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뉴스2004/02/26 [07:27] 작성

인터넷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 읽기

 

사이버공간을 통해 표출되는 논쟁과 열정,시시비비와 이전투구의 사회학

 

 

1. 한국사회는 논쟁중? 사이버공론장과 정치웹진 그리고 논객 사이트들의 출현

인터넷이 한국사회에서 상용화되면서 인터넷 공간은 사회적으로 긴요한 이슈들에 관한 담론들과 변화를 모색하려는 '열정들'이 넘쳐나는 새로운 정치적인 실험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에 기반을 둔 온라인 신문과 정치웹진들은 여론과 정보유통과정의 순환을 촉진시키고,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고 신축성있고,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와 집단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참여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사이버 공론장의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다.

 그 결과 인터넷을 경유한 여론형성의 과정은 인터넷 토론문화의 특성인 개방성, 익명성, 속도성, 접근성, 그리고 쌍방향성에 힘입어 직접민주주의가 부분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이 아고라적인(e-agora)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특정사안과 아젠다에 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직접 기사를 작성하거나, 공적인 문제들에 관한 정보와 의견을 게시하고, 회람시키는 행위가 늘어남에 따라 사이버 공간에 심도있는 해석과 감성적 표현을 강조하는 새로운 유형의 '표출적인 저널리즘'(expressive journalism)이 뿌리를 내리게 시작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는, 인터넷을 통한 네트웍킹을 토대로 자발적인 정치인 후원모임 혹은 팬모임을 활성화시킨 '노사모'와 인터넷 신문의 힘을 과시한 <오마이뉴스>의 약진에서 보듯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정치적인 담론들이 폭발적으로 개진되고 유포되던 하나의 사건이자, 대안적인 의미의 공론장으로서 사이버공간을 급격히 성장시킨 기폭제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햇빛정책, 특검문제, 파병문제, 부안사태, 네이스, 새만금, 정치개혁, 언론개혁등과 같이 첨예한 정치사회적인 이슈들을 중심으로 특정 정치사안, 지역주의, 교육개혁, 노동, 환경, 문화, 여성과 소수자의 문제에서 세계화와 같은 탈지역적인 이슈들을 포함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웹진과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출현하고, 동시에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2. 논객사이트, 논객과 개입적 글쓰기

