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주토피아 - 디즈니 주토피아 아트북
제시카 줄리어스 외 지음 / 참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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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가 나와줘서 고마운 아트북입니다. 아트북은 그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설정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읽는 내내 `이거 영어라서 그림만 봤으면 어쩔 뻔 했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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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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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는 단편집입니다. 이 단편들은 모두 왕을 잃고 황폐해지기 시작했거나, 황폐해진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십이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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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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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챙겨보는 것도 아니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그래도 그 작가의 작품을 한 번씩 찾아보기는 한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굳이 일부러 찾지 않아도 온라인 서점에서 수상자 발표가 나면 선전을 빵빵 해 주니 자연스럽게 작품을 찾아보게 되는 것에 가깝달까.


 어쨌거나 올해 수상자인 스베클라나 알레시예비치의 작품이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제목 자체로도 흥미롭고, 내용 소개를 보니 더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여자들, 하지만 기억되지 못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성들은 참전하여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나?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온 이야기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 중에서)

 초반에 '어떻게 이 책이 세상에 나왔나'를 운운하는 부분은 조금 힘겨울 수도 있지만, 일단 이 부분을 넘어 각종 인터뷰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부분들이 시작되면 그 때부터 책장은 쉼없이 넘어간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정말이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이 말 그대로 '여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쟁이 나면 아이들과 여자들이 제일 불쌍하지' 식의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전쟁의 참상에 대해 말하는 부분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 중에 문득 문득 드러나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후 그녀들의 삶 자체에서 짙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짙은 감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지금은 책을 반납해버려서 정확히 인용하기는 어렵지만,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한 여성이 행군 중인가 제비꽃을 보고 그것을 꺾어 총에 꽂아두었다가 깜빡 그것을 빼는 걸 잊었다. 그걸 본 상관은 화를 내며 당장 빼라고 하며 벌로 3일 간 밤샘 경계 근무인가를 서라고 하는데 자신은 그 꽃을 주머니에 간직하고서는 기쁘게 근무를 서며 새벽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단다. 아, 그렇지.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빨간 목도리에 집착하다가 그 목도리때문에 죽게 된 동료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해 주는 여자는 안타까움을 보일 지언정 그 친구를 보고 참 바보같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랬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적군이라도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네가 먼저 하라고 미뤘다는 이야기에는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올 것 같았다. 이들에게 누가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방을 잘라서 치마같은 군복을 만들었다거나, 여자 속옷에 감격한 이야기들(이건 정말 많다), 그리고 전쟁 중에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던 이야기들. 하지만 그렇게 전쟁 중에 목숨바쳐 싸웠으면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배척받고, 입을 봉하고 살아야 했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내가 정말 놀라며 이해되지 않았던 건 이들이 전쟁에서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느꼈느냐가 아니었다. 먼저 놀란 건 이렇게 전쟁에 참가한 여성들이 생각보다 너무 어렸다는 점이다. 스무살, 서른살의 여성들이 아니라 십대의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열세살 짜리 아이가 자원해서 나갔다는 말도 있었다. 십대라니! 아니, 십대가 뭘 안다고! 두 번째로 놀란 건, 그렇게 어린 소녀들이 '자원해서' 나갔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열이면 열 모두 '그 여성들은 징집되어 전쟁터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다. 대부분은 자원해서 나갔다. 물론 그렇게 '징집되어' 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의사였다거나 특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 말이다. 그런 건 나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채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았던 십대들까지, 그것도 '넌 전쟁에 나가기 너무 어리니 돌아가라'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몇 번씩이나 관청에 찾아가 간청을 해서 갔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친구들 배웅갔다가 트럭에 몰래 숨어타서 전쟁에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게 전쟁에 나간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쟁이 났으니 자신은 당연히 전장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눈을 뜨면 전쟁에 나가라고 독려하는 선전물들에 둘러싸여 있고' '학교에서는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란다. 최근 국정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워서 그런지 나는 이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교과서 하나 바뀌는 걸로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느냐고. 그런데 정말 달라질 수 있다. 그게 교육의 무서운 점이다. 십대 아이들을 전쟁에 내몰만큼. 그것도 자신이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말이다. 어려서 그렇다고? 내 친구는 20대에 들어간 학교의 채플 시간에 영향을 받아 그 종교를 가지게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종교에 대한 반감은 없어졌던 걸.(심지어 소위 말하는 '이단'이라는 종교인 걸 알면서도) 그 친구가 어리석어서 그랬을까? 교과서 말고도 역사를 알려주는 다른 자료는 많지 않냐고? 그걸 '잘' 판단해서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아이들 근처에 몇이나 되는데?

