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 와인의 세계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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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특히 우리 사회에 와인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와인의 종류에서부터 특성에 이르기까지 와인에 관한 한 전문 지식에 버금가는 내용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와인 학습이 열풍처럼 번져가고 업장의 와인을 관리하고 고객에게 와인을 추천하는 소믈리에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다. 도수 높은 술이 주도하던 음주 시장에서 도수가 낮고 맛은 보다 좋은 술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보도 또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와인 열풍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하지만 그 열풍이 와인의 맛을 즐기는 것 보다 와인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을 과시하려는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거야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을 무슨 교양의 잣대처럼 내세우거나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 마셔보기도 어려운 샤토 이름을 외우는 데 몰두하는 행태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한국에 와서 보고 놀란 어느 프랑스 와인 업자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들은 입이 아니라 머리로 와인을 마시는 것 같다. 인간이 와인을 마시는 게 아니라 와인이 인간을 마시는 것 같다"〉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쓴 이원복 교수의 지적이다. 와인 관련 서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각종 용어와 생소한 와인 이름을 외우는 데 시간을 보내느니 오히려 그 시간에 값싼 와인일망정 직접 마셔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평생 먹어보기 힘든 와인 이름에 골몰하는 것은 개발의 편자처럼 우스운 노릇이다.

 

와인이라고 일반적인 술과 다를 리 없다. 술이란 마시고 즐기는 것이다. 상품 자체의 효용성과 함께 상품이 지닌 이미지를 함께 소비하는 소비 행태를 모르는 바 아니다. 마치 아이들이 과자 봉지 속에 들어있는 딱지를 사기 위해 과자를 구매하는 것과 흡사할 정도로 가치 전도가 심한 것이 문제다. 오죽했으면 저자가 '우리의 와인 열풍은 와인을 즐기기보다는 스트레스 역풍으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듯하다'고 했을까.



시중에 나와 있는 와인 관련 서적이 하나 같이 전문 용어 위주의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 버겁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저자는 일반인들에게 와인을 고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할 목적으로 책을 썼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각종 기계 장치에서부터 정비에 이르기까지 전문지식을 우선 섭렵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와인을 마실 때도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빼자는 것이다. 만화라는 형식을 빌린 것도 그런 이유다. 아울러 역사물이나 코미디물과 달리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배제된 주제의 한계(지루하고 답답함)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와인 사진과 와인에 얽힌 역사 관련 그림을 곁들인 것 또한 돋보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예단은 금물. 어깨 힘을 조금 뺏을 뿐 근육은 보기보다 단단하고 골격마저 튼실하다. 와인의 품종과 라벨 읽는 법 등 와인을 고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망라되어 있으며, AOC 제도와 양조에 얽힌 뒷이야기 등이 각종 와인의 탄생 배경과 소비자의 기호 또는 선호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와인에 이제 막 눈뜬 독자나 어느 정도 그 맛을 본 독자 모두의 요구를 충분히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단언하건대 와인에 관한 한 가볍게 읽기에 이만한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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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 삼성을 매혹시킨 젊은 인재 7인이 전하는
강효석 외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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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수록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년 경제성장률은 4.8% 였습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전년 보다 0.2% 포인트 낮은 4.6%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제 유가의 지속적 상승과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등의 악재로 우리 경제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아 걱정입니다. 글로벌 신용경색과 은행자금부족 등 외생변수가 기업과 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당분간 부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은 과거 수년간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기업체질을 바꿔온 바 있습니다. 큰 틀의 구조조정은 일단락 된 듯 보이지만 크고 작은 다운사이징 경영을 통해 환경에 대한 신속한 대응, 조직의 슬림화 활성화 등을 모색해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혁신 또한 외형과 실질 양면에서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한 수준에 오른 바 있습니다. 기업과 개인 모두 혁신을 기치로 내세웠을 만큼 혁신이 부여한 이미지와 위상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난 5년간 우리 사회가 그 모토 아래 부단히 경주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혁신의 동기는 철저한 현실인식에 있습니다. 아울러 현실인식은 부단한 관찰과 분석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부단한 관찰과 분석은 '배움'과 연결될 것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배움의 동사 '배우다'는 보다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을 얻는 것에서부터 습관이나 습성이 몸에 붙다는 뜻에 이르기까지 동사 '배우다'의 활용은 매우 넓습니다.

