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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펌)

정치웹진은 '논쟁의 게토', 논객은 권력추종

정치웹진 공론장의 기능 심각하게 훼손당해, '당파성은 논쟁거리 아닌 응징거리'
현실정치 개입 편가르기 심화시켜, 대안미디어 실종 정치전략가들의 진지역할만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인터넷의 정치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피씨통신시절부터 온라인상에는 정치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했으나, 2002년 대선과정을 거치면서부터는 사이버 정치는 주변부에서 벗어나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이 되고 있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정치칼럼웹진의 등장이다.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 문을 연 대표적인 정치칼럼사이트인 <서프라이즈>는 네티즌들에게 단순히 정치를 둘러싼 논쟁의 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논리를 생산, 유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토론회 모습     ©브레이크뉴스

때문에 한때 정치칼럼웹진은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거대언론이 독점하고 있던 담론형성능력을 대신하는 ‘대안 미디어’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정치칼럼웹진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서프라이즈, 동프라이즈, 남프라이즈 등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이트를 정하고 전폭적인 지지와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더 이상 ‘미디어’로서의 기능은 없어졌다고 단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이들 정치칼럼웹진은 정치권의 정당들과 궤도를 같이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더불어 정치칼럼웹진이 컨텐츠 생산자들인 인터넷 논객이 ‘당파성’을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브레이크뉴스>가 창간 5주년을 기념해 27일 주최한 ‘인터넷 논객들의 당파성,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정파 종속적 당파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기형 연구위원     ©브레이크뉴스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의 이기형 연구위원(언론학 박사)은 이날 발제를 통해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치열하게 진행중인 언론의 역할과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둘러싼 싸움은 인터넷상의 정치담론의 공론장이 지나치게 좁게 정의된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파당성(partisanship)에 의해 혼탁해지거나 극단적인 언설과 비난을 만들어냄으로써 민주적인 공론장으로서의 정치웹진의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그러나 “당파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지나친 당파성이나 특정 노선이나 정치집단에 대한 성찰없는 추종이 더 문제”라며 “논객사이트 내에서 지나친 정치적인 편향이나 경향성에 의해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이 훼손되거나 비생산적인 측면으로 논쟁이 흐를 가능성을 조정하거나 정화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결론적으로 “정치웹진이 표피상의 객관주의나 양시론이 아닌 어느 정도의 당파성과 정치적인 경향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현실개입적인 글과 정치적인 연설들을 제공하는 것은 보수적이거나 상업화된 언론매체가 아직도 강세인 현재의 오프라인 미디어 지형을 고려할 때 강점이자 웹진들의 존재이유”라면서 “그러나 시비와 편가르기가 주를 이루고 숙의(deliberation)가 결여된 웹진의 공간은 ‘논쟁의 게토’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스스로가 유명 인터넷 논객인 변희재 <브레이크뉴스> 기획국장은 “일부 인터넷 논객들은 더 이상 논객이 아니라 사실상 정치인”이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변 국장은 “강준만 교수가 DJ지지라는 당파성을 드러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6가지 원칙이 분명히 있었고, 이후 DJ가 6가지 원칙에서 벗어나자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며 “최근 논객들은 당파성을 띄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더불어 “일부 논객의 당파성 여부 문제는 논쟁거리가 아니라 응징거리”라고 주장했다.