이러한 정보화테크놀로지와 정보인프라의 급속한 발전 속에, 인터넷상의 정치웹진 그리고 정치칼럼사이트 혹은 논객사이트를 중심으로 '논객'이라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 여론형성과 정치담론의 형성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새로운 담론생산자 집단들이 부상한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단순화시켜서, '인터넷 논객'이란 정치웹진이나 언론과 관련된 인터넷 언론/칼럼사이트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성이 도드라진 이슈들과 그 이슈들이 제기되는 특정 국면에 대한 분석, 해석,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담론들의 생산자로서 인터넷 논객의 역할은 거칠게는 주류언론에서 논설을 작성하는 논설위원이나 심층해설을 쓰는 정치평론가 - 논객으로서의 주필과 논설위원 - 그리고 섭외된 글을 기고하는 외부필진, 명망가, 혹은 기타의 전문가집단이나 지식인 집단과 일정부분 겹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담론생산의 수준에서의 이러한 글쓰기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논객의 글쓰기는 오프라인 매체에서의 글쓰기와 비교할 때 자신의 정치적인 경향성과 '당파성'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드러낸다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정치웹진에 글을 기고하는 일정 정도의 지명도를 지닌 논객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이들은 대부분이 남성이며, 'PC통신세대' 출신이 많으며, 연령별로는 20대에서 30대를 거쳐 40대 초반인 386세대까지를 포함하지만, 후자가 주도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소위 말하는 '386'세대의 경험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현 단계 한국사회에서 사회정치적인 측면의 개혁성과 개혁의 방향성과 권위주의의 청산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정치담론을 생성하고 유통시키는 매개자이자 해석자이며, 때로는 '싸움꾼' 혹은 훈수꾼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정치웹진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다 보면 논객들의 의해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개념과 정치투쟁과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에 참여하는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에 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즉 상당수의 논객들은 자신들이 과점언론이 주도하는 여론과 정치담론 영역에 있어서의 '지적ㆍ도덕적' 지도력(leadership)과 '동의'(consensus)의 생성구조에 - 헤게모니 작용 - 대항해서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이라는 '참호'에서 반-헤게모니적인 개입과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상당히 자각하고 있다. 즉 기존의 기득권을 누려온 주류사회의 '정당화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는 담론에 대한 분석과 반담론(counter-discourse)을 통한 시시비비 가리기 그리고 주류보수담론에 대한 대응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가 온라인 상의 정치웹진에서 다수의 논객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매체영향력과 물적인 기반이 훨씬 더 큰 주류내지는 보수언론매체를 상대로 치고 빠지는 일종의 '게릴라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람시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에 대하여 철학자이며 여성들도 또한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기적인 지식인은 반드시 전문가나 학자집단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인터넷 논객들 역시 다양한 사회적 그리고 직업적인 배경을 갖고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이나 오피니언 리더들과 비교할 때,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터넷 논객들의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자신들의 지적인 작업을 평가하거나, 추인하는 제도적인 통과의례나 '라이센스'를 - 이를테면 학위나 제도적인 소속성과 같은 - 필요로 하고 있지 않거나 획득하지 않고서도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논객으로 데뷔하는 진입장벽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들은 그 자신이 인터넷 논객인 정희주의 말을 빌리면 '학벌이나 나이나 실명여부에 크게 구애받음이 없이 (속칭 계급장 떼고) 자신의 글 솜씨를 가지고 논지를 펼치는' 이들이다. 즉 누가 논객으로서의 지위 혹은 논객성 혹은 논객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아직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거나 납득할만한 평가를 내려줄 공인된 기관이나 사회적인 정체성으로서 그들의 논객성과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공인할만한 지표나 척도를 설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논객들 중에는 스스로를 논객으로 칭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논객이라는 명칭과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비교적 합의가능한 잣대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웹진을 읽는 독자들의 인용하기 그리고 클릭수와 댓글달기의 형태로 표현되는 지지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논객성을 확보한 이들 중에는 진중권이나 변희재, 서영석과 같이 상당히 높은 지명도와 유명세를 확보해서, 오프라인에서도 인터넷상의 명망도와 능력을 인정받아 출판과 언론매체나 방송계 그리고 학계로 진출하는 논객도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대중문화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이버공간에서도 명망가 논객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스타시스템'이 확립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이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인터넷상의 글쓰기를 통해 물질적인 보상을 받기는 아직 어렵다. 하지만 상징적인 권력의 면에서는 논객들이 상당한 지명도를 얻기 시작했다. 아직 이런 식의 범사회적인 지명도를 확보한 논객은 소수이지만, 최소한 이들의 작업에 대한 평가가 언론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담론들이 다양한 독자들에 의해 '퍼가기'의 형태로, 또한 일상생활 속의 대화나 토론을 통해서 재인용되고, 계속해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논객들의 인터넷상에서의 글쓰기는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전업적 글쓰기'가 아니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논객사이트에서 논객들은 자신들이 쓰는 글에 원고료라든지 다른 종류의 물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웹진들이 고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아직 운영면에서 고전하고 있고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운영모델이라는 측면에서 과도기에 처해있는, 대다수의 인터넷 논객사이트들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이보다는 다수의 독자층에 의해 주어지는 '상징적인 권위'와 중요한 의제와 논쟁에 자신의 의견을 타인들이 보는 공공적인 성격의 플랫폼에 올리고, 회람시키는데서 오는 현실개혁에의 참여라는 열망과 힘돋구기(self-empowering)가 일종의 보상체계적인 역할을 한다.

