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대통령, ‘반격 카드’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 결정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열린우리당은 노골적으로 헌재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대통령과 여당의 그런 거부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여야합의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국회를 통과한 법이다. 모두 합법적이라고 믿었고, 당시 그런 믿음을 부정할 만한 근거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이 관습법이며, 관습법이 헌법의 지위로 격상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고, 따라서 당연히 논란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모든 행위가 위헌이라고 하니 노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법치국가이다.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 최고 권위의 법해석 기관인 헌재의 결정을 대통령이 거부할 방법이 없다. 헌재가 너무 보수화·정치화되어 있다거나, 그 구성이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할 수 없다거나 하는 문제는 고쳐나가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수도이전을 강행하거나, 헌재 결정을 뒤집기 위한 반전의 카드, 반격의 수를 궁리해서는 안된다. 벌써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시도한다거나, 아예 대통령이 사퇴할지 모른다는 등 여러가지 정면돌파 방안과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다 좋은 방법은 아니다.

차분히 생각해 보자. 수도이전이 법의 문제인 듯 부각되고 있지만, 그것이 수도이전 논란의 핵심은 아니다. 문제는 수도이전이 최선의 지역 균형발전 방안인가에 있다. 노대통령이 수도이전을 제시했을 때나, 수도이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나, 위헌 결정이 난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정부와 여당이 수도이전을 국민이 받아들이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어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수도이전 정책을 승인받는 데 실패했다. 법적 요건 미비가 본질은 아니다. 헌재 결정이 없었다해도 정부가 추진해온 방식의 수도이전은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했다. 수도이전이 지방균형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 높은 이전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이전효과가 있는지, 다른 균형발전 정책은 없는지에 관해 정부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다수 국민의 수도이전 반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존 수도이전 정책에 관해서는 어떤 절차로 국민의사를 묻든 국민의 반대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여권 일각에서 이를 무시하고 국민투표, 개헌으로 수세국면을 일시에 뒤집겠다는 ‘한탕주의’ 유혹을 느끼는 것 같다. 절망할수록 그런 환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작은 정책 하나를 두고도 여야가 대립하고, 국민 사이에서도 양분되는 현상이 심화되는데 비해 정부는 국민을 설득, 합의를 도출하고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섬세한 정책수행 능력은 크게 부족하다. 이렇게 국정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조건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다 내걸고 처음부터 다시 판을 짜자고 한다면 ‘만인에 의한 만인의 분열’만 초래될 수 있다. 국민을 협박하고 국민을 상대로 도박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노대통령이 그런 절망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 그럴 이유도 없다. 여야 모두 지방균형발전에 이론이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은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전국민이 공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수도이전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제 독단이다. 수도이전은 균형발전 수단이었지 목표가 아니었다. 여야가 공동 기구를 구성, 지역균형발전 방안을 함께 마련하고 그 과정을 통해 ‘대화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또 결단을 앞두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심모원려(深謀遠慮)를 바란다.


입력: 2004년 10월 22일 17:4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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