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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1시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공항에 도착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 24명이 어렵게 시내 숙소까지 갈 차량 여러 대를 구해 이동을 시작하려는 순간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구호품과 짐을 실은 5t 트럭의 현지인 운전사가 동승할 팀원을 버려둔 채 달아나듯 출발해버린 것이다. 도난사고로 추정한 구호팀은 “이대로 구호활동이 끝나고 마는가”라는 위기감에 한 때 절망의 순간을 맞았다.
그러나 남은 차량으로 숙소에 가보니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던 짐은 무사히 도착해 있었다.
이유를 알아본 결과 팀원을 버려둔 채 출발한 운전사는 지진해일 당시 나무에 매달려 간신히 목숨을 건지며 발 밑에 떠다니는 수많은 시신을 몇 시간 동안 지켜봐야 했던 피해자로 밝혀졌다.
다른 차량을 운전한 현지인 기사들은 “그 운전사는 해일 때 엄청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 지금도 간혹 돌출행동을 한다”며 “구호팀을 도울 인력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돌출행동을 하더라도 일을 시킬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기아대책 구호팀은 이처럼 열악한 현지 상황과 함께 선교단체로 오해받는데다 중국인이라는 의심 때문에 심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팀원이 모두 기독교인으로 구성돼 구호단체가 아닌 선교단체란 오해를 받아 신변에 위험을 느끼는가 하면,외모 때문에 원주민들의 원성이 높은 화교로 오인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내 여인숙 분위기의 구호팀 숙소 까르띠까 호텔 주인은 구호팀이 투숙한 지 하루도 안돼 찾아와 “방을 비우고 다른 숙소를 알아보라”고 말했다. 대부분 이슬람 교도인 인근 주민들이 선교하러 온 기독교인들에게 방을 내줬다며 거세게 항의해왔다는 것이다. 아체주는 최근까지도 기독교 신자들이 이슬람 반군 무장세력에 학살당할 정도로 기독교에 배타적인 곳이다.
구호팀은 호텔 주인에게 ‘국제기아대책기구’라는 영문 로고가 적힌 유니폼을 보여주며 선교가 아닌 이재민 구호 활동을 위해 왔음을 장시간 설명하고서야 계속 묵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주일인 2일 아침 신년예배 후 구호활동을 시작하려던 당초 일정을 일부 변경,구호팀은 한 방에 모여 조용히 묵상하고 시편을 읽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했다.
반다아체 도착 전 메단 공항에서 만난 화교 메이첸씨는 구호팀원들에게 “반다아체로 가면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와 빈곤에 허덕이는 원주민 사이에 극심한 빈부격차로 평시에도 위화감이 심각했는데 지진해일 사태 이후 노골적 적개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구호팀은 메이첸씨의 충고에 따라 반다아체에서 1차 답사를 벌일 때부터 단체로 행동하거나 현지 경찰을 1∼2명 동행시켜 움직이고 있다.
반다아체=한장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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