 

'삼성을 매혹시킨 젊은 인재 7인이 전하는 직장인의 성공 에너지'라는 다소 긴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배움』 또한 실제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에서 성공한 7인의 성공담을 요약 정리해 놓아 활용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경험 만한 지식이 없는 것처럼 삼성에서 내노라하는 인재들이 전하는 성공 스토리는 그들이 어떻게 직장인으로서 보기 드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에 관한 체험적 지식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 책 뿐 아니라 이런 류의 실용서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읽는 순간엔 잊었던 친구를 찾은 듯 반갑지만 책을 덮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용 자체가 도덕적, 교훈적이라는 한계 내에 존재합니다. 달리 말하면 휘발성이 높다는 말과 통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단점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네 번째 장의 일곱 번째 편, 〈회사 눈치 보지 말고, 블로그로 회사를 홍보하라〉에 옅게 반영되어 있어 다소나마 숨통을 트여주고 있습니다. 공저자 중 하나인 강효석이 개인 블로그를 회사가 인정하는 블로그로 연착륙시킨 방법은 현재 수백만 명의 직장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블로그를 개인역량과 조직홍보를 연결하는 매체로 활용할 수 있는 묘안을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 자기계발과 관계망 형성, 벤치마킹, 열정 등 직장인이 갖춰야 할 소양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라 반추하는 선에서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삼성의 인재들이 쓴 책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특출난 방법을 기대한 독자라면 비범하지 않은 책의 내용과 구성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든 친구의 예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지혜를 다시 길어 올릴 생각이라면 당신의 선택은 나쁘지 않습니다.

 

직장인은 누구나 그가 속한 회사에서 핵심인재가 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무언가 특출난 사람이 되려면 자심만의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업무와 관계의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핵심인재의 자리에 당신도 오를 수 있습니다. 우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배우십시오.

 

"치열하다는 삼성그룹의 각 부문에서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은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자리에 있든, 남이 보기에는 제아무리 볼품없는 것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배우며 부족함을 메워 가는 자세였다. 이들의 습득능력은 단연 최고였으며 스스로를 온전하게 비움으로써 힘든 순간을 견뎌냈고, 겸손의 단계를 거쳐 비로소 배움에 이를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기대를 받는 인재는 온전한 배움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그 배움의 기술은 그들을 차별화시키는 강점이 되었다."(p41 〈자신을 비우고 남을 인정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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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스트
김순덕 지음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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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에 겐이치가 '국경없는 세계'를 예견한지 30년이 채 되지 않아 세계는 자본, 노동, 상품, 정보, 서비스 등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단일 시장으로 빠르게 통합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 블록 내부의 유통은 가히 과거의 단일 국가 내 지역간 물자 이동의 경우와 비견될 만큼 아주 자유롭습니다. 물론 경제 블록들 간 경쟁이 엄존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리적 거리와 역사적 동질감 등이 적절히 배합된 경제 블록이니 만큼 어느 정도의 장벽은 예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단일 국가의 보호무역주의처럼 폐쇄적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제 블록은 자국 경제만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충족할 수 없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곧 경제 블럭은 그런 불안요소와 교역에 따른 차익의 기대심리를 지닌 다국이 ''헤쳐모여'를 하는 과정의 산물입니다. 자연 블록 내 연대감이 상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블록이 안정화됨에 따라 경제 파이가 확연히 커지게 되면 장기적으로 블록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현재 세계엔 5개의 주요 경제 블록이 있습니다. 유럽연합(EU, 1993년 출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1994년 출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967년 출범),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 1969년 출범), 남미공동시장(MERCOSUR, 1991년 출범) 등입니다.

 

블록 간 또는 일국과 블록 간 교역은 관세를 위시한 진입장벽이 여전히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과거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글로벌리제이션이 이미 대세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블록 내 국가이든 그 밖의 국이든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세계적 트랜드 앞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세계는 이미 일국 경제 또는 블록 경제를 훨씬 뛰어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뒤쳐지지 않을 수 없는 구조가 글로벌리제이션의 현주소입니다.