변 국장은 더불어 “나는 노무현 정부가 정치개혁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내가 파병에 반대하며 정권비판의 글을 쓰면 곧바로 '반노'로 규정하고 '민빠'(맹목적인 민주당 지지자)라고 부른다”며 인터넷에 만연된 편가르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변희재 기획국장     ©브레이크뉴스
변 국장은 마지막으로 “시장의 논리로 지나친 당파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조선일보식 논리”라며 “한 인간이나 권력에 대한 올인(all-in)이 아니라 명확한 정책 방향을 잡고 그 기준으로 지지와 비판을 결정하는 당파성을 확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전 딴지일보 편집장)은 “당파성의 문제는 옳음과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가치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문화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 편집장은 “인터넷 논객이 플레이어(player 선수)의 역할을 맡게 되면 우리편이 어떻게 해야 유리한가에 매달리는 전략전술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며 “이것은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감상법’ 같은 글쓰기와 같은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최 편집장은 “정치칼럼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인터넷 논객이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겼음에도 이에 대한 위상정립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논객에 대한 위상정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최 편집장은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가 종종 ‘특종’이라며 글을 쓰곤 하는데, 칼럼니스트는 고급정보를 접해야 할 필요성이 없으며, 오히려 일부러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정무 <민중의소리> 편집장은 “최근 인터넷 논객의 글에는 현장과 대중이 결여돼 있다”며 ‘2002년 대선당시만 해도 인터넷 논객의 글에 현장과 대중이 담겨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편집장은 “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권 문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그 문법에 따르면 스스로가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느끼게 되고 팩트를 왜곡시킨다”고 말했다.

이 편집장은 그러나 “인터넷 정치 논객의 글은 제도권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성회 e-politics전략연구소 소장은 당파성에 대해 “김대중 주필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봉사하는 것과 서영석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에 봉사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라며 “오히려 지금은 훨씬 더 뻔뻔해졌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 소장은 “인터넷은 미디어적 속성과 정치전략의 무기로서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당파성을 갖는 것이 필연이지만, 현재 몇몇 사이트들은 미디어적 속성은 거의 없고 ‘정치전략가들의 진지’ 역할만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더불어 “인터넷 논객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권력과 대중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퇴행적 당파성은 단지 추종주의”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마지막으로 “인터넷 정치칼럼사이트가 계속된 분화과정을 겪는 것은 퇴행적 파당성으로 인해 대중 스스로가 논객을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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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펌)

강준만과 유시민, 인터넷논객들의 유형비교
명확한 정책방향으로 지지와 비판의 당파성을 확립해야
이성과 논리가 없는 당파성은 광신과 권력에 대한 아부
 

강준만의 김대중 지지

첫째, 나는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원한다. 둘째, 남북문제에 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탁견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비교적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넷째, 역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정치인 김대중의 민주화 투쟁 공로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다섯째, '이지메'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독재정권과 일부 국민들의 박해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여섯째, 지역문제의 해결이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원하는 마지막 이유다

1995년, [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를 출판하며 스스로의 당파성을 드러낸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가 밝힌 김대중을 지지하는 여섯 가지 이유이다. 한국의 사회비평 혹은 정치비평은 강준만 이전과 강준만 이후로 구분해야할 정도로 그가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 중 가장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부분도 바로 그의 당파성 드러내기이다. 그는 김대중 집권 시기 내내, 이러한 당파성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오직 호남정서에 기대 맹목적으로 DJ를 지지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김대중을 지지하는 이유가, 한 인물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에 관한 것임을 일찌감치 밝혔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김대중 집권 이후 그 여섯 가지 기준을 가지고 김대중을 재평가할 수 있었다. 급기야 그는 2000년 1월, 단행본 <인물과사상> 13권에서 김대중 정권의 몰락을 선언한다.
 
 "김대중 정권 몰락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이전의 정치 패러다임을 바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비교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말 잘하는 솜씨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든 게 고작이었다. 그 특유의 자화자찬병은 여전했고 모든 게 구태의연했다. 김대통령이 누굴 특별히 실망시킬 만한 '배신'은 저지르지 않았다. 다만 변화가 필요한 때에 변화를 하지 않고 구태의연을 고집했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다. 물론 그건 바로 인간 김대중의 한계였으며, 이건 비판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김대중에 대한 당파적 지지를 선언한 97년부터 김대중 정권의 몰락을 선언한 2000년 사이에 강준만 교수는 사안에 따라서 지지와 비판을 반복했다. 물론 그에 대한 기준은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지지 이유이다. 특정 정치인 혹은 특정 정권을 지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인물이나 정권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실천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갖는 정치사회적인 의미는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모조리 양비론으로 인한 당리당략적 접근으로 희석시킴으로써, 정책이 왜곡되는 역효과를 방지한다는 데 있었다. 예를 들면 김대중 정부가 적극적으로 펴나간 햇볕정책은 전국민이 지지를 해주어야 하는 사안임에도 기존의 양비론적 접근으로 본다면 "정권의 인기를 위하여 남북문제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2000년 4.13총선 바로 전날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보수언론은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정략적 이용을 비판했고, 실제로 득표에 결정적인 영향일 끼친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정책에 관한 당파적 입장으로 판단하면, 남북정상회담은 총선 바로 전날이든, 그 다음날이든, 합의 자체를 높이 평가해야하는 것이고, 실제로 이러한 정책이 총선 득표에 유리하다면 이는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언론들이 늘 정책으로 승부하라 그러지 않던가?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정책 승부였던 것이다.

