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대해부] Ⅲ-2. 밑빠진 관급공사
정부와 공기업들이 벌이는 공공건설에 매년 40조원가량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잦은 설계변경에다 공사기간도 한없이 늘어지기 일쑤다. 그 결과 당초 계획을 훨씬 웃도는 비용이 투입되면서 정부·공기업 재정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기 시흥시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시화호 방조제. 1987년 3월 ‘시화지구개발 외곽시설 공사’의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예정 준공시점은 92년 3월, 공사비는 1천1백86억원이었다. 그러나 실제 준공된 것은 지난 11월15일로 공사기간이 5년에서 17년으로 3배 이상 늘었다. 27차례의 설계변경 끝에 공사비도 2천6백84억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방조제 도로로 들어서면서 하나씩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4차선 도로. 87년 계획 당시엔 2차선이었지만 2년 뒤 도로 폭 확장이 결정됐다. 여기에 추가된 돈만 4백60억원이었다.
2002년 농업기반공사에서 공사관리권을 넘겨받은 수자원공사 관계자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설들을 하나둘씩 가리켰다.
“이것도 저것도 당초 계획에 없던 것들입니다.”
공원, 중앙분리대, 가로등, 가드레일, 자전거도로, 지하보·차도…. 심지어 도로 중간중간에 달려 있는 경찰 과속측정기도 공사비 증액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부대시설 비용으로 또다시 4백41억원이 덧붙었다. 도로폭 확장이나 부대시설 비용에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야 했는지가 의문이었다.
“방조제 건설로 관광객들이 늘면서 도로와 시설의 수요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도로 끝에 다다르자 군부대 막사가 나타났다. 방조제 외곽으로 옮겨가는 군 대체시설을 만들어주는 데 투입된 돈은 3백12억원. 설계변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민들의 민원 등으로 사업이 3년가량 지연되는 등 공기(工期)가 11차례나 연장되면서 장비·인건비 등의 물가상승(2백85억원)으로 이어졌다.
공사측은 “장기 대형공사의 경우 비용이나 공사기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며 “공익적 측면에서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성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철저한 조사와 설계를 거쳐 사업을 추진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건설교통부 산하 14개 기관이 국회 건교위 정갑윤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완공되거나 현재 진행중인 1백억원 이상 공사 1,322건 중 1,185건이 설계변경 등으로 평균 2년씩 지연됐다. 그 결과 총 공사비는 59조6천억원에서 69조1천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시화호 방조제와 도로공사의 서해대교 1공구, 대전국토관리청의 백제큰길, 철도시설공단의 대진고속도로 대전~함양간 건설공사(제9공구) 등 10개 공사는 6백억원 이상씩 공사비가 늘었고, 기간도 연장됐다. 정의원은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집단민원이나 정략적 이해에 따라 사업계획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라며 “준비기간도 턱없이 부족해 항상 공기에 쫓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90년 6월 최초계획 당시 사업비가 5조8천4백62억원이었지만, 거듭된 설계변경과 함께 93년 10조7천4백억원, 98년 12조7천4백억원, 99년 18조4천3백억원으로 늘어났다.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2010년 완공때는 24조원가량에 달할 것”이라며 “민간 회사였다면 이미 망했을 텐데, 그 부담을 국민들이 지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먹구구식 공사는 비리로 치닫기도 한다. 지난 7월 대구에선 설계변경으로 공사비를 올려주고 시공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청 공무원이 적발됐다. 또 3월에는 지방국토관리청 소속 감독관 3명이 건설업체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업체 관계자들은 “공사금액의 증감여부가 설계변경시 실정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불법 하도급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무조정실 주관 정부합동 점검반이 지난해 2월부터 지난 5월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98개 관급공사 현장의 실태를 점검한 결과 불법이 적발되지 않은 공사현장은 한곳도 없었다. 총 적발건수 304건 가운데 ▲하도급계약 미통보 100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미교부 49건 ▲불법 재하도급 17건 ▲하도급내용 허위통보 6건 등 전체의 3분의 2가 하도급 관련사항이었다.
〈|특별취재팀 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 고속도 교량 수명 27.6년 ‘선진국의 절반’ -
우리나라 고속도로 교량의 내구 수명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27.6년. 영국(60.66년)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선진국 수준인 50년은 물론 일본의 38.33년에도 크게 못미친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부터 4개월간 ‘고속도로망 구축 및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인 뒤 “고속국도 교량 수명이 선진국 평균 수준만 된다면 연평균 1천7백44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도로공사에 유지 체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교량 단명(短命)’ 현상의 원인으로 손상이 생긴 뒤에야 보수·보강하는 사후관리 방식을 꼽았다. 반면 선진국들은 개축비용의 0.3~2.5%를 투입,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하는 예방적 관리방식을 택하고 있다.
또 유지관리 부서와 인원도 적절하게 배치돼 있지 않았다. 감사 당시 도로공사는 각 지사별로 구조물과(課)를 설치하면서 업무량에 따른 우선순위가 29위인 광주지사에 직원 3명을 배치한 데 반해 우선순위 4위인 화성지사에는 구조물과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교량 219곳, 터널 8곳 등의 구조물을 관리하는 화성지사는 일반도로 구간을 맡은 도로과 직원이 구조물까지 챙겨야 하는 등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유지관리를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주먹구구식 도로관리는 예산낭비를 넘어 교통사고의 우려까지 자아낸다. ‘광역자치단체 건설공사 집행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전라북도는 상당수의 지방도로 확·포장 공사에서 아스팔트 콘크리트 포장면에 대한 도로평탄성 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평탄성이 10㎝/㎞를 넘으면 요철현상으로 인해 승차감이 떨어지고,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어 보완시공이 필요하다. 감사원이 4개 도로의 평탄성을 직접 시험해본 결과 기준치의 1.06~5.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북과 전북의 37개 교량 공사는 교량 슬래브에 내구성이 떨어지는 합성섬유 보강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설계되거나 시공에 들어갔다가 감사원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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