 

이 책은 그런 글로벌리제이션을 근접 관찰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상을 분석하고 특성을 찾아내는 관찰력과 현상 간 견련성을 조합하고 구분하는 구성력 등이 돋보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굳이 일찍 터트린 샴페인으로 보다 잘 기억되는 세계화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세계화의 역동성과 변화가능성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원어 그대로 글로벌리제이션을 차용한 의미에 우선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년 전 한 광고 카피("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에서 보인 세계화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시각, 곧 세계적 흐름을 우리 입맛에 맞게 바꿔가려는 주관적인 입장을 편협한 것으로 규정하고 세계적 흐름에 승차하는 현실 적응적 관점에서 세계화의 의미를 조망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원어 차용에 담겨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9. 11과 12. 11을 양 축으로 하여 현 세계의 글로벌리제이션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9. 11은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했다고 알려진 테러리스트들의 미 본토 공격을 지칭하고 12. 11은 중국의 WTO 가입을 표창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둘은 저자가 앞으로 진술할 정치상황과 경제상황을 드러내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것은 곧 세계를 보는 저자의 시각을 번영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두 사건을 글로벌리제이션의 해석 원리로 삼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저자에게 현 세계의 정치 환경은 구두선에 그친 불안한 평화의 시대 위에 자란 온실 속 화초와 같다는 시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더욱이 불안한 평화의 내부에 잠복해 있는 특정 국가와 개인에 대한 폭력적 대항 의식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불안 의식이 잠재해 있기도 합니다. 아울러 핵 보유국들이 핵사용은 곧 공멸이라는 공감 하에 조성된 핵에 대한 자기 통제적 환경이 테러리스트들로 인해 무참히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9. 11은 그런 우려의 구체적인 사례인 것입니다. 만약 핵이 그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에게 그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9. 11이 현재의 세계와 이후 세계를 조망하는 프레임이 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중국의 WTO 가입은 질이 보장된 상품이 전 세계 시장에 싼 가격에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입 전까지 중국 상품은 반덤핑 관세가 물리는 불량 거래 또는 지하 유통 상품처럼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값싼 제품을 상시 공급받게 된 미국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수 있었으며, 9. 11로 맞은 경제 위기를 보기 좋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9. 11과 12. 11은 미국에서 보면 위기와 기회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셈입니다.
 
9. 11과 12. 11을 통해 세계의 흐름을 진단하고 있는 저자의 시각은 얼마간 미국의 입장에 편승한 편향적 시각이자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대외 의존적 관점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원든 원치 않든 이 책은 그런 한계를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비판한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의 맹점(가장 심각한 형태의 국제 분쟁을 문명 간 충돌에서 찾은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문명 충돌 외의 다종다양한 갈등 요인들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가 의제한 기독교 서구문명 대 이슬람 및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충돌은 그 문명권에 속하지 않은 민족 또는 종족의 존재를 무시한 대표적인 이분법적인 사고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꽂히고 있는 것을 모르는, 저자의 경력으로 봐서 모른 채 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는 듯한 인상이 곳곳에 내비쳐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왜 그 두 사건이 글로벌리제이션의 양 축으로 규정되고 그것을 해석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 또는 전제를 기정사실화해 놓고 다음 진술을 이어가는 논거가 견고할 수 없습니다. 근거를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부분에서 강박적으로 내 진술이 옳다라는 식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서술 방식은 아무리 선의로 봐 준다고 해도 무리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글로벌한 세계의 경제, 노동, 복지, 교육 정책의 조건 또는 수단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글로벌리스트의 자격 조건과도 통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연성(Flexibility), 적응력(Adaptability), 경쟁력(Competitiveness) 3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 알파벳자를 따서 '팍'(FAC)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는 저자는 유연성을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유럽식 사회 모델을 대가가 큰 달콤한 샴페인으로 간단없이 규정하고 영국과 아일랜드의 앵글로색슨 모델의 입엔 쓰지만 탁월한 실용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후자의 예를 취한 독일과 프랑스의 선택을 보란 듯이 내세우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두 번째 적응력은 세계적 환경이 계획과 준비를 무색케 할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계획과 준비가 어렵다면 변화된 세계에 발맞추는 탁월한 적응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동유럽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독일의 폴크스바겐사에 맞서(?) 임금인상 없이 주 근무시간을 28.8시간에서 33시간으로 늘리는 데 노사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일자리를 잃지 않게 그들의 선택과 우리의 현대차 노조의 '명분 없는 정치 파업'을 병치시킴으로써 설득력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경쟁력입니다. 유연성과 적응력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면 경쟁력은 최대한 잘 먹고 살자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에 관한 한 달리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경쟁력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1장과 2장을 통해 9. 11과 12. 11의 주역인 미국과 중국의 응전과 전진을 찬양한 저자가 3장 전체를 할애해 글로벌한 세계의 생존 조건을 나열한 이유가 4장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4장에서 저자는 한미 FTA를 하늘이 준 기회로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의 '팍'(FAC)이 한미 FTA에 기댄 유효한 전략이자 한미 FTA 체결 이후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할 탁월한 전술이라고 주장하는 듯 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한미 FTA 예찬은 1장과 2장에서 많은 국가가 2007년 중반까지 활황을 경험하던 때에 오히려 저성장에 안주한 정책적 오류를 비판했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아무튼 저자에게 한미 FTA 꽃놀이패와 같습니다. 저자는 한미 FTA를 중국의 WTO 가입에 견줘 그 가치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WTO 가입을 통해 세계 경제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과 같이 우리 또한 한미 FTA가 결과할 경제적 이익을 크게 향수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한미 FTA의 문제점에 대해 철저히 눈감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 저자의 글로벌리제이션이 결국 미국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우산 아래 들어가면 옳고 그 밖으로 나서면 잘못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정책은 어느 것이든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점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단점은 지속적으로 개선하고자 애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장단점이 명확하게 노출되어야 합니다. 단점이 사라진 장점만의 나열은 저자의 주장을 장밋빛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장밋빛에 취한 후의 반응이 과거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던 때의 그것과 같을 수도 있다는 경계심이 저자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IMF 관리체제에 편입되기 전 각종 매체와 전문가들이 쏟아놓았던 장미빛 미래 청사진을 다시 보는 듯해 씁쓸한 기분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면밀한 분석과 비판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경쟁의 원리로 본 세계 경제' 정도로 읽으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취향에 따라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는 진술과 입맛에 맞는 짜깁기식 현상 수집 등의 문제점이 있음에도 이 책이 두루 읽힌다면 그것은 일국의 경제가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의 재확인과 현실 세계의 경제 흐름을 빠르게 일별하는 단순성에 빚지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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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의 영성 - 토미 테니가 제안하는 거룩한 균형잡기, 토미 테니 시리즈 4
토미 테니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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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향한 긍휼'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의 차이와 균형을 마르다와 마리아를 통해 풀어낸 책.