장신기의 노무현지지

대표적인 인터넷 논객 장신기는 2002년 2월 <노무현 필승론-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거름)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정치공학적 입장에서 당시 이회창 대세론의 대항마로 인식된 이인제 대안론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투표 행태상, 영남과 호남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노무현만이 대선 승리를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책은 이인제 진영의 반발로 인해 경선 당시 큰 영향일 끼쳤다. 이 책이 단지 득표공학적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그의 차기작인 <노무현 반DJ신드롬을 넘어서>(시대의창)에서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를 정확히 밝히고 있다.

노무현은 신뢰의 정치인이자 통합의 정치인이다. 노무현은 냉전 반북의식과 반호남 정서를 기본 축으로 하는 수구세력의 공세를 정면에서 맞서 싸우며 승리의 역사를 개척한 신념의 정치인이다.
 
노무현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한국 사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민주적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는 정치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노무현은 김대중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분열된 시민 사회에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아마도 정치인 노무현의 연속적인 영남출마 및 낙선, 그리고 그가 수 차례의 연설에서 밝힌, 남북화해 정책 등등을 보며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갖는 효용성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첫째, 노무현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직한 정치인이다.
둘째, 노무현은 냉전 반북의식과 반호남 정서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셋째, 노무현은 민주적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넷째, 노무현은 김대중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분열된 시민사회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이다.

장신기의 이러한 노무현을 지지하는 네 가지 이유는 마치 97년의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지지하는 여섯 가지 이유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 개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펴나갈 사회개혁적인 정책에 대한 지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정치칼럼 사이트 시대소리에 노무현지지 포기선언을 하고 말았다.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노무현씨는 역사의 배신자다. 노무현씨에게 앞으로 발생할 더욱 참혹한 결과에 가장 중대한 책임이 있다. 그리고 노무현씨 못지 않게 노무현 대통령을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개혁 세력의 자존심과 위상에 심대한 타격을 준 노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김대중 이후의 질서에 대한 고민의 내용이 부족했던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박정희식 보수적 근대화 노선에 반대하는 개혁 진보 세력의 가장 큰 흐름인 자유주의적 진보 노선의 선도적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중요한 정치적 논쟁은 바로 김대중씨를 중심에 놓고 전개되었다.

노무현씨는 김대중 이후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그 기반 위에서 개혁과 통합을 펼쳐나갈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과 능력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김대중씨가 집권할 당시보다 월등히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1년만에 자신의 중요한 지지층을 떨쳐내면서 오직 노빠의 품 속에서만 머무르려고 하는 퇴행적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금 DJ + α로 외화되는 평화 개혁 통합 노선은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서 큰 상처를 받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노무현지지 논리'를 선도적으로 제기했던 사람으로서 사죄를 드림과 동시에 평화 개혁 세력이 나아가야 하는 길에 대해서 같이 고민할 것을 다짐한다.<노무현 지지 논리를 펼친 것에 대해서 사죄합니다>

장신기는 지지 포기 선언을 하기 이전부터, 여러 가지 정책적 이유를 들어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첫째, 한나라당과 공조하여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여 개혁진영을 분열시켰다.
둘째, 두 번에 걸친 이라크 파병으로 친미종속외교를 심화시켰다.
셋째,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에 골프를 치는 등, 민족공조 정신을 후퇴시켰다.
넷째, 민주당을 인위적으로 분열시키며 개혁세력의 역량을 약화시켰다.

