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이나 격언,아포리즘에는 선인(先人)들의 지혜와 통찰이 농축돼 있다. 삶의 미로에서 방황할 때,특정한 상황에서 방향을 모색할 때 그것들은 훌륭한 길잡이가 돼준다.
다만 그 중에는 때로 상충되는 내용이 있다.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마라’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만 해도 그렇다. ‘나무가 다르다’(?)고 우길 수도 있겠으나 전자가 판단·분별력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성실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올바른 처세훈이긴 하지만 막상 하나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와 ‘낙엽 한 잎 떨어지매 천하 가을됨을 안다’는 말. 일견 상반되는 것 같지만 시류의 바뀜이야 어김없는 것이고 보면 결국 요체는 그 타이밍을 아는 것이라는 게 양자가 같이 강조하는 교훈일 터.
그렇다면 ‘반 김정일’을 겨냥한 민·군의 봉기가 잇따르고 있다는 북한의 내부 상황은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미 가을이 시작된 걸까. 그래도 아직 봄은 오지 않은 걸까.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8일 독일 슈피겔의 기사를 전재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김정일 독재에 저항하는 봉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철저한 감시체제와 강압에 길들여진 주민들이 정권에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예컨대 98년 2월 황해북도 송림 제철소에서는 북한 사상 최대의 노조 봉기가 일어나 탱크를 앞세운 진압병력에 의해 노동자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굶주린 노동자들을 위해 공장 관리자들이 중국 상인들에게 부품을 팔아 식량을 들여오다 적발돼 공개 총살된 게 계기였다.
또 김정일이 애써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일부 군인들 역시 저항운동에 나서고 있다. 92년에는 함흥 주둔 육군 부대 부사령관과 부총참모장 등이 경제개혁을 촉구하며 쿠데타를 모의하다 처형됐고 95년에는 청진에서 군 장교들이 항만과 로켓포기지를 장악하고 평양 진격까지 꿈꿨다고 한다. 이밖에도 기사는 90년대 중반 경호부대원에 의한 김정일 암살 기도를 전하면서 지난 4월의 용천역 폭발참사도 반 김정일 운동과 연계돼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물론 이같은 기사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것은 부풀려졌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단순한 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중 몇 개만이라도 사실이라면 심상하게 볼 일은 아니다. 단단한 것일수록 깨지기 쉬운 법이다.
김상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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