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지진해일 발생 이후 단 한 차례도 구호팀이 접근하지 못했던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북쪽 해안 우중밧대시(市) 네흔 마을에 3일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과 본보 취재팀이 처음 진입에 성공,복구활동을 시작했다.
곳곳이 유실된 도로를 힘겹게 뚫고 2시간여만에 도착한 마을은 지난 일주일간 복구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해일이 할퀸 폐허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들은 실종된 가족을 찾거나 시신을 매장할 엄두도 못낸 채 간간이 내리는 소나기 빗물로 목을 축이며 연명하고 있었다.
반다아체 난민촌 의료봉사 인력을 제외한 기아대책 구호팀 14명은 오전 9시(현지시간) 트럭 2대에 나눠 타고 반다아체를 출발해 북쪽 해안도로로 들어섰다. 약 20㎞ 거리인 우중밧대시 네흔 마을로 가는 길은 간신히 형태만 유지돼 있을 뿐 처참한 재해 현장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도로 중간중간 즐비한 시신과 건물 잔해를 포클레인으로 치우던 군인들이 차량을 막아서며 구호팀원들의 마스크 및 위생장갑 착용 여부를 점검했다. 전염병이 번질지 모르는 상황을 극도로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방역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우중밧대로 들어서는 잣빠라 다리를 건너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잣빠라 다리에서 해안까지 이어지는 5㎞ 구간에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현지인 운전사는 이 곳에 큰 마을이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해일이 쓸고간 자리엔 건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보이는 야자수와 파괴된 건물 몇 채를 제외하곤 시야를 가로막는 물체가 없어 지평선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코 끝을 찌르는 시신 썩는 냄새만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20여분 더 차를 몰고 북동쪽으로 향하자 작은 산이 나타났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10여분 오르니 산 중턱에 파란 천막 수십 개가 세워진 소규모 난민촌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구호팀 차량을 발견한 이재민들은 너도나도 맨발로 천막에서 뛰어나와 차량을 에워싸며 헤어졌던 부모라도 만난 양 반가워했다. 구호팀이 캠프를 차리고 약품을 꺼내들자 더 많은 이재민이 몰려들어 캠프 주변을 에워쌌다.
현지인을 통해 “한 줄로 서세요. 내일 또 옵니다”고 외친 뒤에야 진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진료팀은 이재민 환자 상태에 경악했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 32명과 어린이 396명이 굶주림에 지쳐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구호팀은 급성간염 환자와 백혈병 환자, 고열 증세가 나타난 환자 등 3명을 안전지대로 긴급 이송했다.
네흔 마을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이 난민촌 이재민은 약 2000명. 해일 발생 일주일만인 1일부터 자카르타 대학생 3명이 찾아와 돕고 있을 뿐 그동안 외부 손길은 전혀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 몇 차례씩 군 헬기가 정찰비행을 하지만 어떤 구호품도 공수되지 않았다.
자카르타 대학생 파뮈(27)씨는 “처음 왔을 때 네흔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음식도,물도,아무 것도 없었고,우리도 번갈아 인근 난민촌을 오가며 음식을 얻어다 이들에게 제공하는 형편이었다”고 전했다.
반다아체에서 서쪽으로 700㎞ 떨어진 물라보까지 해안지역은 가장 피해가 심각하지만 해안도로 200여㎞가 완전히 유실돼 육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반다아체는 3일 도착한 일본 의료진을 비롯해 호주 말레이시아 등 각국 구호팀이 함께 활동하면서 복구작업 및 진료활동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재난대책본부인 센트럴 포스코 관계자는 “한국 구호팀이 오기 전에 도착했던 일부 외국 구호단체는 이 곳 상황이 구호작업조차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철수했는데 한국팀이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고 말했다.
◇ 아시아 지진해일 피해자 돕기 후원계좌=국민은행 469301-01-064885
네흔=한장희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