3. 웹진식 글쓰기, 토론문화 그리고 댓글문화

모니터링과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다수의 인터넷 논객들이 자주 거론하거나 참조하는 글쓰기는 강준만, 진중권, 홍세화, 박노자, 손석춘등 오프라인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전투적인 지식인'들의 글쓰기적인 스타일과 방법론이다. 주지하다시피 <인물과 사상> 시리즈로 유명한 강준만의 경우 '1인 저널리즘'과 '실명비판'을 주창하면서 다양한 캠프의 한국사회의 지도적인 학자 그리고 지식인들과 논쟁을 벌여왔다. 그는 자신의 전방위적인 현실개입적인 비평과 비판을 '삶과 밀착된 구체적 현실과 관련된 행태에 관한 비판'이라고 정의한다. '호남소외와 영남의 패권주의'라는 지역주의의 문제에서 문화권력,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지지에서 안티조선 문제에 이르기까지 강준만은 꼼꼼한 자료수집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역'을 두지 않는 비판적이고 개입적인 글쓰기의 전범을 제공해왔다. '주례사비평'이나 '이빨 빠진'(toothless) 교과서적인 의미의 일반론이나 훈계조의 양비론이 주류인 정치와 언론담론의 영역에서 강준만은 자신의 정치색과 포지션을 드러내는 글을 써왔다. 하지만 그의 글이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소명의식만으로 예단된 것은 아니다. 그는 '논쟁의 룰'을 공정하게 확보하려고 시도한다. 동시에 그의 글쓰기는 현학적이고 과잉지식화된 학문적인 스타일을 채택하는 대신에,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평이한 어법을 구사하되, 구체적인 사안을 잡아 치밀하게 비판하고, 토론대상과 관련된 세세한 자료들을 수집해서 공략하는 방식을 취한다.

역시 논객들에 의해 자주 거론되는 글쓰기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 오프와 온라인을 오가면서 왕성한 개입적인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는 진중권이다. 진중권은 사이버공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동시에 가장 '악명'을 떨치는 논객이라고 할 수 있다. 우파적인 글쓰기를 공박한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유명한 진중권은 비꼼, 조롱, 패로디를 통해 날카로우면서도 해학적인 글쓰기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글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론이 있지만, 진중권식의 '텍스트 비평'은 그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텍스트의 논리구조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상대방의 언어를 해체하며, 재조립해서 되돌려준다.

그의 비평적 글쓰기의 전달방식은, 그 자신이 인터넷 논객이자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지적했듯이, 감정이 실린 비어와 분석적인 철학적인 용어를 섞어 쓴다는 점에서 혼성적이며 반권위적이며, 문체는 속도감있고, 경쾌하다. 진중권은 정력적으로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일련의 사이트들을 - 한겨레에서 조선일보 독자마당까지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 진보누리까지 - 방문해서 댓글달기나 실시간 토론을 통해 다수의 네티즌 독자들과 소통하거나 논쟁한다. 동시에 그는 글쓰기의 분석대상에서 극우뿐만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서는 넓은 의미의 '개혁세력'이나 민족주의 계열에도 비판의 날을 갖다댄다.

온라인 공론의 장에 나서지 않고 오프라인에서의 작업을 고집하는 강준만에 비해, 진중권은 다수의 정치웹진에 글을 기고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채팅방에 들어가거나 댓글달기를 통해 네티즌 독자들과 줄기차게 토론해왔다. 냉소가 아닌 패로디와 '쇼크효과' 그리고 상대방 텍스트의 논리적인 허점이나 '논점일탈'을 지적하는 진중권의 글쓰기는 수많은 논쟁꺼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터넷식 글쓰기의 대표적인 전형이 되고 있다.

