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매둘기’로…불황에 시민 모이 줄어 ‘생존경쟁’
기사입력 : 2004.12.02, 18:31









불황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마저 생존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가정경제가 어려워진 탓으로 모이 주는 시민이 줄자 비둘기들이 기름기 흐르고 뒤뚱거리던 ‘닭둘기’의 모습에서 날쌔고 공격적인 ‘매둘기’로 변해가고 있다.

시민 염모(35·여)씨는 며칠 전 덕수궁 돌담길에서 주위로 몰려든 비둘기에 크게 놀랐다. 염씨는 “아이에게 과자를 먹이다 몇 개 던져줬는데 이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다”며 “김밥이 들어있는 비닐을 쪼는 비둘기도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비둘기는 800여마리. 최근 남산에 있는 비둘기들이 시청으로 날아와 모이를 먹는 경우가 생겨 먹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청 옥상에서 하루에 두 번 25㎏씩 50㎏의 모이를 주지만 순식간에 없어진다”며 “먹을 게 줄어든 탓인지 예전에 비해 모이를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땅에 떨어진 녹말 이쑤시개를 쪼아대는 비둘기도 있다. 회사원 김모(33)씨는 “88올림픽 당시 평화의 상징으로 하늘 높이 날아가던 비둘기를 기억한다”며 “그런 비둘기가 까치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다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존 경쟁에 내몰린 비둘기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먹이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 회사원 이모(32)씨는 “얼마 전 친구와 덕수궁 길을 지나는 도중 친구와 나 사이 30여㎝ 되는 공간으로 비둘기가 먹이를 향해 매처럼 파고들어 깜짝 놀랐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허윤기자 y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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