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갈수록 性風확산 ‘충격’
“말 꺼내기도 넘사스러워서….” “요즘 고등학생들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더.”
예부터 예절이 바르고 학문이 왕성해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맹자의 고향)’으로 불리던 경남 밀양시가 고교생들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충격에 휩싸여 있다. 밀양의 3개 고교생 40여명이 무더기로 울산 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 사진 유통, 피해자 부모에 대한 협박설 등이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발칵 뒤집혔다.
수능시험 휴대폰 커닝에 이어 터진 이 사건은 비뚤어진 청소년 성문화에 대한 각계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성풍(性風)’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교육현장에 잠복해 있던 또다른 골병이 드러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10일 오전 시내에서 만난 밀양문화원 김석태 이사(73)는 “배우는 학생들이 그런 짓을 해 부끄럽다”며 “청소년들이 모여 소란을 피워도 나무라기 어려운 세상이 돼 벌어진 일”이라고 개탄했다. 성균관 유도회 밀양지부 전태진 회장(75)은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심을 기울였다면 1년간이나 범행이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시민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연루된 학교 주변은 벌집을 쑤셔 놓은 분위기다. ㄱ고교 인근에서 소점포를 운영하는 40대 여주인은 “중학생 딸이 학원 차를 타고 오지만 밤 10시를 넘겨야 집에 돌아와 불안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연루된 고교의 ㅂ교장은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는 말만 연거푸 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사건이 알려진 이후 네티즌들의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다. ‘강간범 전문 양성고’ 등 심한 비아냥은 물론, 근거없는 욕설까지 빗발친다.
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학교명은 물론 가해학생의 신원까지 삽시간에 번져 나가고 있다. 일부 인터넷 카페 등에는 가해자도 아닌 엉뚱한 학생의 사진과 연락처까지 나돌았다. ㅂ교사는 “가해학생과 아는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에 사진이 떠돌아 고통을 겪는 학생까지 생겼다”며 사진이 담긴 인쇄물을 내보였다.
ㄴ고교의 형편도 마찬가지. 이 학교 홈페이지는 거의 마비된 상태다. 한 여교사는 학교 분위기를 묻자 “애들을 잘못 가르쳐 죄송하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또 다른 교사는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을 자꾸 조직폭력배처럼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일부 교사는 “혐의가 없는 학생들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한 학생은 연행 사실을 만 하루동안 알려주지 않아 집에서 경찰에 가출신고까지 했다”며 경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참교육학부모회 권춘현 경남지부장은 “성적지상주의에 치우친 학교가 인성·인권교육 등을 등한시해 일어난 사건으로 전국 어디에서도 똑같은 범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며 “학교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대부분의 가해학생들이 집단의 압력과 또래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 ‘이건 나쁜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이 없었다는 사실이 우리 교육의 척박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 남부경찰서는 지난 7일 폭행혐의로 구속 의견을 올렸으나 검찰에서 혐의를 부인, 재수사 대상이 됐던 13명의 피의자에 대해 보강수사를 마치고 이날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밀양|박영철·서울|김동은기자 ycpar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