장신기는 처음부터 노무현을 DJ 플러스 알파로 인식하였다. 노무현이 후보시절 누누이 이야기했던 DJ의 부채는 버리고 자산만 승계한다는 원칙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자산을 모두 버리고 간다고 판단하여 지지를 포기한 것이다. 장신기가 노무현을 지지한 논리를 그대로 이어보면 현재 도저히 노대통령의 노선을 지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강준만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은 배신자인가>(인물과사상)에서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밝혔다.

문제는 그간 내가 쓴 책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나는 노무현을 옹호하는 책을 쓰면서 노무현이 그런 배신을 저지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어떤 사람이 내게 조롱하듯이 물었다. '아니 그것도 예상 못했단 말입니까?' 그랬다. 나는 정말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노무현이 대북송금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까지 이해했다.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까지도 동의했다(민주당 분당은 유권자들까지 양분시키는 '파괴적 해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권력의 속성과 정치의 이치를 잘 안다고 자부해온 나로서는 노무현이 김대중을 어느 정도 밟고 넘어가는 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 무엇을 더 예상했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민주당 분당을 예상하지 못한 건 '신의'를 믿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무현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수의 엘리트 집단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건이 벌어지기 전 민주당 분당에 반대하는 주장을 여러 차례 공개했지만, 내게 무슨 대단한 힘이 있었겠는가. 내게 남은 건 일개 글쟁이로서 져야 할 책임뿐이었다

언론학자 양문석의 노무현 지지철회

강준만과 장신기는 각각 포괄적 의미에서 김대중을 지지한 경우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지지대상이 권력을 잡았을 때, 비판할 때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한두 가지 정책 사안에서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전체적으로 판단하여 쉽게 비판에 임하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은 배신자인가>라는 책을 내기 전에 미리 <노무현 죽이기>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때는 이미 인터넷 네티즌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 책은 노무현에 대한 비판보다는 옹호에 훨씬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지만, 앞으로 노무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게 중심은 비판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부디 노무현이 옳은 길로 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노무현은 어떤 점에선 지금 자신이 자신의 고집과 인의 장막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청와대 바깥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아마도 강준만 교수의 입장에서는 노무현이 측근 이외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의 배신을 비판하게 되었을 것이다. 즉 한두 가지 잘못하더라도 포괄적으로 지지를 해온 논객이라면 세부적인 정책으로 비판을 하기란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무리 당파성 자체를 정책으로 구분한다 해도 바로 이런 포괄적 지지의 문제 때문에 공평무사한 비판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와는 달리 언론학자 양문석은 철저히 개별 정책만으로 정권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구분하는 부류이다. 즉 양문석의 당파성은 언론개혁이라는 정책이다. 언론개혁을 제대로 하면 지지를 하는 것이고 제대로 못하면 비판을 한다. 그는 <브레이크뉴스>에 '노무현 정권의 언론개혁정책? 그런 것 없었다!'(2004. 2. 25)>라는 글에서 단순명쾌하게 노무현 정권의 언론정책을 비판한다.

아예 결론부터 먼저 밝히고 평가를 해 보자. "노무현정권 1년의 언론개혁정책은 없었다. 역대정권과 다를 바 거의 다를 바 없다"가 결론이다. 그리고 '수구언론과 비타협적 투쟁'→'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더 이상 투쟁과 긴장은 없다'로 변절만 거듭한 노정권의 언론관만 남았을 뿐이다.

