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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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되는 토요일자 신문에서 처음 이 책의 서평을 읽던 날, '역사 팩션에 돌연 등장한 걸출한 신예', '한국문학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완성도 높은 작품', '스토리텔링의 부흥을 예고하는 거침없는 상상력' 등 상찬에 다소간 놀란 눈을 거두지 못했다. 으례이 따르기 마련인, '다 좋은데, 이건.....' 하는 식의 비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서평이 기자의 사적인 감상의 산물임을 배제할 수 없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앞서 나가 못마땅했다.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에선 '언제고 이 책과 맺어질 것'이라는 단정적인 독백이 요동치고 있었다.

 

어떤 책이기에 상찬 일색의 서평이 수많은 독자의 아침밥 상머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싶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서평을 읽고 난 후 이틀 째 되던 날, 서점 직원에게 이 책의 입고 확인을 부탁했고, 그리고 다시 하루를 보내고 그 직원에게서 책을 건네 받았다. 큰 붓이 휘젓고 지나간 자리 중앙부에 서서히 퍼져간 먹 번짐이 완성도 높은 글씨의 질감을 드러내듯 소설은 백주 대낮에 사람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숨가쁘게 스토리를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한중일이라는 국가적 삼각구도 속에 인물들의 캐릭터를 풍부하게 녹여낸 저자의 솜씨를 통해 화려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겨누었다.

 

짜릿한 속도감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긴장,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기인한 묵직한 기대감. '한중일을 아우르는 서사적 스펙터클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던 서평자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서평자의 상찬은 저자가 이 책을 2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약력의 신빙성을 더욱 부추겼다. 몇 줄 읽지도 않고 전폭적인 지지에 가까울 정도의 탄성을 발한 것은 이 책이 화려하게 두른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보다 그 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성석제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감이 또한 한몫 했음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석제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등의 소설집을 통해 배꼽 잡을 만한 해학과 눈물 쏙 빼는 감동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난 지금도 그를 '기막힌' 소설가로 기억하고 있다. 더욱이 그를 통해 하루 네 권씩 미친 듯이 읽었던 대학 시절 이후 다시 소설을 읽을 생각을 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수상작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작품 구성이 탄탄하고,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무게가 있으며, 마지막 반전도 좋다. 한중일을 누비며 펼쳐지는 방대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정말 대단하다." 서평을 쓴 기자 보다 더한 상찬이 아닐 수 없는 심사평은 이 책 이후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이 소설이 그 시작이나 보기 드문 수작을 넘어서려는 차기작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어느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전국을 경악 속에 빠뜨린다. 사건을 맡은 강력 8반은 카리스마 넘치는 반장을 중심으로 해결에 부심하지만 사건은 점차 확대될 뿐 결정적인 단서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방송국에 배달된 동영상을 통해 살인자로 지목된 서교수는 행방이 묘연하다. 연이어 터지는 살인 사건. 살인현장은 살인의 이유를 전달하려는 메시지로 충만하다. 실체에 접근해 가는 강력 8반 형사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을 향해 검은 손길이 옥죄어 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한편의 먹먹한 수채화 같은 강형사와 방형사의 안타까운 사랑은 조교 채소연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결정적인 단서는 그들이 쥐고 있다. 서교수는 어디에 있는가? 설마 내통자가? 그렇다면 '송곳'은 누구?

 

세계패권을 쥐기 위해 진시황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말로 다시 세상이 들끓는 것을 원치 않은 일본의 충돌이 긴박감을 더해 주는 소설은,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과 앞선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군국주의를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일본의 표리부동을 맥락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소설적 현재성을 높인다. 여기에 일제 청산이라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개입하자  제국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의 과거가 이물없이 소환돼 마주한 현실처럼 수면 위에 떠오른다.

 

장소적 배경을 물적 토대로 보다 구체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역사학자인 서교수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단단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민족혼을 일깨우는 어른으로서의 이미지와 민족혼마저 돈과 바꾸는 파렴치한으로서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종국적으로 전세계적 패권을 쥘 진시황이 한반도를 통해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견지한 그이지만 그 믿음이 실은 친일파의 돈을 갈취하려는 의도를 숨기기 위한 기만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하지만 역사적 청산 보다 돈에 눈이먼 서교수를 용인한  '한배회'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단지, 모든 일이 서교수의 기획 하에 '한배회'와 '송곳'이 동원되고 결국 그들 모두 종말을 고한다는 것뿐.   