정말 여러모로 무서운 책이었다. 정말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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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1-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들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참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카 2015-11-15 17:11   좋아요 0 | URL
하지만 그것이 또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삼인성호라고 주변에서 한 목소리로 떠들면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고, 혼자서 휩쓸리지 않고 있다고 한들 영향을 안 받을 수 있을까요.

당장 저희 어머니만 해도 `교과서? 잘못된 거 고치겠다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특별히 어리석어서일까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받아서 말하는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봤습니다.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어느 독일인 이야기 - 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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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스릴러나 호러에도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단 추리물이라거나 호러물이라면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책으로 치자면 호러물은 (의외로) 추리물보다 더 협소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호러물 자체는 굉장히 대중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어릴 때 '학교 7대 불가사의'류의 괴담을 속닥거리며 나누던 시절이 있을 것이고,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지 않던가.

 어디에서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공포물을 접할 때는 일종의 카타스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화면이나 책 속에는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는 사람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다. 때문에 그 공포는 '현실의' 공포가 아니라 '안전한' 공포이며, 오히려 무서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현실의 안전함을 재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문에서 사건/사고를 읽으며 끌끌거리는 마음이나 각종 재난을 다룬 이야기를 읽는 마음 역시 비슷할터이고,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내가 홀로코스트 이야기면 일단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다 이런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끔찍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접해도, 비록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해도 결국 나와는 거리가 있는 사건이다. 때문에 나는 안전하며, 지금의 인류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마음 놓고 편안한 쿠션에 몸을 묻은 채 끌끌거리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일 테고.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내게 세련된 공포 영화와 다름이 없는지도 모른다. 응. 어쨌거나 다 지난 날의 이야기니까. 나는 안전하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다 읽을 때면 늘 생각하곤 한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 이 때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지 뭐야. 그리고 설마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겠어.'

2. 
 도서관에서 이 책을 뽑으면서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시점만 바뀌어서 다시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사는 사람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누구나 홀로 죽는다(http://icarus104.egloos.com/5733603)'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만.

 이 책은 나치 치하에 얼마나 독일이 비참했는지,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고발하는 그런 글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앞으로 있을 전쟁을 예감하며, 1차 세계대전의 발발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3년까지의 일을 회상하고 있는 글이다.(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39년 9월 1일이며, 이 글의 구상이 나온 것은 1939년 봄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죽음의 수용소 이야기나 게토 이야기, 유대인들을 거리에서 쏴 죽이는 이야기, 강제 노동 등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하다. 히틀러와 나치에, 각종 유대인 탄압이나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많아도,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이 시기는 내게 거의 '미싱 링크'에 해당한다. 게다가 저자는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 시기를 써 내려간다. 이런 시선 역시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모든 세계사 교과서에 꼭 나오는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쓰면서도 '사라예보 사건'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쟁의 발발은 '휴가가 취소되어 슬펐던 날'로 기억되며, 전쟁 중 시기는 매일같이 게임을 하는 듯 즐거웠던 시기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역사적인 사건은 집중도가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역사적인 사건'은 실제 현실, 즉 개인의 사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사건도 있다. (중략) "1890년,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하다." 분명 독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몇몇을 제외하면 어떤 독일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생활은 전과 다름없이 계속되었다. (...) 데이트 약속이나 오페라 공연조차 취소되지 않았다. (...) 이를 다음 사실과 비교해보자. "1933년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다." 6,600만 명의 인생에 지진이 일어난다! (p.18)


 이 말 그대로다.



