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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외국에 사는 어린 손녀의 전화다.
보내준 신발이 발에 맞고 좋단다.
선물이 아니면 얘기 할 말이 없는듯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웠다.
그러면서 즐거워했을 모습을 그려본다.
또래들보다 발이크다고 신경을 쓰는 아이가 이리 저리 신어 보았을때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라는 내 마음에 추억이 아련하다.
42년전 그때는 여고시절 처음으로 끈매는 운동화가 등장했었다.
그 신발이 어찌나 보기에 예쁘고 신고 싶었던지 그것을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워 유리구두와 같았다.
그당시 집안은 죽으로 끼니를 잇기도 하던때요 동생이 넷이나 있으니 나를 위한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
그런데도 철없는 고집은 막무가내로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는 의외로 선듯 사주셨고 하늘을 날듯이 기뻐하며 얼굴을 꼬집어 보니 꿈은 아니였기에 안심하고
신발이 다를까바좋은 길로만 다니고 졸업때까지 그 한켤레로 버티였으니
밑창이 다닳고 발가락이 삐져 나와도 애지중지 신고 다녔다.
떨어졌다고 버린다는것이 엄마의 마음을 버리는것처럼 생각되었던 마음이였다.
얼마전 모기업체에서는 마라톤 선수를 위해 특수제작한 신발값이 일억오천만원이라니 온국민의 염원과 성원을 담은 신발이 아닌가!
이처럼 마음을 담은 신발들이 세월은 흘러도 진한 감동으로 가슴에 흔적으로 있어 풍성한 마음인지 모른다.
그래서 신발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예쁜것 있으면 신겨주고 싶은 즐거움에 들떠있는 유혹이
아직도 옜날의 그 마음속에 살고있는 것에 작은 행복이다.
하여 손녀의 신발은 마음의 운동화다 언제나...
이런 할미의 마음 알기나 할까?
2004 /08 /30
서울에서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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