그는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관계 등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냈다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이라면 언론정책 하나만 갖고도 사정없이 노무현 정권을 비판했을 것이다. 덧붙여, 보다 노무현에게 기대를 갖고 기다리자는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믿어 달라, 기다려 달라, 의존하지 말라'는 황당무계한 주장들이 노당선자를 돕는 일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대중정권이 그랬듯이, 생각 없이 아부정신만 풍성한 인간들이 결국 사고를 쳤다. 세무조사와 언론고시의 주역인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국세청장이 부패사건에 연루되어 자리에서 쫓겨났다. 국민을 위한다고 시작한 '언론개혁'이 일부 추진주체들의 부도덕성으로 인해서 개혁대상들에게 '좋은 구실'을 제공했던 것이다.

 …노당선자를 옹호한답시고 '믿어달라, 기다려 달라, 기대지 말라'고 하는 인간들은 스스로 자중해야 한다. 꼭 이런 자들이 사고치는 것을 보아온 경험이 '역사의 교훈'으로 이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선자만 믿어달라'며 인수위 시절 언론개혁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결과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양문석의 비판은 고전적인 현실참여지식의 유형과 유사하다. 논객이 정권의 안위나, 정권의 인기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공평무사하게 잘한 것은 잘했다 하고 못한 것은 사정없이 내려치면 그만이다. 똑같이 정책으로 인물을 지지하는 강준만이나 장신기와도 분명히 다른 입장이다. 양문석이 내세우는 당파성은 오직 정책인 것이다.

인물에 올인, 유시민의 노무현 추종

유시민은 논객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래서 논객의 당파성을 따지는 글에서 그를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이 무리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 논객들 중 사실 상 정치인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유시민의 논리를 따라간다. 유시민이 정치인이긴 하지만 인터넷의 친노 당파성 논리를 선도하기 때문에 다른 친노 논객보다 유시민을 다루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가 2003년 3월 20일, 그의 홈페이지에다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국장의 비판에 답한 글을 보자. 소재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관한 것이었다.
 
저는 가치기준에 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믿습니다. 그저 믿는 게 아니라 굳게 믿습니다. 유권자로서, 또는 이제 막 정치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제가 밀었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굳게 믿는 것이 잘못일까요? 송태경 국장은 노무현을 철석같이 믿는 저 같은 사람을 두고 "노무현 광신도"라고 비웃겠지만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 굳은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송태경 국장은 자랑스럽고 행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유시민은 시종일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노무현이 그 어떤 정책적 실수가 있더라도 노무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책으로 노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논리로 접근한다. 그는 한겨레신문에서 기획한 참여연대의 김기식 사무차장과의 대담에서 논쟁 전체를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유시민 - 오늘의 결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지 마세요.
김기식 - 국민은 어느 대통령이든 새로 된 대통령한테 기대를 가져야 돼고, 그래야 편안하죠.
유시민 - 원래 발랄한 리버벌인데 대통령이 되고 나면 보수화하거든요. 그런 정도로 보세요.

유시민이 갖고 있는 노무현에 대한 믿음은 두 가지 논리로 유지된다. 
 
첫째, 노무현에 대한 기대를 갖지 마라.
둘째, 자연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다르다.

이 두 가지 논리만 갖추고 있으면 그 어떤 노무현에 대한 비판도 능히 막아낼 수 있다. 이라크파병 결정에 대해서 비판하면 "개인 노무현은 파병반대하고 싶었지만 미국 때문에 대통령 노무현은 파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로 막아내고, 경제실정을 비판하면 "노무현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마라"고 달랜다. 도무지 비판으로 바꿔낼 수 있는 그 어떤 사안도 무마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시민의 노무현 지지논리는 주로 추측으로 일관될 수밖에 없다. 그는 노대통령이 이라크파병을 결정했을 때도 "노무현은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을 겁니다"라는 추측논리로 그를 변호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조차 당연하다고 말한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의 인터뷰를 보자.

그니깐 노사모는 노빠니깐 하자면 하자는대로 하는 거야. 그러니깐 노사모지. 그러니깐 나한테 대해서도 욕하지 말라고. 나는 한겨레 논설우원이 아니잖아. 저, 누구 장정일 소설인가요?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그런 소설 제목 있죠? 내가 누군질 알아야 돼. 나는 논설위원이 아니잖아요. 옛날에는 컬럼리스트였지만...