물론 논객사이트의 필진이나 논객들이 모두 위에서 언급한 강준만이나 진중권 수준의 글을 써내거나, 자료수집과 자신의 지향점이 충분히 녹아든 글을 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논객들의 글이 기계적인 중도주의나 논전의 한가운데가 아닌 사이드라인에서 도덕적인 권위만을 강조하는 양시론 그리고 훈계주의의 입장을 벗어나서 자신의 정치적인 가치나 판단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실명비판을 통해, 두루뭉수리한 일반론의 그늘아래 안주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인터넷 논객들의 글쓰기에 반영되고 있는 강준만식 그리고 진중권식 글쓰기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사회 내에 존재하는 문제점들과 '근본주의적인 폭력들'에 대한 진중권의 지속적인 개입적인 글쓰기는 사이버 공간상에서 논객들에 의해 꾸준히 모방되고,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서 말한다면, 인터넷 논객들의 글쓰기는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일종의 '현실개입적'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외견상 가치중립적이기 보다는 '가치개입적인' 글,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동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 기존의 보수적인 상징가치들을 패로디하거나 전복시키는 글, 그리고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그리고 이슈를 지지하는 글을 쓴다. 인터넷 논객들은 '객관적인 저널리즘'의 잣대나 '초연한 관망주의'라는 오프라인 미디어의 잣대나 스탠스를 지키기보다는,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와 대상에 관해 정파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편향된'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인터넷 웹진이나 정치칼럼사이트에 기고하는 대부분의 논객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그리고 넓은 의미의 진보적이거나 '개혁세력'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설명될 수 있고, 웹진에 찾아오는 독자들 역시 비슷한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웹진에 기고하는 논객들은 주류언론매체에 - 흔히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고 대립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진보계열의 논객들은 주류언론, 즉 조중동을 자신들의 상업적인 이익을 우선하거나 공적인 담론을 선점하면서 과도한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상징권력을 축적한 '보수,' '극우' 내지는 '수구 그리고 '기득권세력'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과점적인 언론권력 그리고 문화권력으로서의 조중동에 관한 정치웹진에 실리는 글의 논조와 필진들의 의견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은 인터넷 논객들은 주류언론에 일정한 대립각을 세우고 보수-수구적인 언론에 복무하는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정치적인 '기회주의'와 '안보상업주의,' 그리고 '현실추수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반면에 보수적 지식인들은 진보적인 논객들이 지나친 편향성 혹은 '당파성'을 앞세우며 일부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자내지는 '치어리더' 심지어는 '깃발부대'나 '홍위병'의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또한 이들의 글쓰기는 과도한 이념적인 투하와 공격적인 언어로 경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들 진보계열의 논객들은  '좌파적 포퓰리스트 정권'의 출현에 힘입어 '완장을 차고' 정치담론의 장에 뛰어든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인'들 내지는 '균형감각을 상실한' 선동적인 이데올로그 정도로 규정된다.

현재 인터넷공간은 '보수:진보'라는 가치와 이데올로기적인 노선을 따라 지지세력이 세분화된 가운데, 보수적 그리고 상업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확립된(established) 주류미디어에 맞서서, 인터넷 중심의 신생 미디어들은 넓은 의미의 '진보'와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 여론형성의 장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사이버 공론장에서는 범진보계열의 담론들이 범보수권의 담론을 일단 양적인 면에서 압도해왔다는 점이다. 동시에 숫자나 지명도, 그리고 사이버 공론장에서의 활동면에서 보았을 때, 진보나 중도우파계열의 논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보수나 극우계열의 논객들은 소수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계열의 경우 온라인에서의 논객들의 역량은 아직까지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자체 담론생산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독립신문> 이나 <시스템클럽>과 같은 온라인 보수사이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적인 담론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보다는 오프라인의 보수적인 논객들의 글에 주로 의존한다. 이것은 주류언론이 보수적인 기득권 수호와 헤게모니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이미 강력한 지위와 힘을 행사하고 있는 담론의 생산자이자 전파자이기 때문이고, 이런 환경 속에 온라인상의 보수사이트들의 의제나 담론을 통한 설정능력은 아직 수동적이고 제한적이다.

인터넷 정치웹진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추상적인 일반론에 머물거나, 지나치게 '계몽적이거나' '엄숙주의적인'글 그리고 '양비론적'인 글은 정치웹진에서 흥미를 끌지 못하거나, 독자들에 의해 혹독하게 비판받는다. 이것은 정치웹진에 찾아오는 독자들이 이미 상당할 정도의 '정파적인' 집단이자, 주류언론이 잘 제공하지 않는 '주장적' 혹은 논쟁적인 글쓰기와 긴급한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한 발빠르고, 심도있는 해석과 해설, 시시비비와 대의명분을 따지는 글, 그리고 특정 웹진에 찾아오는 네티즌 상호간의 일정하게 공유되는 기대와 '공감'을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조금 다른 앵글에서 보았을 때, 정치웹진과 종이신문을 차별화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댓글달기와 논객과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활발한 - 때에 따라서는 치열하지만 공격적인 - 논쟁과 토론의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이다. 즉 독자가 '리플'로 주어진 기사와 주장 혹은 해석에 관해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정치웹진이 지닌 강력한 상방향적인 의사소통의 한 예이다. 댓글은 일반적으로 1차적 텍스트, 즉 논객의 글에 '기생하는' 보충적인 텍스트이지만, 때로는 다른 글이나 기사의 퍼오기를 통해서 댓글 자체가 물리적으로 메인에 있는 논객의 글보다 더 분량이 많아지거나, 논리면에서 더 치열하고, 첨예한 내용들을 담고 있을 때도 있다. 메인 텍스트와 댓글 그리고 이러한 글들이 다른 논객사이트에 퍼올려져서 다시 독자들의 반응을 재견인함으로써, 주어진 주제나 논조를 중심으로 한 토론이 점화되면서 표출된 의견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상승효과내지는 에스칼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이버공간 상에서 시공간적인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댓글달기와 퍼오기, 그리고 서로간의 논쟁의 형태를 통해서 그때그때 토론과정에 참여하거나 강하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네티즌 독자들의 경우, 주어진 기사에 대한 상당히 논리적인 대응을 추구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서적인 지지를 표현하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 일방적인 지지, 공감과 찬사, 욕설이나 야유, 그리고 패로디를 포함한 - 결코 자제하지 않는다. 논객사이트와 정치웹진이 형성하는 소규모의 공론장들은 기존언론에 의해 제공되는 정보와 주장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안적인 정보와 해석을 구하며, 동시에 네티즌 독자들 혹은 다중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해 구체화된 경험과 거기서 체득한 정보나 지식을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이트를 중심으로 교환하고, 비교하는 장이다.

