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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법칙 - 함께 승리하는
존 맥스웰 지음, ㈜웨슬리퀘스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참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도 그렇거니와 2도 인쇄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열독률을 높인 디자인도 그런 인상에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내용만 좋으면 포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한동안 대세를 이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포장에 있어서 주(主)가 되는 디자인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이 별도의 가치를 발휘하는 때다. 기업 생산 제품만 그런 게 아니다. 책 또한 디자인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요즘 들어 특히 많은 책들이 2도 이상 인쇄를 사용하고 좋은 지질에 품질 좋은 사진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건 그런 의미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조치가 가독률을 높이는 마당에야.
물론 그런 현상이 책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부동(浮動)의 독자층을 끌어들인다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을까?
책명만 보면 무심코 인간관계론 중에서 특별히 신뢰 부분만 따로 다룬 책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을 저자의 경험과 관련 자료, 각종 인용구들을 마치 한 눈에 봐도 잘 어울리는 신랑신부를 짝지어놓은 듯 그렇게 보기 좋게 배치해 놓았다. 저자의 진술에 딱 들어맞는 수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다 갖출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일 정도다. 수년간 한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한 후 집적해 놓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구성 앞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서 소설가가 수년 동안 관련 자료를 뒤지고, 현지를 답사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인간미 물씬 풍기는 제대로 된 소설이 나오고, 당연한 결과로 그런 소설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 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하게 되는 기반 또한 거기서 나온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한 권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저자가 기울인 부단한 노력에 정비례하게 마련이다. 이 책 또한 그와 같은 각고의 노력의 산물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 이유는 몇 장만 읽어봐도 충분히 알 일이라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 책, 『신뢰의 법칙』은 인간관계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 지침은 사람이 나고 자라듯 단계를 밟는다. 1단계, ‘준비’에서부터, ‘교감’과 ‘신뢰’, ‘투자’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 5단계인 ‘승리’로 마감한다. 그리고 각각의 단계에는 저자가 명명한 원칙들이 소개돼 있다.
특히 렌즈의 원칙, 큰 그림의 원칙, 투덜이의 원칙과 같은 제 원칙들의 명칭은 저자가 기술한 내용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내용을 각인하는 효과가 크다. 그것들이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다소 버겁다는 인상을 주는 글을 전체적으로 잡아주며,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단일 주제로 수렴해가도록 인도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빠짐없이 전달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히다 보면 정작 그것을 소비할 독자가 무엇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와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 정리할 수 있는 용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그런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각종 원칙에서 사용한 용어들이 저자가 적시한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면서 위에서 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는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트 로즈는 최다 통산 안타, 국내 리그 최다 통산 타점, 리그 MVP, 월드 시리즈 MVP 등 타이틀만 해도 11개에 이르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와 명예를 다 쥔 그였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도박에 빠져 있었던 것.
문제는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다른 취미를 겨져볼 것을 권하는 동료를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으로 폄하하고, 자신과 자신의 기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책임은 방기한 채 폭풍 속으로 질주해 갔다. 결국 영구제명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써야했다. 일이 벌어진 다음의 후회는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이 바로 ‘자아 인식’이다. 바람직한 자아상을 정립하지 않고 다른 차원의 것을 실행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피트 로즈의 예를 먼저 선보인 것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면 타인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특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를 통해 배울 뿐 아니라 그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자는, '학습의 원칙'에서 배우겠다는 열정을 가질 것과 상대방을 존중할 것,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사람을 찾을 것, 상대방의 강점을 알아낼 것, 그리고 관찰하고 질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실 배우지 않고 얻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만큼 요긴한 게 없다. 그렇다고 듣는 것에서 그치면 곤란한 일. 배움의 목적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변화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말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명제다.
