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명쾌함으로 승부하라
잭 트라우트 지음, 김명철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경영학을 전공하던 학창시절에 투자론과 마케팅론을 두고 저울질 하던 기억이 새롭다. 투자론은 분석적 사고를 즐겼던 터라 내심 계속 학교에 남는다면 전공으로 삼고 싶은 학문이었고, 마케팅론은 갓 부임한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에 매료된 탓에 그 둘을 놓고 때 아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학교를 나와 선교단체와 이후 직장을 얻으면서 당시 고민이 쓸모없는 일로 바뀌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행복한 저울질이었다. 이 책, 〈마케팅, 명쾌함으로 승부하라 〉가 그 때의 기억을 끌어내고 보니 새삼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당시 마케팅을 원서로 공부한 난 그 분야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한 필립 코틀러의 이름을 주워섬기고 있었다. 교수의 설명이 세밀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낸 마케팅론은 코틀러의 저작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충분히 상쇄되고 남았다. 이 책에서 저자 또한 코틀러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그의 위상에 경의를 표한다.




교수는 마케팅은 광고가 아니라는 말을 시작으로 마케팅의 본질과 과정, 그리고 기업과 사회적 영향력을 세밀하게 추적해갔다. 각종 매체에 널린 마케팅 기법과 매장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형태의 광고 전략을 통해 마케팅에 알게 모르게 젖어온 학생, 큰 범주에서 도시민의 생활에 마케팅은 손에 잡히는 학문처럼 보였다. 강의 내용과 현실을 적절히 연결할 수 있는 강력한 이미지는 마케팅론에 빠져들게 만든 주요인이었다. 많은 수의 학생이 이 수업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아마도 그중 상당수가 마케팅을 전공으로 삼아 학교에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학생들이 마케팅에서 받은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인상과 달리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그 제품을 시장에 각인시키기 위해 마케팅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은 전쟁으로 기록된다. 아무리 기능과 디자인이 훌륭한 제품이라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면 그 제품은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시장 적합성, 그것은 소비자의 니즈(needs)와 원츠(wants)에 얼마만큼 소구하느냐에 달렸다. 그렇다고 앞서 말한 대로 기능과 디자인이 좋으면 다 되는 것일까?




미국 마케팅 협회(AMA)는 마케팅을 "개인과 조직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교환을 창조하기 위하여 아이디어, 재화 그리고 서비스의 개발, 가격결정, 판매촉진, 유통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과정(the process of planning and executing the conception, pricing, promotion and distribution of ideas, goods and services to create exchanges that satisfy individual and organizational objectives)"이라고 정의했다. 코틀러는 그것을 '교환과정을 통하여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인간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의 정의를 종합하면 마케팅은 광범위한 기업 활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제품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마케팅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사실 소비자는 제품 자체를 구입하는 외에 제품이 지닌 사회적인 지위를 아울러 구매하는 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으로 제품이 지닌 함의를 만들어가는 데 몰두하게 된다.




제품의 이미지를 계획하고 확장해가는 과정은 다분히 실험적이다. 물론 이미 사회적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제품에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 대부분임에 틀림없다. 결국 후자의 경우 소비자의 뇌리에 기업의 제품을 얼마만큼 강하게 자리 잡게 하느냐의 문제는 제품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은 명확한 이미지의 창출과 전달로 특징될 수 있을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는 휘발성이 높아 소비자의 뇌리에 오래 남지 못한다.




