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평일 오후 2시,송파구의 석촌 호수 부근 벤치는 온통 할아버지들 차지다.
장기나 바둑을 두는 등 소일거리를 하거나 잡담을 나누는 그룹도 많이 있지만 몇 시간씩 멍하니 하늘과 호수만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도 자주 눈에 띈다. 그나마 날씨가 좋은 날은 다행이다. 날이 궂거나 추워지면 마땅히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노인들이 많다. 지하철 잠실역과 백화점을 잇는 분수대는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지만 겨울철에는 노인들의 휴게실이다.
1년째 잠실역 일대를 돌아다닌다는 신모(69) 할아버지는 “갈곳이 없어. 여기 있다가 교회에서 주는 점심 먹고 저녁 나절이나 돼서 집에 가지. 그나마 날 궂고 추우면 하루 종일 등받이 의자도 없는 지하에 앉아 있어서 허리도 아프고 몸이 쑤셔”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할아버지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하루 종일 놀이터 벤치에 앉아 계신다는 김모(71) 할머니는 “노인정은 할아버지들 차지라 갈 곳이 없다”면서 “그나마 여기 있으면 손주들 봐주는 할머니들이 간간이 나와서 심심하지는 않다”며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음을 아쉬워 했다.
실버 시대다. 각종 실버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의욕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노인 세대들도 늘고 있다. 노인 문화센터 활성화나 실버 타운의 확대는 노령화 시대에 사는 실버세대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부유층을 위한 시설 확대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여유로운 노후 생활 자금을 가지고 있거나 자식들에게 용돈을 넉넉히 받는 노인세대나 누릴 수 있는 복지 일뿐 대다수의 노인들은 마땅한 휴식 공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아파트의 노인정들은 주민들의 민원으로 당직실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예가 다반사. 그나마 몇 있는 노인정 중 일부는 유가 상승으로 당장 겨울 난방이 막막하다. 자식이 있어 양로원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원활한 노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노인들은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령화 시대에 따른 각종 노인관련 복지법을 기본으로 한 고령화 기본법 제정을 앞두고 분주하지만 법은 멀고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는 것이 노인들의 원성. 어려운 법 얘기보다는 당장 따뜻한 방바닥이 있는 노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서민 노년층의 소박한 바람이다.
유수정 <주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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