4.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의 의의와 한계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들은 아직은 그 역사가 일천한, 매체적인 정의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신생 미디어 양식'(emergent media form)이다. 작년 대선기간을 기점으로 사이버 공간상에 기존언론과 시각과 운용면에서 상당히 차별화되는 공론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사회의 제반문제들을 심도있게 숙의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출현은 분명히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들이나 정치개혁에 관한 주제들을 놓고 기존 언론의 전문가나 학자가 아닌, 다양한 직업적 그리고 사회적인 배경을 지닌 시민들이 논객과 독자로 참여하고, 직접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담론들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담론들을 통해서 타인들과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은 시민이 이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새로운 종류의 공공저널리즘의 한 모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는 이제까지 언론산업과 국가가 주도해 온 커뮤니케이선 과정에 그동안 참여하지 못했거나, 반영되기 어려웠던 목소리와 의견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냄으로서, 탈권위주의,정보화와 다양성의 시대의 새로운 대화와 토론의 모델을 제공한다. 동시에 특정 논객사이트들은 비슷한 정치적인 견해나 관심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모여들어서 진지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특정사안들을 논하는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구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대선 기간동안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논객사이트 <서프라이즈>의 경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지지자와 '팬'들이 그들의 정치적인 견해와 노후보에 대한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표출해내고, 서로간의 결연을 공고이하는 공동체적인 네트웍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정치냉소주의의 시대에 이 사실은 웹진과 논객사이트가 기존 제도권 언론과 정치가 간과하거나,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인 욕구와 필요, 그리고 변화에의 열망을 견인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를 위시한 논객사이트들의 출현과 단시간 내의 급속한 성장은 몇 가지 문제점도 발생시켰다. 정치사안과 쟁점에 대한 열려진 숙의와 절차적인 정당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한 설득 대신에, 특정 노선이나 정치경향성을 - 즉 '당파성' - 맹목적으로 추수하는 정치담론들이 과잉으로 생산되면서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들은 중요한 사회정치적인 의제와 사안에 대한 토론장에서 편가르기, 대립과 반목, 갈등과 이전투구의 난장으로 변화하는 부정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서프라이즈> 내에서 햇빛정책을 둘러싼 특검과 신당문제, 이라크 파병과 같은 첨예한 이슈들을 두고 벌어진 분란과 갈등은 동프라이즈와 남프라이즈로의 분화를 끌어냈고, 상당수의 논객들과 독자들이 <서프라이즈>를 이탈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 와서는 청와대가 <서프라이즈>의 대표논객들과 접촉을 하고, 회동을 가짐으로써 논객들의 글쓰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외부로부터 보수세력에 의해 제기되는 비판과 정치웹진들 사이의 갈등과 더불어, 논객사이트들에서 논리적인 방식과 정론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사사건건 반목하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공세를 취하는 논객들과 특정노선을 추수하는 독자들이 생겨남으로써, 다른 정치적인 시각을 가진 타자들을 용인하고 그들의 견해를 숙고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 혹은 '본질주의화'한(essentialist) - 당파성과 노선주의, 편가르기에 따른 갈등과 파행, 그리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인해 논객사이트들이 사분오열되고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치열하게 진행중인 언론의 역할과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둘러싼 - 상징적 권력을 둘러싼 - 싸움은 인터넷상의 정치담론의 공론장이 지나치게 좁게 정의된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파당성(partisanship)에 의해 혼탁해지거나 극단적인 언설과 비난을 만들어냄으로써 민주적인 공론장으로서의 정치웹진의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러한 인터넷 논객사이트의 '과잉정치화'와 흑백논리에 의한 갈등은 새로운 표출적인 저널리즘과 열린 담론들의 정치가 개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정작용과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첫째, 논객사이트 내에서 지나친 정치적인 편향이나 경향성에 의해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이 훼손되거나 비생산적인 측면으로 논쟁이 흐를 수 있는 가능성들을 조정하거나 정화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씨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은 당파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지나친 당파성이나 특정 노선이나 정치집단에 대한 성찰성없는 추종이 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성찰적인(reflexive) 씨스템의 구현은 각 논객사이트의 운영자들과 독자들이 얼마만큼 다양한 정치적인 시각과 가치를 관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즉 정치적인 스펙트럼과 지지방식에 있어서 다양성과 개방성이 답지되고 허용될 수 있는 분위기와 공정하고 균형있는 정치담론과 주장의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게임의 룰'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고 시행될 필요가 있다. 