하루에 수십만 가지의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제품명을 전달하는 일마저 용이하지 않은 마당에 제품을 시장에서 생존케 하는 과정이 쉬울 리 없다. 대충하면 대충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각 기업들이 마케팅을 명쾌함이라는 효과적인 전략에 근거하지 않고 ‘알아주겠지’, ‘이 정도 광고면 충분하겠지’, ‘제품이 좋으면 됐지’하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마케터들은 온갖 마케팅 이론에 둘러 쌓여있다. 식스 시그마, 롱테일, 리마커블, 블루 오션 전략, 포스트모던 마케팅, 감각 마케팅, 입소문 마케팅, 블로그 마케팅, 심리 마케팅, 신경과학 마케팅 등 그 이름도 다양한 마케팅 이론들은 그 수만큼이나 마케터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여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창의성이 발휘되어야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마케터들은 '뭔가 새로운 것', '과거와 다른 어떤 것'에 경도 되기 쉽다. 창의성에 대한 강박이 심화되면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기 쉽다. 마케팅의 원칙으로 신봉되어온 차별화와 단순화는 그런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회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으며 소비자들이 단기적으로 새로운 것에 매료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소비자가 특정 제품이 지닌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제품을 소구하는 데 적절한 장치는 단연 '명쾌함'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나가 저자는 마케팅의 성패가 다른 어떤 것보다 '명쾌한가, 명쾌하지 않은가'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단언한다. 아무리 훌륭한 마케팅 기법이라고 해도 소비자에게 명쾌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그의 생각은 마케팅 기법의 실험과 쟁투의 장 양상을 보이는 우리 현실에서 크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 새 바람을 몰고 온 입소문 마케팅과 불로그 마케팅이 요즘 들어 주춤하고 있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그와 같은 마케팅이 소비자의 구매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각각의 마케팅 기법들은 일정 부분 시장에서 통하는 기법으로 애호되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기법의 개발과 유지가 그 기법이 지닌 탁월함에 있기보다 그 기법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명쾌함에 빚지고 있음을 알게된다.

 

달리 보면 수없이 많은 수의 마케팅 기법들은 그 수만큼의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결과의 반증일 수 있다. 마케팅 기법이 지닌 효과성의 한계와 성공 스토리의 실제 요소를 염두에 두지 않고 기법 자체에 빠져들수록 결과는 참담하게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입소문 마케팅의 허상을 지적한 저자의 혜안이 돋보이는 이유다.

 

명쾌함을 해치는 요인들을 솎아낸 후 그것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꼼꼼히 찾아낸 저자는 명쾌함을 끌어내는 6가지 법칙을 통해 현실 마케팅에 직접 활용이 가능한 아이디어 구축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마케터 뿐만 아니라 마케팅 분야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에게 두루 참고가 될만하다. 모쪼록 이 책이 기법을 찾는 데 골몰하는 이상 현상에 경종을 울리고 효과적인 마케팅의 본질적 측면에 귀기울이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교과서로 손색이 거의 없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거창한 이름이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누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어나갔다. 특히 임산부는 누(Fistula)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쓸쓸히 죽어가야 했다. 1959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저자는 캐서린 햄린은 3년의 봉사일정을 계획하고 에티오피아로 온다. 정력적으로 의료활동을 펼친 햄린은 봉사기간을 마친 후에도 그곳을 떠나올 수 없었다. 그의 양 눈에 누환자의 참상이 가득 들어왔다.

 

누란 '임산부가 사산을 하면서 입게 되는 대장과 요도 사이의 상처를 말하는데, 상처는 순식간에 구멍으로 뚫리면서 대소변을 제어할 수 없이 흘러내리게 만들고 결국 산모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여성은 임시 헛간에 버려진 채 죽어가야 했다.

 

책에 소개된 14세 소녀 에나타네시도 같은 경우. 그녀는 진통 후 6일째 되는 날 사산했다. 누에 걸린 그녀는 구멍을 통해 흘러내리는 대소변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를 본 남편은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헛간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녀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동냥질을 하며 차비를 모은 그녀는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수술을 받았다.

 

자료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임신과 출산 과정 중에 죽는 여성이 매년 53만 명이다. 조혼풍습으로 10대 초중반 임신이 잦고 대부분 난산에 의료장비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는 이미 선진국에선 자취를 감춘 질병이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햄린에게 이 사실은 고통과 같았을 것이다.