 

예배에 관한 놀라운 통찰과 해석으로 유명한 토미 테니의 신작, 『균형의 영성』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닌 베다니에 머물기를 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막막한 질문을 우선 던짐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저자의 말을 비리면 인성과 신성을 두루 갖춘 예수님은 신성이 요구하는 예배와 인성이 필요로 하는 섬김이 모두 필요했다는 것.

 

'마리아와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로 시작하는 성경 속 베다니의 풍경은 예배와 섬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베다니는 이제 지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베다니 안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있었듯이 우리 안에도 마리아와 마르다가 있다. 그리고 그 양자는 분열하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나누는 동역의 관계여야 한다.

 

하지만 우린 자주 분주한 마르다를 책망하고 말씀을 사모한 마리아를 칭찬한다거나 반대로 바쁜 와중에 도울 생각을 하지 않은 마리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르다의 헌신에 감동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마르다가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편안히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있을 수 있었으며 마르다 또한 마리아로 인해 예수님 자체만을 사모하는 데 이를 수 있었다고 말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정작 이웃의 곤란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이웃을 향한 긍휼'이 조화를 이룬 성숙한 신앙의 표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지길 소망한다.

 

* 책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표상한다. 마르다는 '이웃을 향한 긍휼'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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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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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처제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로테스크한 꿈 때문이라는데 그것이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본 가족들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들고 그런 가족들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분노를 느낀 그녀는 손목에 칼을 댄다. 정신병원을 나온 그녀에게 성욕을 느낀 나는 예술을 가장해 접근한다. 배설욕구를 채운 늦은 오후 아내에게 발각되는데......

 

세 편의 단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 중, 후로 연결되고 그것이 밀도 높은 장편을 이루는 스토리 전개와 각각의 단편이 완결된 형태로 전체 구도 속에 한치의 오차 없이 안착한 이 소설은 상황설정 뿐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불가해한 행동 특성들을 전면에 돌출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몽환적 몰입과 감정이입을 고도의 수준으로 이끌어낸다. 가족 내 갈등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 수준은 골목 어귀에 동그마니 놓여 있는 개울물 보다 얕고 시간 또한 크게 보면 고작 몇 일 동안만 빛이 비치는 은하계 외곽의 항성만큼 낯설다.

