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참전용사가 국립묘지 안장을 마다하고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한 채 생을 마감했다. 또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50대 소아마비 장애인은 간 신장 각막 등을 기증해 5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눈을 감았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는 16일 6·25 참전용사 장인국(77)씨 시신을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아 서울 경희대 해부학 실습실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참전 공로로 1950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던 장씨는 2000년 8월 운동본부를 찾아 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했다.
1957년 11년간 군 생활을 정리하고 육군 헌병 중위로 예편한 뒤 택시회사 인력관리회사 등을 운영해온 그는 당시 서약서를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어차피 한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인데 떠나는 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장씨는 지난 11일 교회 신도들과 외출한 뒤 귀가해 경기 의정부 자택에서 고혈압으로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의료진에게 알릴 여유가 없어 사망 전 장기기증 절차를 밟지 못한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이라도 의학실습용으로 기증키로 결정했다. 장씨 시신은 경희대 해부학실에서 2년간 연구과정을 거치고 화장한 뒤 유족에게 인계된다. 남편을 따라 장기기증을 서약한 부인 강묘순(67)씨는 “남편은 몇 차례 사업 실패로 인해 살림이 어려워도 작은 트럭에 쌀과 라면을 싣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며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남편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8일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뇌사상태에 빠진 정노권(54·경남 마산)씨는 운동본부를 통해 각막 2개는 시각장애인 김모(34)씨와 황모(41·여)씨에게,신장 2개는 만성신부전증 환자 2명에게,간은 50대 간질환자에게 각각 제공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평소 ‘생활보호대상자로 주위 도움만 받고 살지만 나도 뭔가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말했다.
운동본부 이희종 후원사업부장은 “7년째 기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국립묘지를 마다한 기증자는 처음이고 장애인의 장기기증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정동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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