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부 1급 정보] ○… “이번 일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운 걸요.”
지난 10월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 걸인에게 빵을 떼어먹이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천사 빵집 아가씨’란 별명을 얻은 길지빈(24·사진)씨. 국민일보 10월21일자 6면에 보도된 지 꼭 두달만인 21일 기자와 다시 만난 그는 “아저씨가 손을 못쓰니까 5분이나 10분동안 잠깐 손이 돼준 것 뿐”이라며 처음엔 인터뷰를 사양하려 했다.
길씨는 여전히 서울 강남역 7번 출구 앞 모 제과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 몇 곳에 출연했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생활은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변화가 있다면 빵을 떼어주던 장애인 최모(49)씨에게 더이상 빵을 주지 못하게 됐다는 것. 최씨는 변함 없이 1∼2주에 한차례씩 제과점 앞을 지나지만 길씨는 한동안 빵을 가져다 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한번 유명세를 타더니 더 튀려고 설치는 것 아니냐’고 쳐다보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곧 ‘특별한 일도 아닌데 왜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얼마 후 기다렸던 최씨가 제과점 앞에 왔을 때 빵을 들고 나갔지만 이번에는 최씨가 거절했다. 길씨는 “아저씨도 주위에서 사연이 알려지게 된 사실을 들은 듯하다”며 “아저씨가 나보다 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최씨에게 빵 먹여주는 장면을 다시 촬영할 수 없겠냐는 문의전화가 있었지만 길씨는 “안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는 “먹는 것조차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자기 모습을 수많은 사람이 봤다는 걸 알았을 때 아저씨 심정이 어땠겠냐”고 말했다.
2개월 동안 유명세도 많이 치렀다. 보도 뒤 1∼2주일 동안 하루 평균 10여명이 제과점에 찾아와 길씨의 선행을 칭찬해주고 갔다. 길씨를 만나러 일부러 지방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함께 사진을 찍자며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제과점에서 함께 일하는 김은영(여)씨는 ‘천사가 일하는 매장이 맞냐’ ‘선뜻하기 어려운 일인데 참 잘했다’는 전화가 처음 한달동안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와 일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고 말했다.
길씨의 개인홈페이지 방명록에는 이날도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빌겠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는 글이 올라왔다. 홈페이지에는 ‘이런 천사같은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으나 정작 데이트를 신청하는 네티즌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길씨는 올 한해가 본인에게 특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네티즌들 덕분에 스스로를 많이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가족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길씨의 내년 소망은 교사가 되는 것이고 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것이다. 권기석기자, 사진=최종학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