좇아 제 모습대로만 커온 원시림은 1993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또한 야쿠시마에는 사람, 원숭이, 사슴이 각각 2만씩 6만이 산다고 할 정도로 인간과 동물이 생활을 공유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섬에서 유명한 건 1,0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삼나무들이다.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은 도로가 해안에서부터 산 중턱까지 나 있다. 산길이 어찌나 험하고 가파른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안내를 겸한 버스기사가 연방 창 밖을 가리키며 설명을 늘어놓지만 제발 운전에만 전념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원령공주의 숲 ‘시라타니운수 계곡’

야쿠시마에서 가장 깊은 고대 원시림인 ‘시라타니운수 계곡’(사진 위)은 일본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만화영화 ‘원령공주’(원제 모노노케 히메 1997년)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들과 자연을 지키려는 신들과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의 신비롭고도 음울하고, 장엄하면서도 괴괴한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나무 밑동부터 줄기가 꼬여 올라가 용틀임을 하는 듯한 나무의 형상이나, 뿌리를 땅 위에 드러낸 채 금방이라도 사람의 발목을 잡아챌 것만 같은 괴목들. 그리고 수 천년의 세월을 추상같이 서 있는 온 나무들은 회초리를 들고 서 있는 엄한 스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검은 이끼를 뒤집어 쓴 바위와 맑고 깊어서 푸른 빛이 도는 계곡, 습하면서도 향긋한 기운은 애니메이션의 귀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하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야쿠시마에는 1,000년이 넘는 삼나무만 2,000여 그루에 달한다. 1,000년 이상된 삼나무는 ‘야쿠스기(屋久杉)’, 그보다 어린 삼나무는 ‘고스기’라 부른다. ‘야쿠스기’는 대체로 해발 700m 이상에서, ‘고스기’는 그 아래에서 자란다. 시라타니운수 계곡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면 2,500살 된 삼나무를 만날 수 있다. ‘니다이스기(2代杉)’라 불리는 이 나무는 에도시대(17세기)에 잘려 나간 나무의 밑동에 삼나무씨가 떨어져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밑동의 어머니 나무와 그 위에서 자란 딸 나무가 2대를 이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수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있어 온 3,000살의 ‘기센스기(紀元杉)’는 해발 1,230m에 위치해 있다. 야쿠시마의 상징인 7,200살 된 ‘조몬스기(文杉·오른쪽)’를 보려면 하루를 잡아야 한다. 걸어 올라가는 데만 8시간이 걸린다. 신석기(조몬)시대에 싹을 틔운 이 나무는 역사 이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지금도 자라고 있다.



이처럼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나무들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야쿠 삼나무 박물관의 안내원 이와카미씨는 “곧고 잘 생긴 나무들은 일찍이 벌목꾼의 눈에 띄어 잘려 나가지만 못 생긴 나무들은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고목이 된다“고 말했다. 또 “척박한 토질이나 연중 끊임없이 몰아치는 폭풍우는 나무의 내성을 길러 천년의 세월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느끼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땅,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야쿠시마의 나무들은 ‘스스로 못낫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힘내라!’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야쿠시마|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작성 날짜 : 200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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