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아빠는 철야근무·엄마는 새벽 신문배달중 화재…하늘로 간 삼남매

기사입력 : 2004.12.09, 21:30

"내가 돈벌러 나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화마(火魔)에 삼남매를 잃은 경찰관의 아내 정모(37)씨는 9일 서울 길동 K병원 영안실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다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정씨는 "며칠 전 막내가 받아쓰기를 못해 혼을 냈더니 울면서도 잘하겠다고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을 모두 떠나 보냈는데 형편이 나아지면 뭐합니까." 정씨는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벗어나 보려 했던 몸부림이 이제 아무 의미가 없게 됐다며 허탈해 했다. 정씨는 남편의 박봉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느라 10년전부터 신문배달을 해왔으며 오전 1시쯤 집을 나서 7∼8시에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해왔다.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에서 분대장을 맡고 있는 정씨의 남편 금모(36?경장)씨는 최근 계속된 노동계의 동투(冬鬪)로 한달간 철야근무를 해왔다. 아이들이 숨진 이날 새벽 역시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동 D빌딩 인근에서 경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금씨 부부 곁을 영원히 떠난 아이들은 큰 딸(11)과 9살,8살난 두 아들. 이날 오전 5시10분쯤 서울 천호동 한 연립주택 2층 금씨 집 주방에서 누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 때문이었다. 불은 10분 만에 진화됐지만 작은 방에서 함께 자고 있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발생한 유독성 가스에 화를 당했다. 경찰관계자는 "감식결과 거실옆 주방에 있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의 두 전원코드가 합선이 되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강동소방서 관계자는 "세남매는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연기를 맡고 답답했었는지 함께 거실로 나가려 했던 듯 머리가 방문쪽을 향해 있었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금씨의 동료 경찰관들은 "금씨는 비번날이면 세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아내의 신문 배달일을 돕는 등 자상한 가장이었다"며 "열심히 살아온 부부에게 이런일이 생기다니?"라며 안타까워했다. 큰 딸 정민이의 강동초등학교 4학년8반 친구들도 이날 낮 빈소를 찾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제까지도 함께 놀았던 친구가 갑자기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정민이를 정말 다시는 볼 수 없는 건가요"라고 물어 어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편 세 남매의 빈소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비롯 김충환 의원,최기문 경찰청장이 조화를 보내왔으며 허준영 서울경찰청장,신동우 강동구청장은 직접 빈소를 찾아 금씨 부부를 위로했다.

김민호기자 alethe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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