 

자칫 민족주의로 흐를 여지를 서교수의 비열한 작태를 드러냄으로써 효과적으로 차단한 저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간 강형사가 근정전에서 벌인 서교수의 제의를 일견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긍정하는 듯한 태도를 용인함으로써 그것이 선과 악의 둘로 가를 만큼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님을 선포한다. 물론 그가 동북공정이라고 하는 소재를 소설 안으로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을 현실감 넘치게 읽게 만든 책임이 있지만 그것을 팩션이 지닌 힘이자 한계정도로 본다면 그리 경책할 일도 아니다.

 

역사란 본디 선과 악의 투쟁 양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름이 명확히 갈린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 점을 모르지 않을 저자는 등장인물들이 저지른 악의 경중에 따라 수위만 다를 뿐 생물학적 생명의 마지막 숨통을 주저없이 끊어 놓는 한편으로 그들의 악행이 역사적 산물임을 넌지시 암시하며 사회적 생명만큼은 끝끝내 지펴 놓는다. 독자들이 그들 또한 뜨겁게 피가 끓는 같은 인간임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들의 입장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의도는 화자인 강형사의 말과 태도를 통해 전달된다.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문 방대한 스케일과 촘촘히 짜인 추리 기법에 예측 불가능한 반전, 당장 시나리오로써도 좋을 영화적 스토리 구도 등 소설은 소설 내부를 관통하는 '절대적 진실에 대한 회의, 스스로를 절대적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와 횡포,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또 하나의 역사적 진실 발견 및 인정,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가치판단 보류, 그리고 극단적 민족주의 비판 등'의 주제들과 조응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고 시원한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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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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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 먼지 날리는 문체, 예리한 칼로 벼린 구성, 목젖을 겨눈 스토리. 그의 소설적 특성은 그런 것들이다. 바싹 마른 목구멍을 달래려 몇 번은 기침을 해야 할 정도로 메마른 문체는 그래도 어느 순간 곰삭은 맛이 물씬 풍겨날 테고, 그러면 주체할 수 없는 그 향취로 그만 책을 덮어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 내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비웃듯 같은 길을 같은 간격으로 내닫는다.

 

그의 표현대로 건조함은 건조함을 불러올 뿐 다른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그 건조함은 메마른 여름날 퀴퀴한 장마라도 오면 좋겠다는 여느 여염집 아낙의 소원마저 간단없이 저버린다. 장마가 닥치고 얼마안가 요놈의 지긋지긋한 장마 빨리 가버려라고 툇마루에 침을 냅다 뱉을 심사인 아낙의 속을 빤히 보고 있잖은가. 그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지면 위에 빗줄기 한 방울 쏟아 놓지 않았다.

 

스르릉, 칼집을 빠져 나온 칼날이 어느 곳을 겨냥해야 할지 익히 아는 그는 정확한 손놀림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향하는 지점을 향해 내지른다. 일격. 그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런데 누가 봐도 들판 위에 활짝 드러난 광경임에도 보이는 것 외엔 보이지 않는다. 이미 바싹 마른 날, 지극히 건조한 공기와 그것에 비례해서 확 트인 시야를 앞에 놓고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이것은 봄날 지긋지긋하게 보아왔던 그 아지랑이(heat shimmer)다. 사물의 형상을 어제와 달리 만들어 내는 도발을 독자는 그의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뻔한 소재와 뻔한 구조임에도 전혀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지랑이 속에 숨어 넘실거리는 소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간단하지 않다.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한참을 보아도 알 수 없는 심연. 하지만 그 곳엔 물기 하나 없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그의 말과 함께 듣고 보아야 한다. 『칼의 노래』가 출간된 후 6년만에 그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또 다른 소설, 『남한산성』 때문이었다.