저자는 또한 갈등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상대방을 우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고 적극적으로 대면하되 문제를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그 문제가 차지하는 순위에 관해 솔직 담백하게 설명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 후에 상대방에게 응답할 기회를 주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든지 상대방의 동기를 유추해 압박한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능동적인 자세가 문제해결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단계는 신뢰를 형성하는 단계다. 메릴랜드 대학생이었던 제이슨 블레어는 1998년 「뉴욕 타임즈」에서 주관한 10주간의 여름방학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듬해 수습기자로 승진한 후 2001년에 정식기자가 됐다. 버지니아 주에서 발생했던 총기 저격 사건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포로가 됐던 미국병사 제시카 린치 가족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은 그에게 그가 자주 지적 받은 기사의 오류와 부정확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던 중 기자생명에 치명적인 표절 시비가 발단이 돼 그가 사건 현장에 가지 않고도 직접 취재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으며, 다른 기자들이 취재한 사진과 기사를 교묘히 조합해 기사 일부를 허위로 날조하고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통째로 도용하기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사직했다. 뉴욕 타임즈는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제이슨 블레어의 예를 길게 소개한 후 저자는 분명한 어조로 신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를 정의한다면 리더십이나 실제적 가치, 파트너십, 기타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신뢰를 얻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신뢰를 '주머니 속 잔돈'에 비유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누구나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믿는 타입이냐 주로 의심하는 타입이냐에 따라 주머니 속에 약간의 잔돈을 두고 시작하거나 주머니 속이 텅 빈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행동을 할 때마다 잔돈은 불어난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행동을 하면 잔돈의 일부를 써야한다. 부정적인 행동이 너무 잦으면 파산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여기서 파산은 인간관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나는 잔돈을 쓰는 사람인가?, 불리는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공들여 쌓은 신뢰라고 더디 무너지는 게 아니다. 단 한번의 결정적인 실수가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밑바탕까지 허물어뜨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뢰는 쌓기도 힘들지만 어렵게 쌓은 신뢰라도 지속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투덜이'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는다. 투덜이란 문제를 가지고 다닐 뿐 아니라, 찾아다니며, 새롭게 문제를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받아주고 더 많은 문제를 자기에게 가져오도록 격려한다. 투덜이는 문제를 항상 소지하고 있으면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킨다. 당신이 주의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같은 문제를 지적 받고 있다면 입 큰 개구리 하나가 당신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투덜이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직장의 많은 문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가 투덜이일 가능성이 높다. 투덜이가 신봉하는 법칙이 있단다. "어떤 일이 순조로울 때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치스홀름의 제1법칙) 쉽게 말하면 남 잘 되는 꼴은 눈뜨고 못 본다는 것이다.
투덜이를 다루는 방법이 있다. 투덜이가 비난하는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비난의 당사자를 신뢰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라. 투덜이가 직접 당사자와 만나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라. 비난하기 전에 다섯 가지 질문을 활용해 보라고 제안하라. T(true):그것이 사실인가?, H(helpful):그것은 도움이 되는가?, I(inspiring):그것은 감동적인가?, N(necessary):그것은 꼭 필요한가?, K(kind):그것은 친절한 행위인가? 투덜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격리하라.
혹시 내가 투덜이가 아닐까?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라. 나는 어떤 형태로든 거의 매일 남들과 갈등을 경험하는가? 나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가 많은가? '나에게는 왜 자꾸 나쁜 일만 생겨나지?' 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가?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데도 친구가 없는 편인가? 내가 말한 것이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때가 많은가?
위 질문 중 몇 개 이상에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당신이 투덜이일 수 있다. 우선 자신이 투덜이임을 인정하고 생활방식을 바꾸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말하기 전에 'THINK' 질문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 한 번 투덜이였다고 해서 영원히 투덜이라는 법은 없다.
4단계와 마지막 5단계는 각각 투자와 승리의 단계다. 상대방과 적극적인 교감을 통해 신뢰를 쌓았다면 어떻게 해야 그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를 투자라는 개념으로 풀어내고 있다. 기업이 보유 자원을 상당한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는 부문에 투입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도타워진 신뢰가 가져올 궁극적인 가치를 얻기 위해 자기 몫의 호의와 배려를 적극적으로 쏟아 부을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하지만 정작 잘 대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힘과 권력으로 자신을 누르려는 사람인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렇게 쌓은 관계를 인간관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상하가 뚜렷이 구분된 종속적인 관계일 뿐이다. 올바른 의미에서의 인간관계란 대등한 관계이자 높낮이 없이 상생하는 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투자는 남보다 많은 것을 얻으려는 이기적인 욕구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투자란 곧 상대방에 대한 나의 관심과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일까? 지속적인 인간관계는 일회적인 제스처나 구미를 당기게 하는 어떤 행동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헌신이 필요하고 상호 지속적인 소통과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고 잘못은 받아주는 관대함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100% 공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 1%라도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내 그곳에 공감하려는 의지 100%를 투입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런 경우 어떠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와 다른 어떤 것 때문에 관계에 실패한다든지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좋은 인간관계로 발전하기까지 인내라는 숙성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성공한 친구에게 다가가 함께 기뻐해 주는 것, 협력의 가치를 알고 함께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궁극적인 승리는 그렇게 나 자신을 상대방을 위한 헌신의 자리에 주저 없이 갖다 놓는 데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말한 바와 같이 깔끔하다는 인상은 그렇듯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저자의 세심한 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인상이 조금도 지워지지 않았을 만큼 이 책의 흡인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결국 기본에서부터 시작하고 그곳으로 귀결된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우면서 저자의 5단계 과정은 결국 신뢰를 정점으로 좌우 두 단계가 공히 구심력에 의해 그 신뢰에 수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전 두 단계(준비와 교감)가 신뢰를 얻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면 후 두 단계(투자와 승리)는 신뢰가 가져온 결과물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의 가치는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를 마치 바늘에 실 꿰듯이 자연스럽게, 때론 바늘 코에 실을 통과시키듯 정교하게 엮어놓은 데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가, 시선이 타인에게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끼는 이유다.
자기성찰의 기회가 쉽지 않은 현대사회에서 그 가치를 일깨우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모쪼록 이 책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자주 읽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