대화와 정치한 논리, 그리고 사실에 입각한 이슈파이팅과 논객과 독자간의 상대방을 배려하고, 열린 토론문화를 통해서 이러한 게임의 룰은 상당 부분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둘째, 논객사이트의 주 컨텐츠는 아직까지 지나치게 '정치중심적'이다. 논객사이트의 담론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그리고 정치행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나 지지 그리고 집중도를 보여주기 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안들도 - 노동, 젠더, 환경, 문화, 국제정보, 소수자의 문제등 - 아우를 필요가 있다. 현 단계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복잡다단한 가치체계와 문화적 그리고 세대적인차이들을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식의 전환과 새로운 프레임들이 긴요하게 요청된다고 수 있다. 즉 너무 좁게 정의된 의미의 정치영역과 담론의 한계내지는 특정한 '진영논리'를 벗어나서 외연이 확장되고, '뺄셈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탈권위주의 시대환경에 걸 맞는 넓은 의미의 '삶의 정치(life politics)'와 연계되는 다양한 주제와 이슈들이 좀 더 세분화되어 다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남성위주의 담론과 주제 그리고 남근주의적인 화법을 생산해내기도 하는 논객사이트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여성논객과 소수자논객들을 적극 발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논객사이트의 운영면에서 이들은 아직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논객사이트들이 외부에서 오는 압력에 저항하고, 전문성이 있고,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수준의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논객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취약한 수익모델을 변화시켜야 한다. 물론 많은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들이 광고와 법인화를 통하거나 후원인제도를 통해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자 현재 노력하고 있지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연구자들인 최영묵 그리고 윤태진이 지적하듯이,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특수한 정치국면을 제외하고는 논객사이트의 미래가 아직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인터넷 정치컨텐츠만으로 재원을 확보하기는 그 가능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의 논객사이트와 정치웹진들은 유료독자의 확보와 오프라인의 매체들과의 전략적인 제휴나 연합을 통한 지면확보나 출판등의 형태를 통해 시너지효과의 창출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넷째, 정치웹진이 표피상의 객관주의나 양시론이 아닌 어느 정도의 당파성과 정치적인 경향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현실개입적인 글과 정치적인 언설들을 제공하는 것은 보수적이거나 상업화된 언론매체가 아직도 강세인 현재의 오프라인 미디어 지형을 고려할 때 강점이자 웹진들의 존재이유가 될 수 있다. 집요한 문제제기와 심층적인 해석 그리고 감정이 투하된 논객들의 글은 정치웹진의 강점일 수 있다. 하지만 시비와 편가르기가 주를 이루고 숙의(deliberation)가 결여된 웹진의 공간은, 언론학자인 이상길이 지적했듯이, '논쟁의 게토'로 전락할 수 있다. 동시에 글쓰기의 스타일과 내용면에서 현재 웹진들이 제공하는 담론들이 사회적 팩트와 주장 그리고 감성이 잘 어우러지거나 균형을 이루는 글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교육수준이 높은 독자들과 기존언론으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음에도 - 즉 수준높은 정치담론에 관한 수요가 있음에도 - 논객들의 글이 아직은 제한된 의제설정능력과 설득력을 행사한다는 측면과도 관계된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등의 인터넷 미디어가 이제는 주류미디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상당할 정도의 영향력과 인지도에서 급성장을 했다면, 정치웹진들은 아직은 의제설정과 정치담론의 생성면에서 그리고 운영면에서 과도기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온라인상에서 보다 균형적인 언론의 형성과 왜곡되지 않는 언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진보'와 '개혁'을 추구하는 대안언론 그리고 '독립언론'으로서의 정치웹진과 논객사이트들 역시 현실정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인 관심들을 견인하면서, 동시에 정당이나 특정 정치행위로 상징되는 현실정치와는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론을 이끌 수 있는 논리와 주장을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 발제문은 한국언론재단 2003 연구보고서 <온라인 정치컨텐츠 연구>중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보고서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지승호, 이상길, 최영묵, 윤태진, 이창현, 이창은, 변희재, 서영석, 안병영, 노혜경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필자 주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언론재단> 연구위원입니다 