 

『남한산성』은 '거리두기 '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화자는 주전파와 주사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그는 성내 인간군상들을 응시하고 그들의 행태를 묘파하는 도상에서도 감정이입을 배제했다. 종국적으로 닥쳐올 왕의 선택에 대해서도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 화자는 '경계 밖'에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에 충실했다. 광경은 이야기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에 섞일 수 없는 화자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남한산성』은 그런 의미에서 앞선 『칼의 노래』와 동일 궤적을 그리고 있다.

 

『칼의 노래』는 저자의 첫 번째 소설이자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며, 이후 작에 표표히 흐르는 김훈표 역사소설이다. 화자는 이순신 자신. 기골이 장대한 이순신을 기대했다면, 그는 없다. 카리스마와 위엄, 호령으로 대표되는 이순신은 대의가 권력 뒤로 숨어 눈치를 보는 현실에 진저리를 치며 주어진 세계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전통적인 이순신은 현대적 이순신으로 대체된다. 주변 세계의 잘못을 목도하고도 저항하지 않는(또는 저항할 수 없는) 인간, 비판하되 수용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고 강변하는 회색인, 변하나 변하지 않을 세상과 유리되느니 몰입은 아니어도 발을 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계인을 이순신은 대표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에게 영웅은 무의미하다. 강점이입을 배제하기로 작정한 저자에게 이순신이 영웅이든 졸부든 무슨 상관이 있었으랴. 한 인간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담담히 기술하려는 저자는 궁극적으로 자신 또한 현실에 섞일 수 없는 경계인임을 표상한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인물들은 하나 같이 시대를 건너와 그와 교유한다. 이미 그들은 제각기 '김훈'이므로 그가 어느 누구를 특정해 그를 두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리두기는 그래서 저자의 자발적 선택이면서 아울러 강요된 선택이 된다.

 

자신을 내어 주면서 자신을 얻는 인간상은 그의 작품에서 연속적으로 보이는 특성 중 하나다. 육체는 소멸하되 정신은 고양되는 절정감을 획득하려는 집요한 과정은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정신을 버리고 기꺼이 물질을 향해 내달리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썩은 부산물이 쌓이고 그것을 치우는 데 수많은 자원과 노동이 소비된다. 제대로 투입되어야 할 자원과 노동의 빈곤은 위험을 노출하고 그것이 사회 기간망을 완전히 잠식해 들어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천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서도 그 문제의 근본원인에 침묵하는 우리의 현실은 참혹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임시 미봉책으로는 근원적인 치유에 이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중 인물 이순신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일축한 조정은 전란 중에 이순신을 백의종군케 함으로써  이미 백성의 안위와 안전을 지킬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자신의 안위마저 보증할 수 없게 되자 이순신을 복직시키지만 이순신은 더이상 과거의 이순신일 수 없었다. 결국 권력에 의해 법살될 것을 예견한 이순신은 '죽을 자리'를 향해 나아간다. 명랑해전이 그 자리가 아님을 안 그는 우리가 잘 아는 그 해전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제 어떻게 적군이 몰려올지 모르는 불안정한 전쟁터에서 극히 태연스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이 이미 자신이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알았기 때문은 아닌지 하고. 난중에 고요히 침잠하듯 일기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엔 그렇듯 그를 둘러싼 상황과 그런 상황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가 있었음을 추측하기란 사실 어렵지 않다.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시선과 절제된 상황 인식이 몰고 올 후폭풍을 당시 조선은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300년 후 조선은 주권을 빼앗긴다. 개인이 자유의지를 발휘할 전제조건을 말살한 국가와 사회의 멸망을 이순신이 자신의 죽음에 투사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음을 보여주었다면 억지일까.

 

그리고 다시 이순신이 저자와 동일시되고 있다는 인상은 저자가 각종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인간상을 꿈꾸는 데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그를 향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의 문제를 지나치게 외면하는 것은 아니냐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도 한다. 때론 그를 단박에 보수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무슨,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기 위해선 그가 지향하는 세계가 주의 주장에 맞닿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가 그린 주인공의 고뇌는 대부분 격정적이지 않고, 인물들은 평면적이다. 화자는 기술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무수히 오가는 말은 주장없이 산발적으로 파열한다. 원심력이 지배하는 공간은 이명이 일정도로 정리되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바 세상은 자기 선택에 충실하게 살아갈 뿐이라는 다분히 피동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건조한 세상,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희망하는 세상이다. 주의 주장이 난무하고 거대담론이 풍미하던 세상을 헤쳐 나온 사람이 거처할 세상을 그가 그렇게 보았으리라. 하지만 그 세상 또한 임시 거처임을 모르지 않을 작가의 다음 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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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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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의 글은 따뜻하다. 몇 달 전 그이가 티브이 나와 둥그런 얼굴에 유음 많은 목소리로 시 한 편 읊는 걸 보고 참 다감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 있다.

