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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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되는 토요일자 신문에서 처음 이 책의 서평을 읽던 날, '역사 팩션에 돌연 등장한 걸출한 신예', '한국문학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완성도 높은 작품', '스토리텔링의 부흥을 예고하는 거침없는 상상력' 등 상찬에 다소간 놀란 눈을 거두지 못했다. 으례이 따르기 마련인, '다 좋은데, 이건.....' 하는 식의 비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서평이 기자의 사적인 감상의 산물임을 배제할 수 없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앞서 나가 못마땅했다.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에선 '언제고 이 책과 맺어질 것'이라는 단정적인 독백이 요동치고 있었다.

 

어떤 책이기에 상찬 일색의 서평이 수많은 독자의 아침밥 상머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싶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서평을 읽고 난 후 이틀 째 되던 날, 서점 직원에게 이 책의 입고 확인을 부탁했고, 그리고 다시 하루를 보내고 그 직원에게서 책을 건네 받았다. 큰 붓이 휘젓고 지나간 자리 중앙부에 서서히 퍼져간 먹 번짐이 완성도 높은 글씨의 질감을 드러내듯 소설은 백주 대낮에 사람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숨가쁘게 스토리를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한중일이라는 국가적 삼각구도 속에 인물들의 캐릭터를 풍부하게 녹여낸 저자의 솜씨를 통해 화려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겨누었다.

 

짜릿한 속도감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긴장,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기인한 묵직한 기대감. '한중일을 아우르는 서사적 스펙터클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던 서평자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서평자의 상찬은 저자가 이 책을 2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약력의 신빙성을 더욱 부추겼다. 몇 줄 읽지도 않고 전폭적인 지지에 가까울 정도의 탄성을 발한 것은 이 책이 화려하게 두른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보다 그 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성석제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감이 또한 한몫 했음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석제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등의 소설집을 통해 배꼽 잡을 만한 해학과 눈물 쏙 빼는 감동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난 지금도 그를 '기막힌' 소설가로 기억하고 있다. 더욱이 그를 통해 하루 네 권씩 미친 듯이 읽었던 대학 시절 이후 다시 소설을 읽을 생각을 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수상작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작품 구성이 탄탄하고,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무게가 있으며, 마지막 반전도 좋다. 한중일을 누비며 펼쳐지는 방대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정말 대단하다." 서평을 쓴 기자 보다 더한 상찬이 아닐 수 없는 심사평은 이 책 이후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이 소설이 그 시작이나 보기 드문 수작을 넘어서려는 차기작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어느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전국을 경악 속에 빠뜨린다. 사건을 맡은 강력 8반은 카리스마 넘치는 반장을 중심으로 해결에 부심하지만 사건은 점차 확대될 뿐 결정적인 단서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방송국에 배달된 동영상을 통해 살인자로 지목된 서교수는 행방이 묘연하다. 연이어 터지는 살인 사건. 살인현장은 살인의 이유를 전달하려는 메시지로 충만하다. 실체에 접근해 가는 강력 8반 형사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을 향해 검은 손길이 옥죄어 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한편의 먹먹한 수채화 같은 강형사와 방형사의 안타까운 사랑은 조교 채소연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결정적인 단서는 그들이 쥐고 있다. 서교수는 어디에 있는가? 설마 내통자가? 그렇다면 '송곳'은 누구?

 

세계패권을 쥐기 위해 진시황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말로 다시 세상이 들끓는 것을 원치 않은 일본의 충돌이 긴박감을 더해 주는 소설은,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과 앞선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군국주의를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일본의 표리부동을 맥락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소설적 현재성을 높인다. 여기에 일제 청산이라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개입하자  제국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의 과거가 이물없이 소환돼 마주한 현실처럼 수면 위에 떠오른다.

 

장소적 배경을 물적 토대로 보다 구체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역사학자인 서교수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단단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민족혼을 일깨우는 어른으로서의 이미지와 민족혼마저 돈과 바꾸는 파렴치한으로서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종국적으로 전세계적 패권을 쥘 진시황이 한반도를 통해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견지한 그이지만 그 믿음이 실은 친일파의 돈을 갈취하려는 의도를 숨기기 위한 기만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하지만 역사적 청산 보다 돈에 눈이먼 서교수를 용인한  '한배회'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단지, 모든 일이 서교수의 기획 하에 '한배회'와 '송곳'이 동원되고 결국 그들 모두 종말을 고한다는 것뿐.   

 

자칫 민족주의로 흐를 여지를 서교수의 비열한 작태를 드러냄으로써 효과적으로 차단한 저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간 강형사가 근정전에서 벌인 서교수의 제의를 일견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긍정하는 듯한 태도를 용인함으로써 그것이 선과 악의 둘로 가를 만큼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님을 선포한다. 물론 그가 동북공정이라고 하는 소재를 소설 안으로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을 현실감 넘치게 읽게 만든 책임이 있지만 그것을 팩션이 지닌 힘이자 한계정도로 본다면 그리 경책할 일도 아니다.

 

역사란 본디 선과 악의 투쟁 양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름이 명확히 갈린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 점을 모르지 않을 저자는 등장인물들이 저지른 악의 경중에 따라 수위만 다를 뿐 생물학적 생명의 마지막 숨통을 주저없이 끊어 놓는 한편으로 그들의 악행이 역사적 산물임을 넌지시 암시하며 사회적 생명만큼은 끝끝내 지펴 놓는다. 독자들이 그들 또한 뜨겁게 피가 끓는 같은 인간임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들의 입장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의도는 화자인 강형사의 말과 태도를 통해 전달된다.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문 방대한 스케일과 촘촘히 짜인 추리 기법에 예측 불가능한 반전, 당장 시나리오로써도 좋을 영화적 스토리 구도 등 소설은 소설 내부를 관통하는 '절대적 진실에 대한 회의, 스스로를 절대적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와 횡포,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또 하나의 역사적 진실 발견 및 인정,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가치판단 보류, 그리고 극단적 민족주의 비판 등'의 주제들과 조응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고 시원한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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