* 본문은 <브레이크뉴스> 창간 5주년 기념으로 2월 27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인터넷논객과 당파성,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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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장안의 화제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러 갈까 보다.

공연은 일요일 오후 2시, 예술의 전당에서...

같이 보러 갈 친구를 찾습니다.

아줌마가 된 친구, 정옥이를 꼬셔서 갈까보다.

배불뚝이가 된 정옥이도, 맘마미아가 보고 싶을 것 같다.

친구를 위해서 친구 남편한테 보여달래볼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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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 노래방 기계 수록곡이다.

노래방 가서 신나게 불러봐야지.

 

그리고 3호선 대구 공연이 잡혔다.

3월 20일 토요일, 시간과 장소는 아직 미정.

꼭 보러 간다.

요즘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즐거움은,
3호선 버터플라이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빙 하는 것...

괴로울 때, 죽여 밟아 묻어 C발...을 들으면

속이 후련하다.

 

 




< 금영 >


찔레꽃 ( 62794 )
사랑은 어디에 ( 9652 )

< 태진 >

꿈꾸는 나비 ( 10006 )
그녀에게 ( 12375 )
사랑은 어디에 ( 12724 )
스물아홉 문득 ( 12729 )


p. s


< 금영 >

허클베리핀 " 사막 " ( 64262 )
swallow " 긴 방랑이 끝나는 아침 " ( 64261 )
Nell " 인어의 별 " ( 66607 )
피터팬 컴플렉스 " 너의 기억 " ( 9658 )


< 태진 >

swallow " 긴 방랑이 끝나는 아침 " ( 12713 )
Nell " 인어의 별 " ( 12692 )
피터팬 컴플렉스 " 너의 기억 " ( 12686 )




마이크를 잡아 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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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부터 오늘까지 경찰서 출입한지 스무날째다.

흉칙한 사건들을 연일 접하고 있다. 인구 18만이 채 안되는 이 지방 소도시에도,  하루 평균 교통사고는 3건이상 일어나고, 단순 폭력사건도 두 세건 남짓. 최근엔 부부싸움 도중 공기총 연발로 아내를 살해한 사건과 흉기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한 사건 등... 무서운 일들을 접하게 된다. 물론 나야 형사들에게 간접적으로 듣는 일이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엔 강력계 모 형사에게 어제 구속영장 신청에 들어간 강제 추행사건 결과를 묻다가 시체 부검사진을 엿보게 됐다.

'아 이거 무슨 사건이지? 국과수에서 보내온 공문인데, 무슨 사건인지 알아볼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까발려진 배와 뇌, 인체의 신비 전시회를 관람하는 듯한... 시뻘건 생체내부가 드러난 사진들이 수십장이다.

'뭔가 큰 거 같은데....'

"어제 성추행 사건 기각됐다구요? 피의자 풀려났겠네요?' 질문은 연발...
내가 엿보는 걸 알아채곤, 모 형사 서류를 은근슬쩍 서랍속으로 집어넣어 버린다.
'C발... ' 이런 식이다.  별것 아닌 것도 안갈켜주기 일쑤다. 근데 이건 낌새가 이상하다.
최근에 취재한 살인사건의 부검 결과이겠지... 추측만 할 뿐이다.