 

그럼에도 난 그이의 책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목적의식적으로 살다보니 심적 여유가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그의 글을 여기(餘技)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역시 오늘도 그 잔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신경림의 시집을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하고서야 그이의 시집을 택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슴이 참 따뜻하다.

 

키 작은 골목 안 쪽으로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가 달려들고, 비지찌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코끝에선 여태 가시지 않은 고 냄새가 한사코 마중 나온다.

 

시란 그런 것인가. 알싸한 추억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싯구 안으로 걸어 들어가도 좋은 참 따스한 봄날 늦지 않은 저녁. 그이의 시 하나 소개하고 총총히 잠에 든다.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것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안도현


아버지가 끊어온 돼지고기 두어 근에 두둑하게 배 채운 난, 입맛을 다셨다. 언제 다시 이 날이 올는지 손꼽느라 스르륵 잠이 드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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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드라마쿠스
윤진 / 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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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습관의 총체를 되돌아볼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은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은 그것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만큼 그것을 일의적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문화의 변화무쌍한 양태야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 그 분야를 다룬 분석적인 책을 통해 대중문화의 의의라든가 대중문화의 영향, 또는 대중문화 속에 담긴 권력에 대해 새삼 눈을 뜨게 되는 것마저 어느 누구도 발견한 적 없는 보물을 캐낸 듯 설레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대중문화를 가리키는 다양한 아이콘과 대중문화가 표창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관찰할 기회라도 얻게 되면 육체를 타고 흐르는 전율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랄 정도로 중독증이 심화된다.

 

이쯤 되면 지식 습득 욕구가 남다르다고 할만한데, 대부분 전에 읽은 여러 책 중 특히 몇 권의 책이 대중문화에 관한 깊은 허기와 갈증을 채워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그 책들은 공히 현상을 꿰뚫고 그 속에 숨은 본질을 소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듯 대중문화를 다룬 서적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게 해준 책은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이택광, 이후, 2002),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기호학연대, 문학과경계, 2003), 『대중의 문화사』(마샬 W. 피쉬윅, 청아출판사, 2005)이었다.

 

그리고 다시 어제 자주 가는 서점에서 발견한 『호모 드라마쿠스』는 현대적 감각을 앞세운 분석과 해석을 무기로 의식 전반을 흔들어 놓았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현실에 비판적으로 대입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므로 찬찬히 읽을 것. 한 달 평균 읽는 수 십 권의 책 중에서 더디게 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은 사실 많지 않다. 그렇다고 다른 책들이 함량 미달이어서 빨리 읽은 것이 아니다. 의식에 충격을 가한 책에 대한 남다른 애착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애착은 대부분 기억에 깊이 파고들기 마련이라 언제든 기회만 되면 튀어나올 준비를 한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광고와 드라마를 통해 본 대중문화의 파급력은 욕망을 소비하는 구매자의 욕구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고양된다. 포섭되는 구매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 효과가 가중되고 함량 미달의 대중문화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질 토양이 마련된다. 성찰과 비판이 사라진 지점에서 개인은 더 이상 주체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문화의 본질과 이면을 파헤치는 책들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수용'과 '비판'이 좌우에 날개를 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판적 수용'과 '수용을 모색하는 비판'이라는 꼬리날개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책의 미덕은 대중문화를 지나치게 백안시하지도, 그렇다고 은연 중에 상찬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패가 있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의 반열에 이 책을 올려놓아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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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알파(α)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 브랜딩 - 기대를 넘어서는 특별한 경험과 브랜드 약속, 그리고 진정성
스캇 데밍 지음, 황부영 옮김 / 비앤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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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객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당신과 당신 회사, 당신의 가치관, 즉 당신의 브랜드를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성공의 핵심 요소이다."

