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 쇄신의 일대 轉機다

기사입력 : 2004.10.21, 18:11


- 수도이전 위헌 결정에 부쳐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재판관 9명 중 8명이 위헌 쪽에 섰다. 이들 가운데 7명은 ‘수도 서울’을 ‘관습 헌법’의 규정이라고 인식,특별법이 헌법 제130조의 참정권적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1명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 제한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 마디로 국회가 헌법 개정이나 국민 투표 없이 수도이전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 헌재의 결정 내용이다. 그 이전에 대통령이 대선 공약 사항이었다는 이유로,천도를 결심하고 이를 위력으로 밀어붙이려 한 것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못함은 물론 국민 정서와 역사에도 위배된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헌재의 결정이 나자 이해찬 국무총리는 즉각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위의 활동을 일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하지만 반가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찍이 언급한 대로 천도를 자신에 대한 신임과 정권의 진퇴를 건 사업으로 인식하고 추진을 고집할 경우 이를 둘러싼 국론 분열과 국민 갈등은 더욱 확대 증폭되어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 가장 큰 국가적 과제는 수도 이전 갈등과 헌재 결정 후폭풍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누구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들이 대국적 차원에서 함께 상호 이해,인내,양보의 자세로 혼란 예방에 나설 것이 요구된다.

무리가 가져온 국력 낭비

누구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책무가 막중하다. 이제까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데도,수도 이전은 대선의 승리로 국민적 승인을 얻었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강행했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집권세력의 교체’라는 의미까지 부여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킨 게 사실이다. 따라서 결자해지,노 대통령과 여당이 앞장서서 갈등 해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기회에 특히 노 대통령에게 각별히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노 대통령은 대선의 승리로 정의 도덕 역사의 독점적 해석권을 획득했다고 인식하는 듯한 인상을 더 이상 주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참모들,그리고 열린우리당의 리더 및 의원들은 여론이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도 당위성과 정당성만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을 고집했었다. 법의 명문 규정이나 정치 세력의 크기,몇 차례의 정치적 경쟁의 결과가 도덕적 역사적 정당성까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왕조 시대 천명(天命)의 대리인일 수는 없다. 그리고 대선이라는 큰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언제나 여론을 자신들이 희망하는 쪽으로 이끌지는 못하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 국민의 여론은 조작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책임을 면하게 된 것 또한 아니다. 한나라당이 하려고 했다면 이미 지난해 12월 수도 이전은 저지될 수 있었다. 당시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충청권의 표를 의식해 특별법 제정에 찬성했었다. 그 때문에 지난 4?15총선 이후 지금까지 온 나라가 천도 논란과 갈등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음을 한나라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헌재 결정만 해도 한나라당이 얻어 낸 것이 아니라 시민들,즉 수도 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과 이들을 지지한 국민이 쟁취한 것이다. 서울특별시 역시 당초에는 소극적 입장에서 머뭇거렸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 만큼 한나라당과 서울시는 헌재의 특별법 위헌 결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 당사자로서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국정 안정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충격과 혼란 최소화하자

헌재의 위헌 결정만으로 정부가 신행정수도 건설 의지를 당장 털어버리기가 쉬울 리 없다. 그간 수도 이전을 참여 정부 최대의 개혁 과제로 제시해왔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당초의 취지,그러니까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시대적 명제에 부응하는 정책을 찾아내려 할 게 틀림없다. 그 가운데는 행정수도 건설과 유사한 사업도 포함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그건 이해되지만 다시 ‘천도’를 추진함으로써 국가적 혼란을 재연시키지는 말기를 바란다. 기실 지역 균형 발전은 수도 기능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긴다고 해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천도함으로써 구시대,그 시대를 이끌었던 구지배 세력과 완전히 결별하고 새 지배세력의 주도로 새 시대를 연다는 장대한 구상과 열망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민주적 방식이 아님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 방안을 구상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국민을 편가르지 않고,지역 갈등을 유발함이 없이 전 지역이 말 그대로 윈-윈하는 방안을 찾는 데 지혜를 모은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확신을 갖길 기대한다.

‘개혁 입법’도 순리 따라야

또 하나 정부 여당은 물론 모든 국가기관 나아가 모든 국민이 함께 확인해야 할 일은 순리의 존중이다. 민심을 하루 이틀,길어서 한 두달 쯤은 거스를 수가 있다. 정권측의 웅변력 추진력 의지 등에 따라 1∼2년,혹은 임기 내내 겉으로는 정부 뜻대로 간다고 보일 가능성도 아주 없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무리한 정책 추진은 심각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언젠가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고 만다.

그래서 말이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른바 4대 개혁입법과 관련해서도 밀어붙이기식의 자세를 바꿔야 옳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두고 말하자면 열린우리당은 독선의 유혹에 아주 깊이 빠져 있다. 자신들의 입지 판단 결정만이 정의롭다고 하는 것은,그 내용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비민주적인 발상이고 태도다. 정부 여당이 정의의 창조자도 담지자도 아님을 깊이 깨달을 때다.

국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번의 헌재 결정을 통해 ‘주권 재민’의 의의를 새삼 확인케 된 셈이다. 물론 헌재가 법리를 따져 결정을 했겠지만 그 배경에 국민의 힘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어떤 국가 기관의 어떤 결정도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음을 보여준 살아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민주 국가에서 결정력의 원천은 국민의 뜻이라는 점을 모든 정치 세력과 행정기관 및 그 구성원들은 명심해주길 각별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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