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권기석] 이혼가정 남녀중학생 동반자살
기사입력 : 2004.11.18, 22:38

이혼가정에서 생활하던 남녀 중3 학생이 서로 사귀다 함께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가족해체라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새삼 곱씹게 한다.

17일 오후 6시쯤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화단에서 조모(15)군과 이모(16)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남학생 가족의 해외 이주 계획으로 서로 헤어질 상황에 놓였던 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원망하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물론 유서 내용만으로는 두 학생의 죽음을 불러온 직접적 원인이 부모의 이혼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너 없는 세상은 하루하루 고통일거야’라는 이양의 유서 내용은 이들이 이성친구말고는 기댈 곳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 한 여학생은 “둘이 소풍 갔을 때나 학교 안에서도 항상 손을 잡고 붙어 다녔다”며 “지난 4월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알게된 뒤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전했다.

유성경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두 학생이 심리적 안정을 찾을 곳이 없어 이성 교제를 친밀감을 얻는 수단으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부모에게 받아야 하는 사랑과 애정을 이성친구로부터 메우려 했다는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조군은 이혼한 어머니와 외롭게 살아왔으며 이양 역시 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며 따뜻한 정을 그리워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양은 부모가 이혼한 이후 결석을 자주해 학교에서 제적된 뒤 올 2월 서울로 전학와 조군의 옆반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가족해체,자신을 어른과 동일시하는 청소년의 성인화 등이 모순의 중심에 놓여 있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가족간의 유대감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TV 드라마 등에 나오는 어른들의 낭만적 사랑을 흉내내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의 양육만큼은 철저히 책임지는 태도가 새삼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혼 뒤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자녀에게 무관심한 우리나라의 상당수 이혼 부부들은 이번 사건을 곱씹어 자녀들에게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편부모 가정 자녀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권기석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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