3.

 처음에는 흥미롭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힘겨워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뒤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 하는 동시에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책장을 덮고 한숨을 쉰 것이 수십번이다. 중간에는 너무 읽기가 힘들어서 잠깐 책을 덮고 만화책으로 도피하기까지했다. 어째서일까? 이 저자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냥 딱히 정해진 정치색 없이 그 날 그 날의 일상을 살아내기 바빴던 사람이었다. 사회면을 보고 끌끌거리면서도 올림픽 등에서 자국의 우승에 가슴 설레하던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회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취업을 해 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나 나나 사람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2015년에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민주주의' 나라라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고 저자는 1933년(마지막 회상 기준) 독일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가던 딱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그런데 왜 이렇게 그와 내 삶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보이는 걸까? 왜 저자가 묘사하는 삶이 지금 내 삶과 이렇게 비슷하지? 그걸 처음 자각하던 순간 등 뒤가 서늘해졌고, 이후 페이지 페이지마다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에 원래 표시를 하지 않는 나지만, 중간 중간 인상깊은 장면마다 체크를 해 놓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내 다시 체크하길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법이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하고 일상생활도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 자체를 나치에 대한 승리로 보려 했음을 고백한다. 저들이 아무리 거칠고 요란하게 행동해도 기껏해야 정치적 표면만 휘저을 수 있을 뿐 그 아래 현실 생활이라는 대양의 깊은 곳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을까? 그 때 이미 수면에서 무엇인가가 아래까지 뚫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 사적인 정치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화해할 수 없거나 격렬하게 증오하게 되는 것으로, 부엇보다도 늘 정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담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p.138)


 정말 비슷한 장면은 계속 나온다. 이 시기 독일에서 어떤 법이 제정된다. 이 법은 정부의 행위를 숨기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행위를 숨기기 위한 게 아니라 '그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위험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p.158) 이 때부터 누군가가 정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하려고 하면 '너 그러다 어떻게 될 줄 알고?'하며 쉬쉬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안 그런가? 내가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공개적으로 하려 할 때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그러다 큰일난다며 말리던데? 심지어 선거에서 나치당이 패배(44%지지)했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나치는 '패배를 승리처럼 축하하고 테러를 강화하고 축제는 열배로 늘렸다'(p.159) 그러니까 지금은 안 그러냐고. 국민들이 반대하고, 각종 역사 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하면 뭐 해. 그냥 국정 교과서 밀어붙이지 않던가. 아무리 시민 단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도, 사회의 각계에서 우려를 나타냈어도 4대강 공사는 시행되지 않았던가. 한때 힐링 문학이 유행했고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돌려 일상의 소소한 먹방, 쿡방에 몰두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전원문학이 유행했었다. 각종 풍경 화보집, 전원시, 가족 소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나왔다고 한다.


 왜 유대인을 보이콧해야 하는지 그 이유라고 갖다붙인 것을 보면 나치가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헌법을 무시하고 개인적 자유를 제한하려고 공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전설을 퍼뜨릴 때만 해도 나치는 신빙성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지어냈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국회의사당에 불까지 놓았다. 이에 반해 유대인에 맞서 불매동맹을 맺어야 하는 이유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면 그 말을 믿는 척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뻔뻔스러운 모욕이고 조소였다.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새로운 독일에 대해 온갖 꼬투리를 잡아 아무 근거 없는 끔찍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니 이를 막고 처벌하기 위해 불매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p.173)


 1933년 나도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기는 했다. 이제 법원에 나가지 않겠다고, 이민을 가겠다고, 보란 듯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해서 식구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저 말뿐이었다.(p.170) 이렇듯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기다리면서 나는 틀에 박힌 일상을 계속 채워나갔다. 분노와 공포는 그냥 억누르거나, 우습고 비생산적이지만 집 안에서만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 수백만 명처럼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면서 그 일이 나에게 다가오게끔 했다.


