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같은 휴식… 발리·롬복

: 0 : 0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에 발리를 찾는다면, 아예 발리에 가지 않는 게 좋다. 무위도식을 꿈꾸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 바다는 느릿하고, 리조트는 쾌적하다. 밤마다 달아오르는 유흥지의 흥청거림도 휴양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적인 휴양지임에도 아직 순박함을 엿볼 수 있는 발리인의 심성이 세계인의 발길을 불러들이는 또 다른 이유다. 땅과 그 땅의 사람이 평화로운 곳이다.

◇사리 나이트클럽=발리의 평화는 크게 한번 깨졌다. 2002년 10월12일 쿠타 해변의 ‘사리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는 200여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다. 피해자는 모두 평화와 휴식을 고대하며 발리를 찾은 관광객이었다. 테러 희생자 중에는 한국인도 포함됐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렸던 폭탄테러현장은 이제 그저 평평한 나대지다. 건물 잔해는 테니스 코트로 써도 좋을 만큼 깨끗이 철거됐다. 그러나 추모와 기억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있다. 테러현장과 그 앞 2차선 도로를 갈라놓은 철조망. 테러를 증오하는 ‘FUCK TERRORIST’란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자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버지의 사연도 나란히 있다.

테러를 저지른 집단은 ‘제마 이슬라미야’라는 인도네시아 이슬람과격단체로 알려져 있다. ‘제마 이슬라미야’는 미국에 맞서 싸우는 알 카에다와 ‘대의’를 같이한다. 폭탄테러는 ‘대의’에 동참하기 위해 저질렀다. 이슬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중동을 떠올리지만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는 인도네시아. ‘사리 나이트클럽’ 테러가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테러가 일어난 발리섬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한 힌두교도 지역이다.

발리인은 미국과 이슬람의 전쟁에 관심이 없다. 발리인은 힌두교도인 데다 오랜 기간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세계관을 바꿨다. 현지인 관광가이드는 “돈을 내면 모두 다 친구”라고 말한다. 그는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도 땅을 택해 테러를 벌인 데 분통을 터뜨렸다. 테러집단이 ‘대미성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힌두교도 젯밥에 재를 뿌리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수백명의 원혼이 떠도는 테러현장도 지금은 그저 평화로움을 완성하는 하나의 소품으로 바뀌었다. 발리를 발리이게끔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발리를 찾는다면 지금은 밋밋한 공터로 변한 폭탄테러현장을 꼭 한번 찾아보는 게 좋겠다.

◇풀빌라=자바섬의 동쪽 해안으로부터 불과 1.6㎞밖에 떨어지지 않은 발리섬에는 2만여개의 사원과 3,333개 신이 있다고 한다. 발리는 ‘신의 섬’이다. 동시에 리조트의 천국이기도 하다. 세계 유명 호텔.리조트 가운데 이곳에서 영업하지 않는 곳은 없다. 신의 숫자에 맞먹는, 또는 사원 숫자에 버금가는 리조트들이 세계인을 기다리고 있다. TV조차 없는 원시 스타일부터 최첨단까지 리조트의 스타일이 다양하다.



특별한 추억을 원하다면 풀빌라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풀빌라는 독립된 빌라 내에 별도 수영장을 갖췄다. 연인.부부.가족끼리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전용 빌라.전용 수영장에서 자신들만의 여행을 만들어갈 수 있다. 소피텔 체인인 로얄 세미냑이 풀빌라로 유명하다.

◇마사지=휴양에서 마사지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꼬발리는 쿠타 해변에서 5분거리다. 전화(724-431)를 걸면 데리러 왔다가 데려다 준다. 1인당 30달러로 호텔에서 운영하는 마사지센터보다 싸고 만족도도 높다.



◇롬복=더 순박함을 원한다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롬복섬을 찾는 게 좋겠다. 발리섬을 거치지 않고 싱가포르에서 직접 롬복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일단 들어가면 바다를 바라보며 쉬는 것 외에 아무런 선택이 없다. 리조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고단한 섬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개발이 덜 돼 쾌적한 리조트가 많지 않다. 노보텔 체인인 롬복 코렐리아 리조트는 객실을 현지 전통양식으로 만들었다.



낮은 담장과 화단 사이로 벌이 날아다니고, 햇볕이 파도소리와 함께 부서져 내린다. 리조트 앞 한가로운 해변에 누워 추리소설 한권 들고 자다 읽다 하면 어느 사이 열대의 밤이 찾아온다. 허접한 물건따위를 팔러오는 현지 아이들을 상대하는 게 나름의 재미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내용의 영어를 쓴다. 장사맛을 알았는지 커다란 눈망울로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귀엽다.

<발리.롬복/안치용 기자ahna@kyunghyang.com>

◇ 여행길잡이

발리는 위도상 적도 바로 밑에 있는 남반구 섬이다. 온도는 1년 내내 여름 수준. 대체로 10∼3월은 우기, 4∼9월은 건기다. 인도네시아 가루다항공은 월.수.목.금.토 5회 인천∼덴파사르(발리 주도)편을 운항한다. 대만을 경유하며 8시간30분 걸린다. 대한항공에서도 판매한다. 인천∼자카르타는 대한항공.아시아나에서 매일 운항한다. 비행시간 7시간10분. 덴파사르 연결 항공편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달 1일부터 관광목적에도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1인당 25달러가 든다. 화폐는 루피아. 1원은 1,390루피아 정도. 발리.롬복에서는 영어를 써도 대부분 알아 듣는다. 한국말을 이해하는 현지인 가이드도 많다.
작성 날짜 : 2004-1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