 

캐릭터는 어떤가. 그닥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와 연결되지 않는 꿈 때문에 고기에 손도 대지 않는 처제, 사위와 아들을 시켜 딸의 몸을 잡게 하고 막무가내로 딸의 입속에 고기를 쑤셔 넣는 아버지, 꿈을 꾼 이후 이상한 언행을 보이는 아내를 단박에 내치는 동서, 3개월 넘게 섹스 한 번 하지 않아도, 남편이 남다른 행동을 보여도 캐묻지 않는 아내....... 주인공인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 나는? 특히 동서는 예술 한답시고 가계엔 보탬도 되지 않는 나를 이물감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고 한량백수로 치부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약점 잡힌' 사람들은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은 평범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경계인. 어느 한 편에 설 수 없는 인간군, 양쪽으로부터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 하는 불안한 인간군상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주, 그리고 언제나 일탈로 비쳐진다. 일탈은 혼란을 부추기고 혼란을 대하는 사람들의 눈은 불안으로 크게 떨린다. 경계인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을 모두 불안으로 내모는 힘. 그래서일까. 그들 경계인들이 쾡한 얼굴로 침착하게 엮어 가는 소설 속 이야기는 소름 끼치는 법 없는데도 오싹하다. 기괴하다.

 

아니 고요하다. 천마산에 올랐던 어느 가을날 찬 오후, 늦게 시작한 하산으로 걱정이 앞선 나는 지름길을 찾아 계곡에 들어섰다. 오래지 않아 시퍼랗게 다가왔던 낭패감. 길 없는 길을 덤불을 헤치며 한참을 전진하던 난 이성을 밀치는 이상한 심사에 사로잡혔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평온함, 어느 때 한번이라도 겪어보지 않은 평온함이 가득 몰려들었다. 사위는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 그런 고요라고 생각했다. 그 고요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불안을 가장한 고요. 폭발성을 내장한 고요는 스스로 잦아들지 않는다.

 

주인공인 '나'는 그저 평범한 40대 중반의 배부르고 머리숱 많지 않은 전형적인 사회인이다. 비디오 작업을 취미로 하는 그에게 어느 날 아내는 처제에게 아직 몽골반점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몽골반점이 엉덩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이 아니었더라면 몸 한쪽이 곧추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처제를 설득한 그는 처제의 몸에 무수히 많은 꽃잎과  줄기를 그려내고 온몸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는다. 엉덩이의 몽고반점은 더욱 강렬하게, 뚜렷하게, 그것도 아주 오래..... 꽃에 도착적인 반응을 보이는 처제의 약점을 포착한 그는 과거 여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에 같은 문향을 그리고 처제와 비디오 작업을 빙자한 섹스를 벌인다. 도덕과 이성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 그것들은 인간본성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환원한다. 마침내 그 파괴적 양상은 종말적인 결과를 맞이하고, '나'는 잠적하며 동서는 등장하지 않고 처제는 정신병동에 재감금된다. 아내는 여전히 고요하다. 그런 아내가 그들의 현재를 고발한다.

 

차창에 바짝 기대어 차장  밖을 보면 빠르게 스쳐가느라 형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던 사물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또는 눈길을 저 멀리 던지면 또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독자의 시선이 뒤늦게  아내에게 꽂히는 순간이다. 불현듯 '살아남은' 아내야말로 가장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지나치리 만치 평정심을 잃지 않은 아내였다는 자각이 이제야 드는 이유가 뭐였을까. 피해자와 가해자(종말적인 결과를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 그녀의 독백에서 비롯한, 그리고 사건의 발단이 된 가족들의 동생에 대한 막무가내식 처방에 저항 없이 참여한)의 양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내는 피동적인 현대인들을 투사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부여된 역할에 정신과 몸을 무의식적으로 의탁한 채 상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여하한 형태의 주의주장도 펼치지 않는다. 그러니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가정을 남발하는 그들의 언어와 행동은 대부분 수동태다. '막을 수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남편이 피흘리는 영혜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영혜를 제부가 냉정히 버린 것을 말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때늦은 아내의 가정은 적극적인 수습의 의지가 동반되지 않고 막다른 골목으로 흘러든다.  '...... 이건 말이야.  ...... 어쩌면 꿈인지 몰라.' 독백하듯 동생을 바라보는 장면을 끝으로 소설은 서둘러 막을 내린다.

 

1편의 제목은 '채식주의자', 2편은 '몽고반점'이다. 3편은 '나무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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