 

결국 햄린은 3년 봉사 계획을 접고 영구히 그곳에 눌러 앉는다. 그리고 그녀가 에티오피아를 껴안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누로 고통받는 3만 2천명의 여성이 질병에서 벗어났다. 수치로 보면 많지 않은 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를 앓는 여성들이 평생을 가족과 떨어져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수치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그녀가 끊어냈다는 점에서 그녀의 활동은 기아와 질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에 생명의 소중함과 인권의 중요성을 일깨운 '작지만 힘있는 행보'로 기록될 것이다. 


기부를 호소한 그녀에게 록펠러재단은 "우리는 우간다 북쪽으로는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연을 하면 관중들은 열광을 하고 기부를 약속했지만 밤새 모두 그 사실을 잊었다. 더군다나 서구사회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세를 보이는 아프리카에 불임시술이 적합하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의료활동은 그와 같은 악조건에서 이룩한 것이었다.

 

익히 알려진 구호단체나 사회단체조차 주판알을 퉁기며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나서길 꺼려하는 행태는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한다. 학교를 세우는 일과 병원을 설립하는 일은 경중을 따질 수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교육의 중요성에 이의를 달지 않는 사람도 병원이라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같이 인구증가에 곱지 않는 시선을 받는 지역일수록 불임을 통한 인구억제라는 반인권적인 처방을 강요하기 쉽다는 점에서 햄린의 누치료 전문병원 같이 산부인과 병원을 설립하는 데 행·재정적 지원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은 누라는 치명적인 질병에서 놓여나 기쁨의 눈물을 보이는 에티오피아 여성에게서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보람을 찾은 한 의사의 평생에 걸친 진료 기록이자 인류애로 똘똘 뭉친 부부의 인도적인 사랑을 정밀하게 그린 르포다. 우린 필연코 이 책을 통해 부끄러운 자화상을 바라보게 된다.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일이란 이름을 알리는 데 있지 않으며, 무한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 있지 않다는 무언의 충고 앞에 그녀를 따라 다니는 '살아있는 마더 테레사' 라는 호칭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캐서린 햄린은 지금도 외진 곳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보듬고 애틋한 마음으로 돌보는 수많은 봉사자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이 다시금 그들의 존재를 돌아보는 데 크게 쓰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누질환의 정의 출처 : 예스24의 책소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자연은 향유하는 사람의 소유입니다. 자연을 소유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마는 자연이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자연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좋다한들 그것을 제것으로 누리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평소엔 그 고마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불현듯 곁에 있음이 사무치게 고마운 경험은 애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오래 전, 전 산악자전거를 타며 계절이 오고 가는 걸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달력이 넘어가야 1년이 가는 줄 알았던 루틴한 직장 생활에 활력을 넣어줬던 게 자전거 타기였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로도 좋았지만 들과 산을 달리며 꽃과 나무들을 실컷 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특히 봄철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걸 경이감으로 눈에 담았고 나뭇잎이 연초록에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에 경탄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전 윤행(輪行)을 통해 맘껏 누렸습니다.

 