형사에게 뭔가를 알아내야 하는 것, 이게 경찰출입 기자의 능력이다.
적당히 둘러치기도 해야하고, 상대 취재원의 머릿속을 꾀뚫어보기도 해야하고.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난 그런 치밀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인간이다.
그래서 괴롭다. 어디서 유유자적하며 살고싶은데...

지난번엔 보도팀으로 항의까지 받았다.

한 고등학생이 한밤중 침입한 강도에게 흉기로 얻어맞아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에 따르면 20대로 추정되는 강도는 달아났고, 고딩은 아쉽게도 강도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사실, 같은 출입기자 선배에게서 듣고, 자세한 걸 경찰에 확인도 못한채 보도가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기사를 쓴 것이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다음날 오전 경찰서 상담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고딩의 어머니가 담당형사에게 왜 방송에 나갔는지 항의전화를 수차례 했단다. 그리고 누가 기사를 썼는지 그 기자에게 당장 전화해달라고 했다는 것. 담당형사에게 전화했다.

" 범인은 아직 못잡았나보죠?"

 "네.. 모군 기사 기자님이 쓰셨습니까? 어떻게 알고 쓰셨죠?"

"그야 수사일지 보고 썼죠."  흠... 수사일지도 못봤는데, 거짓말로 대응.

"저한테 확인이라도 하고 쓰시죠." 참, 모군 부모한테서 항의 받았지요? 싫은 소리 하더라도 좀 참으세요"

허걱 이게 무슨 말... 담당형사 당당하게 선수를 친다. 범인 잡았냐는 내말에는 대답도 않은 채...
가슴이 뜨끔하다. 이렇게 허를 찔리다니.

"저야 제 할일 한것 뿐입니다. 범죄 재발방지 차원에서 기사는 써야지요."

임기응변으로 뻔뻔스럽게 넘어갔지만 머릿속은 복잡하다.
그리고 오후에 역시나 모군의 어머니 전화. 말안해도 뻔할 뻔자. 나한테 사과하란다.

"당신 때문에 우리 애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허걱... 내가 범인이라도 되는 것 같다.
상대방이 격분해 있을 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선 그 사건은 경찰에 접수된 사건이고, 그 사건을 안 이상 보도를 안할 수는 없습니다. 재발방지차원에서로도 우린 보도해야 하고요. 그리고 그 사건기사의 경우 사생활 보호을 위해 최소한 익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주변 분들이 알고 계시다면 그건 방송때문이 아니라 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미 담당형사에게 나의 헛점을 들은 모군의 어머니.

"뭘 잘했다고 큰 소리에요? 당신, 그래도 적어도 피해자인 우리한테 확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당장 사과하세요. "

허거덕.. 맞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 기사를 쓸때, 피해자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지 않고 썼던 것이다. 후회막급.

요며칠 경찰서 출입을 하면서, 사는 게 회의적이었다. 처음엔 보도팀 선배에게 듣는 잔소리와 소닭 쳐다보는 듯한 형사들의 반응에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건지, 깜깜했고, 사람들에게 치이는 게 도무지 싫었던 것이다. 또 몸은 몸대로 힘들고... 다음날 아침의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었다. 뭐 여전히 그렇지만.

오늘 점심, 짬뽕을 시켰는데... 아침엔 멀쩡했던 속이 니글거려온다. 벌건 부검사진이 떠오른다.
내일 아침, 사건사고는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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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그루 > 상반된 유행

웰빙, 아침형 인간, 10억
이것들이 요즘 사람들을 휘어잡고 쥘락펼락 난리인 것들..

원채 이거해라 저거해라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아
게다가 이토록 난리이니 절대 좋아할 수도 없는 강한 거부감!

아이러니 한 것은 10억을 만들려면 웰빙을 포기해야하고
웰빙을 추구하려면 10억은 포기해야한다.

어느 누가 할것 다하는 웰빙의 삶을 살면서 10억을 모으냔 말이다.

게다가 10억을 만들고 나면 남은 것은 초췌한 "나"와 "10억"외에는
그야말로 가진건 "돈"밖에 없는 황폐한 인간하나 서 있을 것이다.

자기 방식을 찾는 것은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내 삶을 봐서도 어려운 일인것 같다.)
이렇게 이렇게해라 저렇게해라 하는 유행에 떠밀리다보니
"웰빙 스트레스" "10억 폐인"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말이다..

아무튼.. 웃기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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