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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뜨라판차 스와라 라디오 방송의 노비타 시아니(26·여) 기자는 2일 반다아체시에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을 만나자 자신도 크리스천이라며 잃었던 가족을 찾은 듯 반가워했다.
지난달 26일 지진해일 발생 직후 험난한 열대우림을 차로 23시간이나 달려 이 곳에 왔다는 그는 구호팀과 동행한 기자에게 “아체는 소수의 크리스천 주민이 종교적 차별을 당하는 지역”이라며 “기자라는 사명감과 함께 크리스천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에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 왔다”고 말했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나.
△우리 방송국은 반다아체에서 700㎞ 떨어진 메단시에 있다. 사고 직후 곧바로 차로 출발했다. 곳곳이 유실된 도로를 뚫고 오면서 수차례 게릴라 반군과 정부군 초소를 만나 제지당했지만 간신히 설득해 통과했다.지난달 27일 새벽 반다아체에 도착했다.
-이 곳에 온 계기는.
△나는 수마트라섬 중부의 바딱족 출신이다. 아체 등 수마트라 서부의 레장족이나 말레이족은 대부분 이슬람 교도지만 우리 종족에는 크리스천이 상당수 있다. 아체에서 종교적 차별에도 신앙을 지키는 소수 크리스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도 달려 올 수밖에 없었다.
-도착 당시 상황은 어땠나.
△반다아체에서 해일에 숨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숫자일 뿐이었다.시내 방리마 우린 거리로 갔더니 어디까지가 시체이고,어디가 땅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발을 잘못디뎌 시체 한 구를 밟았는데 입에서 왈칵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옆에서 한동안 토하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28일까지 그런 상황이 계속됐고 29일부터 자카르타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에서 구호물자가 조금씩 들어왔다.
-그동안 지켜본 주민들 상황을 말해달라.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 식량도 물도 전기도 없었다. 주정부와 군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군 기지는 해안에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파괴됐다. 내륙에 있는 반군 게릴라들도 큰 피해를 당했을 것이다.
-사고 초기부터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이 곳에 오면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끊임없이 ‘나는 프로다’라고 되뇌었다.처음 끔찍한 시체를 봤을 때도 구토는 했을망정 울지는 않았다.그러나 실종된 가족을 찾지 못한 채 울부짖는 유족을 위로하면서 눈물이 흐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CNN 등 일부 외신은 이 곳 상황을 전하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런 보도에 가슴아파 하고 있다.
반다아체=한장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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