어릴 적 흔히 봐온 꽃과 나무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 건 도시의 삶이 그만큼 퍽퍽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야 과거보다 월등히 나아졌지만 마음과 몸을 제대로 누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 다음에야 나아졌다고 단정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자연은 누리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나갔습니다. 계절이 오고가는 걸 해마다 보았니 하고 제게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하는군요. 반타작을 겨우 면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마음껏 자연을 가르던 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최병성의 생명편지'라는 부제를 단 〈알면 사랑한다〉는 저자가 서강의 아름다움으로 소중한 생명을 찾아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글과 카메라에 담은 수많은 글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나는 숲을 거닐 때 가장 행복합니다." '작가의 말' 제일 앞에 쓰인 이 글이 저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의 행복이 오롯이 전해져오는 통에 한동안 이 문장에서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말을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 앎이란 대부분 지식적인 것이지요. 과연 내가 그 말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지 묻는다면 몇 사람이 '예'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사랑스런 아내와 자녀들이 당신 곁에 있다면 행복하십시오. 부모님께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당신 곁에 서 계시다면 행복하십시오. 언제든 내 편인 친구의 얼굴이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행복하십시오. 행복하다는 인상은 심상에서 불러내지는 것입니다. 없던 것이 새로 생겨서 행복하다기보다 늘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든 잘 보지 못한 걸 본 데서 오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저자는 감사의 마음을 숲에서 찾았습니다. 어디서곤 상관없겠지요. 새롭게 보이는 것만큼 감격스러운 게 있을까요? 저자가 숲을 찾은 이유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날 문뜩 마주친 새싹에서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신비감에 넋을 놓은 저자가 세상의 시끌벅적함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 야단이냐는 질책을 받고 크게 깨달았을 것도 같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였지 않았을까요? "쇠딱따구리, 노랑턱멧새, 달맞이꽃, 들국화 .......  숲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다름'과 '더불어'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인간의 제자리를 배웠다"고 그는 썼습니다.

 

1999년,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 건설이 불거지자 이를 막기 위해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던 그가 서강의 아름다움에 눈 뜬 건 '다툼 없이' 살아가는 서강을 속속들이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의 글은 머리 속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숲속 친구들이 놀랄세라 사뿐사뿐 걷고, 행여 그들이 곤한 잠에서 깨랴 카메라 앵글을 조심스럽게 돌린 정겨운 마음의 산물입니다. 잔잔한 물가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꽃잎처럼 물살에 순응하며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간 필력의 힘은 그런 데서 온 것입니다. 손수 찍은 사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글편에 놀다 오는 일은 당신이 잠시 잊은 행복을 기억케 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멘토링 - 오프라 윈프리의 상담 코치 필립 맥그로의 특별한 인생 상담
필립 C. 맥그로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도 간이역에서만큼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춘다. 길어야 20여분 정도의 짧은 정차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탑승객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우동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삼삼오오 모여 기타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일삼던 청년들은 부푼 방광을 덜어내려 화장실을 분주히 오고간다.

 

그 시각 기관사는 계기판을 재차 점검하고 각종 기계장치의 작동상황을 체크하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을지도. 잠시 간이역 철로변에 내려 뻣뻣해진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던 승객들의 입에서 싱그런 계절, 5월을 마주하는 탄성이 터질 때쯤이면 아쉬운 정차시간은 아쉬운 대로 접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적은 양의 쉼일지라도 그 쉼을 통해 긴장을 이완하고 조금 다른 생각에 여유롭게 빠질 수 있는 시간. 살다보면 실제 그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간이역은 쉼의 자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며 달려온 길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내려놓음의 자리. 그 자리는 간이역에서 승객들과 기관사가 한 행동과 같이 몸을 누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재충전의 자리이기도 하다.

오프라 윈프리 소송사건을 승리로 이끌어 유명세를 탄 저자 필립 맥그로는 미국 최고 인기 토크쇼인 '닥터 필'의 진행자로 활동하며 「인생 멘토링」을 비롯해 「똑똑하게 사랑하라」, 「인생의 전략」 등을 낸 대표적인 인생 전략가다.

 

저자는 이 책, 「인생 멘토링」에서 자주 자기와 남을 혼동하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는 현대인들의 현 상태를 적절히 지적해내기 위해 자기주도적인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풀어내는 데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서서히 간이역에 도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이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감속이 필수적이듯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이생을 계획하기 위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 위한 일종의 철학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장치를 통해 내 인생이 과연 제대로 기획된 인생인지, 또는 절망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동인을 갖게 될 수 있다.

