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까지 금강산으로 보내면 설악산 수학여행단을 받아 겨우 연명하는 우리는 앉아서 죽으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금강산 관광경비 지원도 좋지만 설악권 등 국내 관광지가 다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갈수록 관광객이 줄어들어 시름에 잠겨 있는 속초시 설악동 상가 주민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가 올 겨울방학 동안 중·고교 학생과 인솔교사들에게 금강산 관광경비를 지원키로 결정하자 “가뜩이나 침체된 설악산 관광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발상”이라며 지원 철회를 요구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정부는 금강산관광 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지난 3일부터 내년 2월27일까지 전국 중·고교생들에게 1인당 17만원씩 금강산 관광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자비 10만원만 부담하면 2박3일간 금강산관광을 할 수 있으며,인솔교사는 공짜여행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지원 대상 학생을 2만명으로 잡고 있다. 정부는 내년 봄 이후 추가지원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악산에는 연간 평균 1500여개팀의 수학여행단이 찾는다. 그러나 설악산 주민들은 이런 분위기로는 500팀도 찾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올해의 경우 벌써 끝났어야 할 내년 봄 수학여행단 예약이 전무한 상태다. 특히 학생 위주로 영업을 해 온 설악동 주변 숙박시설과 상가의 경우 이번 정부의 금강산 관광 지원으로 치명타를 입게 됐다.
13일 오후 설악동 C지구 마동 2층 건물. 1층 16개 업소와 2층 7개 업소가 폐업을 해 빈 건물이 된지 오래였다. 계단을 올라서자 화장실 냄새가 코를 찌르고 천장은 곳곳이 떨어져 지저분했다. 흘러내린 오물은 곳곳에 고드름,종유석 모양을 하고 있어 철거건물처럼 흉칙했다. 설악동 상가건물 대부분이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는 금강산 관광경비지원 철회를 촉구하는 각종 현수막 350여개가 어지럽게 걸려있어 주민들의 울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설악동번영회 관계자는 “학생들이 금강산으로 빠져나가면 우린 누굴 상대로 장사하란 말이냐”며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인 설악동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부당국과 지자체,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노한 설악동 상가 주민들은 최근 금강산관광경비지원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지난 12일 금강산 관광경비 지원 철회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투쟁위는 “국민의 혈세로 금강산 관광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현대아산을 위한 호객행위로밖에 볼 수 없고 예비 유권자인 학생에게는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라며 “관계부처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경비지원으로 피해를 입는 곳은 설악동뿐만이 아니다. 수학여행단이 많이 찾는 경주 속리산 제주 등도 설악동 주민들과 연대해 사업권 반납과 휴·폐업,대규모 상경집회 등을 통해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속초=변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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