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소풍가는 아들을 위해 김밥을 만드실 때 양쪽 끝 부분은 따로 모아놓고 절대로 아들에게 주지 않으셨다. “사내 대장부가 꼬투리를 먹어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어머니의 눈을 피해 몰래 집어 먹은 김밥의 꼬투리는 오히려 몸통 부분보다 더 맛있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대장부가 못되고 필부가 된 것은 꼬투리 맛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금기를 어겼기 때문일까.
꼬투리가 맛있는 이유는 몸통에 비해 밥은 적고 속 재료는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착안해 김밥 꼬투리를 상품화한 중소기업 프랜차이즈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고 한다. 상식 파괴,금기 파괴의 마케팅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재벌 계열의 유통회사까지 꼬투리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고 하니,김밥 시장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꼬투리는 원래 콩을 싸고 있는 껍질,즉 콩깍지를 뜻하는 ‘고토리’라는 옛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라는 뜻풀이가 먼저 나온다. 빈 껍질이 있으면 어딘가에 알맹이가 있을 것이라는 데서 파생된 뜻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남을 해코지하거나 헐뜯을 만한 거리’라는 부정적인 뜻까지 부가됐다. ‘콩과 식물의 열매를 싸고 있는 껍질’이라는 원래의 뜻풀이는 맨뒤에 나오니 이 역시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폭력 조직은 자기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수법으로 이득을 챙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물건을 파는 데 실패했다면,사람을 잘못 소개해준 탓이라고 꼬투리를 잡아 소개해준 사람에게 물건을 떠넘기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수법은 당연히 정상적인 거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또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을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다시 꼬투리를 달았다. 노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기는 하겠지만 취지에 대해서는 승복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헌재가 국회의 권능을 손상시켜 헌정 질서가 혼란해질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그러면 헌재의 권능이 손상돼 헌정 질서가 혼란해지는 사태는 걱정할 일이 아닌가.
어머니는 아들이 비뚤빼뚤하게 살지도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김밥 꼬투리를 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또 남의 꼬투리를 잡는 일도,남에게 꼬투리 잡힐 일도 하지 말라는 당부의 뜻도 있었을 것이다. 김밥 꼬투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먹지 말아야겠다.
김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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