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 대법관이 각종 매스컴을 들끓게 하고 있다. 촛불집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며칠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 처분을 받는 등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그의 거취문제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법관의 경고 처분에 맞춰 그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진사퇴 의사가 없는 사과문에 반발한 판사들이 판사회의의 소집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사태의 추이는 앞으로 주시해야겠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사법권의 독립'에 있다. 신 대법관은 애초 대법관의 신분을 넘어 부당하게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행동을 보여왔다. 이는 사법관의 내부 독립을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으로 비춰졌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태에서 판사들의 분노는 예상보다 컸다.

 

정치검사와 정치판사에 대한 혐오감이 큰 우리 현실에서 볼 때 이번 사태가 신 대법관의 자리보전으로 끝날 경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혼란스럽다. 청와대가 그의 퇴진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보도마저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거취 문제가 예상외의 파장을 몰고 오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법부의 일대개혁과 일반 법관의 좌절 양극단에서 사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때마침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이 나왔다. 이미 〈헌법의 풍경〉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비판을 두루 보인 저자는 이 책에서도 동일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다. 독특한 점은 그가 이 책에서 양적 연구에 기초한 일반적 방법론과 달리 질적 연구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검사와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가 불신 받는 이유 전반에 대해서 주변 인물과 관련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동일 맥락에서 2008년 2월 서른 명을 목표로 면담을 시작했다. 법조계와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녹취록을 담은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법조계의 대표선수라 할만한' 판사를 대상으로 녹취한 일은 이례적이다. 이런 작업에 필수요소는 객관성 확보에 있다. 저자는 이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사건 당사자와 자신을 사법 피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배제했다. 이는 법조계 내부와 외부의 시선을 동일 수준에서 포착함으로써 법조계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이와 같이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적 감정의 발로로 그치지 않으려면, 곧 단순한 배설 수준에 그치지 않으려면 장치 마련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장치로 그가 택한 방식이 앞서 언급한 '사건 당사자와 사법 피해자'의 배제에 있었다.

 

그렇다고 당초 우려를 온전히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녹취대상자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다고 봤지만 실제 면담을 하다보면 과거에 사건과 얽힌 적이 있던 사람들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할말도 많았던 사람들의 진술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그 진술을 가감 없이 책에 실은 것은 사법부에 대한 직접적인 의사를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균형은 보다 신중한 피면담자 선택과 녹취로 메울 수 있었다.

 

저자가 들려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면담자가 진술한 사법부와 그 주변의 이야기는 속을 뒤집어 놓는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법부 내부의 볼멘소리와 달리 사법부는 비리를 생산하고 또 잠시 비리를 벗었다해도 언제든 비리를 저지를 여지와 개연성이 충분할 정도로 검찰과 판검사가 선후배로 얽히고 설킨 '관계 중심망'을 형성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점을 종종 사법부 비리가 터지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고 보았다.

 

사법고시 출신자가 고작 15,000명에도 못 미치는 '그들만의 리그'(사법 영역)에서 설혹 내부 관행이 문제가 되더라도 그것을 단번에 끊어낼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잘못하다간 그야말로 찍혀서 진급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빡빡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돌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조직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 시스템의 문제였던 것. 개인이 청렴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절은' 사법부를 개혁하는 일에 이 책이 기여할 바탕이 바로 그 시스템의 문제를 직접 겨누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려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상처라고 등한히 하면 크게 덧나기 마련이다. 상처가 더욱 깊어지면 그땐 치료시기마저 놓칠 수 있다. 전작 〈헌법의 풍경〉을 통해 신고식을 다소 호되게 치른 저자가 사법부의 개혁에 주목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 성역이 존재하는 한 그 성역은 부패의 연결고리가 되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이치다.

 

이 책이 사법부에 관한 진실의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이 책이 단초가 되어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길에 놓인 암초들을 하나둘씩 치워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절실한 때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물질적 측면에서보다 정신적 측면에서 더욱 요망스러워야 가능할 일이다. 사회의 구조가 전반적으로 선진국화하고 국민의 의식수준에 더불어 고양될 때 바람직한 의미의 선진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믿고 있다.

 

이 책은 사법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만 그것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봄이 적절하다.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성역처럼 자리잡은 곳이 이와 같은 책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식이 확장되고 그 의식이 이 책을 통해 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 저자는 "2008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1만 173명, 판사는 2352명, 검사는 1676명 입니다. 모두 합치면 1만 4201명입니다" 라고 썼다. 그만큼 법조계가 좁은 바닥이라 구술자가 어떤 진술을 할 경우 상당수는 금방 "누구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잘한 일이건 못한 일이건 금새 소문 나는 '동네'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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