 그 일은 나에게 다가왔다.(p.171)


 지금은 이 부분을 인용하는 것 이상 내가 책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생각이 지금보다 더 정리되면, 그리고 감정이 지금보다 더 가라앉으면 다시 한 번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에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책 속의 세상과 너무 닮아있다. 나는 분명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뽑아들었는데,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이 전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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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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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폭풍전야 월요일, 외도직전 화요일, 소통불가 수요일, 대폭발 목요일,

탈출시도 금요일, 앓느니 죽는 토요일, 그리고 눈물바다 일요일…
일일연속극보다 시끌벅적하고 막장드라마보다 꼬인 가족 8인의 88마일이 펼쳐진다!"
-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저 소개를 보고, 그리고 책 표지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이야기는 죽어라 잘 안 맞는 사람들이 한정된 공간에 모여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요절복통 시트콤 같은 것이었다. 난 일단 웃을 준비, 혹은 쯧쯧거릴 준비를 하고 책 표지를 열었고, 그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문구들 중에서 건질 단어는 '꼬인' 한 단어다. 

 화목하고 서로 모여 왁자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 이 가족의 모습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 모습일 터. 그렇다고 나처럼 '평범한(?)'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친척 집에 가는 걸 가능하면 피하고 싶고(그 친척을 싫어하는 것이 아님에도!), 명절처럼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리에 가면 어색해서 묘한 썩소같은 미소를 짓고 또 짓다 못해 연휴 마지막 날이 되면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들과 일주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면? 세상에 악몽도 그런 악몽도 없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는 것 같다. 그렇다. 아마 당신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저 표지는 사기라니까!)

 가족이란 참 이상한 존재들이다. 도대체 가족을 엮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하기가 어렵다. 가족 간의 관계 유지에 있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건 의외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듯, 부모도 자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당장 초등학교만 들어가더라도 부모님이 모르는 내 부분이 부쩍 늘어난다. 형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어릴 때는 거의 하루종일 붙어 지내던 형제들도 자기만의 세계가 생기면서 서로 모르는 부분이 커진다. 그 간극은 대개 나이를 먹을 수록 커진다. 나만 해도 동생과 지금은 잘 지내는 편이지만, 그건 나와 동생의 관계가 정말로 더 좋아진 걸까? 다만, 이제는 서로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운 건 아니고?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가족이란 꽤나 질척한 관계다. 오히려 나를 더 잘 이해해주는 타인은 가족보다는 생판 모르는 남이나 회사 동료, 친구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관계라니, 거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렇게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면서도, 또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질척하고 끈적한 관계. 

 이 소설 속에는 그런 질척함이 페이지마다 느껴진다. 서로에게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외치면서도 서로에게 어떻게든 이해받고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순이 있다. 인물과 인물이 만날 때는 날카로운 긴장이 느껴진다. 작가는 집요하게 인물들을 따라다니는데, 그 서술법으로 인해 마치 저 집의 CCTV가 되어 가족의 맨 얼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읽은 동안 그 답답함에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흘러가는지! 이 정도 되었으면 한 사흘은 지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페이지를 넘겨봐도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더랬지. 꼭 어색한 친척들과 함께 하는 여행 그 자체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건 꼭 쓰고 넘어가야겠다. 분명 읽기는 쉽지 않다. 몰입해서 마구 페이지를 넘기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장면 장면을 넘겨야 한다. 중간에는 유령 이야기까지 나와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딱히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뭔가 감동적인 일이 빠방, 터져서 가족들이 샘솟는 애정을 느끼며 '그래, 우리도 가족이었지!'라고 느끼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걸. 여기 나온 가족들은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 각자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될 것 같다. 다시 보자는 약속도 -그런 약속이 으레 그러하듯-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허공으로 흩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모르지. 조금은 변할지도. 최소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문득 이 여행지를 떠올리며 잠깐 같이 미소 지을지도 모르는 일이잖는가. 그럼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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