 

인생에서 실패하게 되는 주요인 중의 하나는 프레임 설정의 잘못에 있다. '타인에게 비친 나'의 프레임으로 자신을 보고 그렇게 투영된 모습대로 살아간다. 그렇다보니 어느 순간 자신은 온데 간데 없고 영화 '페이스오프'처럼 타인의 얼굴을 한 자기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어버린 뒤다. 손쓸 새도 없이 막 뒤로 쓸쓸히 사라질 준비를 해야 하는 때. 그 때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저자가 말하는 '자기주도적 삶'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 자리에 자신을 복원해 놓는 일이다. 그 일은 또한 자기결정권을 회복하는 길이며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방책이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인생이 자기주도적 삶으로 화려하게 꽃필 인생임을 자각하는 순간 인생 제2막이 서서히 열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간이역에 도착했다면 이제 나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볼 시간이다. 이곳엔 '지난 시절, 삶을 변화시킨 결정적 사건들'과 '인생을 바꾼 일곱 가지 선택', '내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주제어로 등장한다. 인생은 '관계'와 '선택'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환경 또는 타인과 수없이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그 가운데서 특정 환경과 타인을 선택한다. 때론 그 선택이 인생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결정적이기도 하고 때론 치기 어린 행동에 불을 지피는 한낮의 화약고와 같기도 하다.

 

간이역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데 유용한 시간을 제공한다. 바야흐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결단한 사람이라면 지난날 과오는 털어 버리는 의지적인 노력을 앞서 해야 한다. 일종의 자기와의 솔직한 대면 행위와 같은 이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새로운 선택을 적게 한다는 의미와 일견 통하는 면이 있다. 많지 않은 선택이 '신중하다' 또는 '집약적이다'라는 형용사와 잘 맞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부분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중년 남성 이상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그 카피가 의식을 바꿔놓는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자기암시가 필수적이다. 한동안 긍정의 힘을 강조한 책들이 봇물 쏟아지듯 출간되기도 했다. 그 책들이 실천이라는 부분을 균형있게 다루지 못한 점에서 비판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자기암시와 표현에 대한 통찰력은 곱씹을 구석이 적지 않다. 저자 또한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기주도적 삶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성찰에 충실했다면 이제 당신에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실천 메뉴얼'이 주어질 것이다. 저자는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실천 매뉴얼'을 다섯 단계로 구분해 놓았다. 1단계, 인생 사슬의 첫 고리를 찾는다. 2단계, 그 사건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본다. 3단계, 자신의 내적인 반응의 진정성을 평가한다. 4단계, 참되고 정확한 대안을 생각한다. 5단계, 최소 효과 반응(투입요소는 적지만 효과는 만점인 행동)을 찾아 실행에 옮긴다. 인생이 특정 단계별로 진행된다면 단계별 맞춤식 진단과 처방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인생이란 없다는 점에서 저자의 5단계 실천 매뉴얼이 지닌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생이라는 계획을 재구획하고 재조정하는 데 채용할만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는다는 점은 현대사회가 결과한 또 다른 비극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회 구성원이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한 이치는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생 실패자와 낙오자가 많은 사회란 절망적인 사회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조금 더 일찍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아갈 여지를 보다 일찍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저자의 통찰이 구체적인 실천의 문제에 근접하지 못한 이론적 측면이 강하다 할지라도 자기 성찰과 긍정적인 미래상을 기획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 대법관이 각종 매스컴을 들끓게 하고 있다. 촛불집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며칠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 처분을 받는 등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그의 거취문제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법관의 경고 처분에 맞춰 그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진사퇴 의사가 없는 사과문에 반발한 판사들이 판사회의의 소집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사태의 추이는 앞으로 주시해야겠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사법권의 독립'에 있다. 신 대법관은 애초 대법관의 신분을 넘어 부당하게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행동을 보여왔다. 이는 사법관의 내부 독립을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으로 비춰졌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태에서 판사들의 분노는 예상보다 컸다.