 

이제 브랜드는 기업에 한정된 개념으로 쓰이지 않는다. 자기 관리라는 고전적인 행동 양식을 넘어 자기 가치를 드높이는 다양한 방법들을 체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브랜드 구축은 개인과 기업이 두루 관심을 집중하여야 하는 과제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브랜드의 의의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정립과 브랜드 가치, 브랜드 이미지 등 브랜드 위에 덧붙여진 다양한 의미들이 구체적으로 운위되지 못했다.

 

그런 탓에 브랜드가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그 드러난 위상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진 감이 없잖았다. 해마다 발표되는 브랜드 파워 상위 기업군에 관심이 집중 되기는 해도 브랜드가 지닌 고유의 상품성과 의미 확장성에 주목하지는 못했던 것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가 내장한 자기 상품성은 익히 알려져 있어 재론할 필요가 없겠다. 하지만 브랜드의 의미 확장성은 다르다. 브랜드가 전통적으로 기업에 한정된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는 브랜드가 지닌 고유의 의미를 기업을 중심으로 논구하면 그만 이었지만 최근 사용되는 브랜드는 기업을 넘어 개인의 상품성을 담보하는 독특한 이미지 또는 특질적인 가치로 그 폭과 영역을 확대하고 있어 주목된다.

 

기업은 구성원들의 동력으로 성장하고 구성원은 그가 속한 기업에 인력을 제공한다. 일반 사회(인)는 조달 가능한 노동자군을 형성한다. 기업이 스스로 생장하는 생명체가 아닌 한 구성원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기업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피와 땀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기업이 구성원을 대신해서 그 가치를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본래적으로 브랜드 가치는 상품 그 자체 또는 기업 자체를 뛰어넘는 무엇이라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책, 『긍정적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 브랜딩』이 기업과 상품의 브랜드를 논구하면서 그 의미를 구성원과 일반 사회인을 향해 확장하는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약력에 따르면 저자 스캇 데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연가이자 기업 트레이너, 컨설턴트로 영업과 고객 서비스 분야에 관한 강연을 100회 이상 수행한 바 있다. 광고 마케팅 회사의 자산가치를 수백만 달러로 키운 저자는 이론과 실무 경험을 두루 갖춘 전력을 무기로 이 책를 이론과 실무가 적절히 조화된 책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 책의 장점은 앞서 언급한 추세에 맞춰 브랜드의 의미를 기업과 사회 일반으로 확대한 데 있다.

 

"엘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은 한동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콜롬비아 대학원에 언론학 교수로 출강했고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2006년 '불편한 진실이란 환경 다큐멘터리의 개봉과 전미 순회 강연을 통해 앨 고어는 진일보한 새로운 브랜드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 클린턴이라는 브랜드는 너무나 특별하고 강력해서 (혼외 관계와 관련한 추문과 화이트 워터로 알려진 부동산 투자 문제)와 같은 불미스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서는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클린턴이라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클린턴이 사람을 대할 때 상대에게 완전히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대중을 앞에 두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음주 운전 혐의와 약물 복용에 대한 소문 등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 대신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백안관에 품위를 돌려놓길' 원하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재선에 나선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한때는 민족 국가 형성에 줄곧 반대를 하던 그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시 대통령이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 20여년 동안 놀랄 만큼 성공적인 브랜드를 개척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토크쇼 진행자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오프라는 영화 제작자이자 배우이며 잡지 발행인이고, 자선 사업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녀의 브랜드는 그녀가 하는 일 모두를 넘어선다. 이는 오프라라는 브랜드가 진실하고 솔직하며, 신뢰를 줄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성실하며 똑똑하고 성공한 여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저자가 엘 고어와 클린턴, 조지 부시, 오프라 윈프리를 위시해 톰 크루즈와 멜 깁슨를 예로 든 이유는 저자가 평소 브랜드에 대해 갖고 있던 신념과 일치한다. 저자는 "물건이나 조직, 세계적인 유명 인사만이 브랜드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기 하나의 브랜드"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 그의 신념이 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브랜드에 관한 한 저자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광고와 마케팅을 브랜딩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현실에 일침을 가한다. 광고와 마케팅은 제품을 구입하도록 추동하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특별하고 감동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력한 인식이나 신념이 될 정도로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브랜딩이 특별하고 감동적인 경험을 창조하려면 진정성이 바탕에 흘러야 한다. 보기 좋다고 맛도 좋은 것은 아니기 떄문이다.

