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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 와인의 세계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들어 특히 우리 사회에 와인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와인의 종류에서부터 특성에 이르기까지 와인에 관한 한 전문 지식에 버금가는 내용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와인 학습이 열풍처럼 번져가고 업장의 와인을 관리하고 고객에게 와인을 추천하는 소믈리에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다. 도수 높은 술이 주도하던 음주 시장에서 도수가 낮고 맛은 보다 좋은 술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보도 또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와인 열풍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하지만 그 열풍이 와인의 맛을 즐기는 것 보다 와인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을 과시하려는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거야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을 무슨 교양의 잣대처럼 내세우거나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 마셔보기도 어려운 샤토 이름을 외우는 데 몰두하는 행태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한국에 와서 보고 놀란 어느 프랑스 와인 업자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들은 입이 아니라 머리로 와인을 마시는 것 같다. 인간이 와인을 마시는 게 아니라 와인이 인간을 마시는 것 같다"〉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쓴 이원복 교수의 지적이다. 와인 관련 서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각종 용어와 생소한 와인 이름을 외우는 데 시간을 보내느니 오히려 그 시간에 값싼 와인일망정 직접 마셔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평생 먹어보기 힘든 와인 이름에 골몰하는 것은 개발의 편자처럼 우스운 노릇이다.
와인이라고 일반적인 술과 다를 리 없다. 술이란 마시고 즐기는 것이다. 상품 자체의 효용성과 함께 상품이 지닌 이미지를 함께 소비하는 소비 행태를 모르는 바 아니다. 마치 아이들이 과자 봉지 속에 들어있는 딱지를 사기 위해 과자를 구매하는 것과 흡사할 정도로 가치 전도가 심한 것이 문제다. 오죽했으면 저자가 '우리의 와인 열풍은 와인을 즐기기보다는 스트레스 역풍으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듯하다'고 했을까.
시중에 나와 있는 와인 관련 서적이 하나 같이 전문 용어 위주의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 버겁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저자는 일반인들에게 와인을 고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할 목적으로 책을 썼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각종 기계 장치에서부터 정비에 이르기까지 전문지식을 우선 섭렵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와인을 마실 때도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빼자는 것이다. 만화라는 형식을 빌린 것도 그런 이유다. 아울러 역사물이나 코미디물과 달리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배제된 주제의 한계(지루하고 답답함)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와인 사진과 와인에 얽힌 역사 관련 그림을 곁들인 것 또한 돋보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예단은 금물. 어깨 힘을 조금 뺏을 뿐 근육은 보기보다 단단하고 골격마저 튼실하다. 와인의 품종과 라벨 읽는 법 등 와인을 고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망라되어 있으며, AOC 제도와 양조에 얽힌 뒷이야기 등이 각종 와인의 탄생 배경과 소비자의 기호 또는 선호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와인에 이제 막 눈뜬 독자나 어느 정도 그 맛을 본 독자 모두의 요구를 충분히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단언하건대 와인에 관한 한 가볍게 읽기에 이만한 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