 

정치검사와 정치판사에 대한 혐오감이 큰 우리 현실에서 볼 때 이번 사태가 신 대법관의 자리보전으로 끝날 경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혼란스럽다. 청와대가 그의 퇴진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보도마저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거취 문제가 예상외의 파장을 몰고 오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법부의 일대개혁과 일반 법관의 좌절 양극단에서 사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때마침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이 나왔다. 이미 〈헌법의 풍경〉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비판을 두루 보인 저자는 이 책에서도 동일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다. 독특한 점은 그가 이 책에서 양적 연구에 기초한 일반적 방법론과 달리 질적 연구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검사와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가 불신 받는 이유 전반에 대해서 주변 인물과 관련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동일 맥락에서 2008년 2월 서른 명을 목표로 면담을 시작했다. 법조계와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녹취록을 담은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법조계의 대표선수라 할만한' 판사를 대상으로 녹취한 일은 이례적이다. 이런 작업에 필수요소는 객관성 확보에 있다. 저자는 이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사건 당사자와 자신을 사법 피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배제했다. 이는 법조계 내부와 외부의 시선을 동일 수준에서 포착함으로써 법조계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이와 같이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적 감정의 발로로 그치지 않으려면, 곧 단순한 배설 수준에 그치지 않으려면 장치 마련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장치로 그가 택한 방식이 앞서 언급한 '사건 당사자와 사법 피해자'의 배제에 있었다.

 

그렇다고 당초 우려를 온전히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녹취대상자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다고 봤지만 실제 면담을 하다보면 과거에 사건과 얽힌 적이 있던 사람들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할말도 많았던 사람들의 진술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그 진술을 가감 없이 책에 실은 것은 사법부에 대한 직접적인 의사를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균형은 보다 신중한 피면담자 선택과 녹취로 메울 수 있었다.

 

저자가 들려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면담자가 진술한 사법부와 그 주변의 이야기는 속을 뒤집어 놓는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법부 내부의 볼멘소리와 달리 사법부는 비리를 생산하고 또 잠시 비리를 벗었다해도 언제든 비리를 저지를 여지와 개연성이 충분할 정도로 검찰과 판검사가 선후배로 얽히고 설킨 '관계 중심망'을 형성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점을 종종 사법부 비리가 터지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고 보았다.

 

사법고시 출신자가 고작 15,000명에도 못 미치는 '그들만의 리그'(사법 영역)에서 설혹 내부 관행이 문제가 되더라도 그것을 단번에 끊어낼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잘못하다간 그야말로 찍혀서 진급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빡빡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돌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조직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 시스템의 문제였던 것. 개인이 청렴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절은' 사법부를 개혁하는 일에 이 책이 기여할 바탕이 바로 그 시스템의 문제를 직접 겨누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려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상처라고 등한히 하면 크게 덧나기 마련이다. 상처가 더욱 깊어지면 그땐 치료시기마저 놓칠 수 있다. 전작 〈헌법의 풍경〉을 통해 신고식을 다소 호되게 치른 저자가 사법부의 개혁에 주목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 성역이 존재하는 한 그 성역은 부패의 연결고리가 되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이치다.

 

이 책이 사법부에 관한 진실의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이 책이 단초가 되어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길에 놓인 암초들을 하나둘씩 치워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절실한 때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물질적 측면에서보다 정신적 측면에서 더욱 요망스러워야 가능할 일이다. 사회의 구조가 전반적으로 선진국화하고 국민의 의식수준에 더불어 고양될 때 바람직한 의미의 선진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믿고 있다.

 

이 책은 사법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만 그것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봄이 적절하다.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성역처럼 자리잡은 곳이 이와 같은 책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식이 확장되고 그 의식이 이 책을 통해 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 저자는 "2008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1만 173명, 판사는 2352명, 검사는 1676명 입니다. 모두 합치면 1만 4201명입니다" 라고 썼다. 그만큼 법조계가 좁은 바닥이라 구술자가 어떤 진술을 할 경우 상당수는 금방 "누구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잘한 일이건 못한 일이건 금새 소문 나는 '동네'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