 

충성도 높은 소비자는 진정성 높은 브랜딩에 관심을 표명하고, 그 브랜드를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바로 알파 컨슈머가 태동하는 순간이다. 책 제목의 일부분으로 쓰이고 있는 알파 컨슈머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저자의 유니크 브랜딩은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기업 활동이자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장은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기대를 넘어서는 특별한 경험을 주지 못한 기업의 예를 통해 브랜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의 엄밀성을 되짚는다. 그럼으로써 저자가 제1장에서 주장한 역동적인 브랜드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투사된. '시어즈'의 서비스 담당 직원이 보여준 불성실한 전화 응대와 '로열 캐리비언'의 유람선에 탑승한 승무원의 나무랄 데 없는 태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장은 감동을 주는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의 결말이  어떤 희비 쌍곡선을 연출하는지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장을 통해 브랜드는 구축과 유지가 쌍두마차를 끄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관계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은 제품에서 오지 않는다.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직원과의 소통이 감동과 불쾌감을 판가름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기업에 관한 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브랜드가 제대로 구축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직원 자신들이 브랜드를 창조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로열 캐리비언의 예를 들면서 저자가 "..... 배 위의 모든 곳에서 사물이 아니라 승무원이 만들어내는 감정적인 반응이 중요한 것입니다. 배의 아름다움 같은 것만이 경험을 만들진 않습니다. 경험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지요.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을 이 배와 그리고 이 배의 브랜드와 묶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브랜드가 하나가 되는 거지요"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형성된 브랜드는 강력한 힘을 구축한다. 그리고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감동을 줌으로써 그 힘은 보다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수시로 기업의 진출이 잦은 시장은 극히 유동적이다. 따라서 언제든 방심하는 사이 지배적 위치를 위협받을 수 있다. 브랜드 파워에 자만하여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기대를 넘어서는 특별한 경험'을 주지 못하는 순간부터 브랜드는 균열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급격히 그 지위가 허물어진다.

 

웬디스의 손님 중 하나가 금전적 보상을 받고자 거짓으로 웬디스에서 주문한 칠리 안에서 절단된 사람 손가락이 나왔다고 웬디스를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지역 웬디스 체인점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웬디스 직원들은 정리 해고와 근무시간 단축을 겪었다. 문제는 웬디스의 초기 대응에 있었다. 웬디스는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주방과 제조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침묵을 지켰던 것.

 

반면 독극물 사건에 연루된 존슨앤존슨은 달랐다. 타이레놀을 복용한 7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위기 상황에서 존슨앤존손은 즉각 모든 타이레놀 제품을 회수했다. 아울러 타이레놀을 구입하거나 복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생산과정에 문제가 없음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회사 이익 보다 사람들의 안전을 중시한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화된 것은 물론이다.

 

두 기업의 대응 태도는 극명하게 갈렸으며 브랜드의 운명 또한 그렇게 갈라놓았다. 브랜드는 구축도 힘이 들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데도 동일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브랜드가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유지 전략에 제4장부터 7장까지 4개의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제8장은 브랜드 이미지를 보다 견고히 하는 진정성에 대해 다룬다. 아무리 탁월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진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고객은 감동하지 않는다. 저자는 브랜드의 진정성이 곧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름한다고 보고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려 진심으로 노력할 때 고객과 진실한 소통이 이뤄지고 이를 기반으로 신뢰가 쌓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성 높은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보될 수 있다.

 


저자는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한 브랜딩으로 브랜드의 구축과 유지, 그리고 진정성을 들었다. 그 삼자가 정립하여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상호 작용을 거듭할 때 브랜드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아울러 브랜드를 제품과 기업에 한정된 의미를 확장해 일반 사회 단체와 개인에 이르기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한 것 또한 독특하다. 앞으로 더욱 기업과 개인은 치열한 브랜드 전쟁에 나설 전망이다. 격화된 경쟁 사회에서 브랜딩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무리없이 진행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이 책이 적잖이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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