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권기석] 인질이야 위험하든 말든

기사입력 : 2004.08.09, 18:09

전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경찰관 살해 용의자 이학만씨가 8일 한 시민의 재치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검거 과정에서의 미숙한 경찰 대응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선 인질 상태인 40대 주부와 어린아이가 흉악범의 범행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서 사이렌을 울린 점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다행히 이 주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재치 있게 화장실로 미리 숨어 피해는 없었지만 경찰은 자칫 결정적 제보를 한 시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경찰은 사건 당일 오후 112신고를 받으면서 “경찰 살해 용의자가 어머니의 집에 있으며 어머니와 여동생의 애기가 함께 있기 때문에 피해가 가면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몇 차례 들었는데도 어이없게도 사이렌을 울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도 처음에는 “알겠다. 일단 조용히 경찰관을 보내 주위를 에워싸고 수사하겠다”고 답했지만 검거 과정에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12에서 지령을 하달받은 서울 강서경찰서 공항지구대 소속 경찰들은 현장 100m 전까지 사이렌을 켜고 이후 껐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사이렌 소리에 놀라 길거리에나왔다고 주장했다.

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이 주부가 경찰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미리 2층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손짓까지 해가며 불렀지만 이를 못 봤는지 먼저 현관 초인종부터 눌렀다.

경찰관을 둘이나 죽인 흉악범이 인질로 삼을 수도 있는 아녀자를 둘이나 데리고 있는 상황에서 초인종을 누른 것은 수사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다.

범인 검거에 워낙 열중하다보니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경찰의 변명은 궁색할 뿐이다.

만약 박씨가 경찰이 들어오기 전 네 살짜리 외손자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지 않았다면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경찰은 연쇄 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수사 때부터 “선진국 범죄의 상당수는 제보에 의해 해결된다”며 자발적 시민 신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민 제보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제보를 한 시민의 안전도 중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 소흘이 한다면 누가 제보하겠는가.

권기석기자 (사회부) keys@kmib.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