유시민은 평소에 자칭 측근 5인방 중 하나임을 내세운다. 물론 그가 실세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측근이라면 노무현을 위해 몸을 바쳐서 옹호를 하라는 논리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이를 직접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 완전히 반대 논리를 펴기도 했었다. 그가 2000년 4월 <인물과사상> 단행본 '김대중 정권 몰락'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이다.

나는 언제든 대통령의 노인증세에 대한 가설을 흔쾌히 파기해 버릴 용의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어디서도 그런 적절한 설명을 만나지 못했다.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는 참모들은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는 것이 '어른'을 잘 모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유시민은 아직까지도 어째서 4년 전의 논리가 뒤바뀌었는지 해명하지 않고 있다. 측근이라면 비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측근이라면 맹목적으로 옹호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지 그 간극이 너무나 크다. 이는 바로 유시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이 아닌 한 인간에 대한 당파성의 폐단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는 노무현 지지활동을 하는 조건으로 후일 노무현 회고록 집필을 맡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 만큼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이다. 그러한 애정 때문에 논객으로서 당연히 갖춰야할 논리적 일관성까지 포기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를 확장시킨 당파성을 올바른 의미에서의 당파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단 한번도 파병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본회의 표결에 숨어서 반대표를 던진 유시민, 그 유시민이 과연 80년대 항소이유소를 쓴 유시민인지 의아할 뿐이다.

당파성은 시장논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지난 1월 28일 민언련 주최로 열린 <인터넷매체 선거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대표와 오마이뉴스의 정운현 국장은 당파성에 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는 '기계적 중립은 소유지배구조에 있어서 내재적 모순을 안고 있는 기존 종이언론들이 자신들의 편파성을 가장하거나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기계적 중립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치고 선거의 판세분석이나 방향을 보도할 때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것이 더 솔직한 것이란 게 서 대표의 입장이다.

정운현 국장도 서 대표의 주장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견해를 내놓았다. 정국장은 '친노나 반노라는 특정 정치세력에 올인하는 매체는 시장에서 냉엄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며 문제삼지 않으면서'그런 우려와 지적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강한 주장도 할 수 있는 것이 인터넷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당파성 문제가 시장논리로 극복된다는 정운현 국장의 발상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릇된 당파성이 가장 극대화된 매체는 조선일보이다. 그런 조선일보가 벌써 10년 이상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안티조선은 물론 안티조중동까지 주장한 정운현 국장이 이런 시장논리 맹신자였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오히려 당파성에 대한 폐단은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대표가 제대로 지적했다. 그는 토론회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지하는 것은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대 권력지지하는 한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라는 발언을 하여 방청자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그 혼란은 뒤로 하고, 서영석 대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정운현 국장의 시장논리는 맥없이 무너지게 된다. 매체 역시 산업이라면 산업을 위하여 힘있는 정권과 여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먹고 살기 위해서 권력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인데 어떻게 시장논리로 이를 극복한단 말인가?

당파성은 근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강준만 교수는 김대중의 정책으로, 장신기는 노무현의 정책으로 이들을 지지했고, 궁극적으로 이들을 비판했다. 하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성과 논리로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본질적으로 시장과 대립한다. 시장이 대중과 자본의 흐름을 대변하는 반면 당파성은 그것들이 놓치는 이성적 판단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의미에서의 당파성이라면 한 인간이나 한 권력에 대한 올인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유시민의 권력에 대한 올인은 반당파성이라는 말이다. 이성과 논리가 없는 당파성은 광신과 권력에 대한 아부일 뿐이다.

고로 이제부터는 올바른 당파성의 확립을 위해 논점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권력이 좌로 가면 좌로 가고, 권력이 우로 가면 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정책 방향을 잡고 그 기준으로 지지와 비판을 결정하는 당파성을 확립시켜야 한다. 이러한 당파성만이 시장논리를 극복하여 논객과 매체 본연의 비판기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은 <브레이크뉴스> 창간 5주년 기념으로 2월 27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인터넷논객과 당파성,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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