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의 동행
존 비비어 지음, 우수명 외 옮김 / 엔씨디(NCD)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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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성품은 제각각입니다. 일 개인이라 하더라도 그 개인 안에는 다양한 성품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만 어떤 특정 성품이 도드라 보일 뿐 그 특정 성품이 그 개인을 전부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면 그가 지닌 성품들을  다양하게 겪어봐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사귐의 깊이가 남다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다양한 성품을 갖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분의 성품을  여러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고, 그가 죽어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가운데서 그 고통을 감내하며 영원히 살 비참한 존재에 다름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그분의 사랑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참으로 좋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응당 내게 주어져야 할 것'으로 곡해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곡해는 필시 하나님에 대해 무한히 요구하고 그분을 인간의 수준으로 떨어뜨려 그 수준에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강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쓴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엔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는 분이라는 오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당 주인되심이 마땅한 예배시간에 조차 여느 장소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의 자세를 고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대통령이 와 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태도를 명확히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이시지만 또한 경외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통령을 대할 때 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할 분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린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예배에 참석하고 별 감흥없이 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종일토록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치는데 하나님이 그 천사보다 낫게 여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전혀 다르게 대하고 있으니 저자가 거룩한 분노를 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저자는 크리스천 작가로, 설교가로 두루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책에서도 인용된 바와 같이 저자는 각종 집회에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집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집회일수록 지식과 이성만 또렷합니다. 집회를 연 목적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음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영적인 유익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마치 그를 몹시 두려워하고 스스로 위축되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처분만 바라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 시대의 그릇된 관념에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임재하십니다. 그것을 저자는 1. 거룩한 질서, 2. 하나님의 영광, 3. 심판의 패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질서가 잡히지 않은 곳에 하나님은 영광으로 임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개인과 공동체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질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스러운 존재여도 우린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시계의 존재 목적이 시계를 찬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데 있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 목적은 익히 알려진 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겁게 하는 것이다. 경외심을 잃은 시대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보십시오. "한때 하나님을 향해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과 경외심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기적 욕망이 들어섰다. 결국 사람들은 종교적 활동과 교리에만 치중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려는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p118,119)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사라진 곳에 종교적 활동과 교리가 남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세가 산에 오른 지 수일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속속들이 목도한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림으로써 필요한 때 언제라도 부르기 쉽게 가까운 데 가둬두려는 욕망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우린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 돈의 일부를 감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이로써 우린 앞서 저자가 말한 1. 거룩한 질서, 2. 하나님의 영광, 3. 심판의 성경적 패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순종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해 보였던 야고보와 같이 믿음은 그것에 따르는 행동을 통해 확연히 그 입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믿음 있다고 말해도 그 믿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 과연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순종의 삶을 동반한다."(p115) 경외심과 순종과 믿음은 삼두마차와 같습니다. 경외심이 있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다든지,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외심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능한 토대이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성경의 예와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저자의 이 책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꿈꾸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사랑의 하나님이 자주 강조되어 반대급부적으로 공의의 하나님이 적게 언급된 우리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경외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경외함이 또한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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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ing 2011-10-2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존 비비어'를 검색하다가
리뷰 쓰신 걸 보고 댓글 남깁니다.

내년 1월에 존 비비어 목사님과 리사 비비어 사모님께서
한국에 오시거든요~
책을 통해 이미 경험하셨겠지만
정말 강력한 시간이 될거라 믿어 소식 알려드리려구요^^

www.어웨이크2012.com
으로 가시면 더 자세한 정보 얻으실 수 있습니당^^
 
내 몸에 스마일 - 바쁜 직장인의 몸을 웃게 만드는 직장인 처방전
정이안 지음 / 해빗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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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건강해야 일을 하고 건강해야 꿈도 펼칠 수 있으니 모름지기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 들어 웰빙과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는걸 보면 그 같은 바람이 단순히 어제오늘의 일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이 수년 전에 이미 백세 사회를 주창하며 의학과 건축, 노동 등 관련 분야 전반을 새롭게 구조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또한 건강한 사회와 건강한 개인을 향한 이상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월 WHO(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기대 수명이 79세로 WHO 회원국 198개 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여자의 평균 기대 수명은 82세, 남자는 72세였다. 1948년에 평균 기대 수명이 46.8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하몬드라는 그의 저서 〈2030년의 삶〉에서 인간의 기대수명이 130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설로는 120세 정도라지만 어느 것이 됐든 그 정도 수명이라면 대단한 나이다. 이쯤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그 바탕이 되는 첫째 요소는 단연 건강이다.




오죽했으면 ‘돈이나 명예를 잃는 것은 일부를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다 있을 정도일까. 하지만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실제 무지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 몸에 이상 반응이 있으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또 그와 같이 처방하는 것이 고작인 것 같다. 요즘이야 큰 병, 작은 병 가리지 않고 병원을 찾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수년 전에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약학적 지식없이 일반인이 특정 약을 요구하는 행태의 위험성을 지적한 후 증상을 설명하지 않고 약사에게 어떤 약을 달라고 요구하는 빈도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지만 크게 달라졌다는 판단은 섣부를지 모른다. 여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핑계로 병원 처방전 없이 약국에 들러 생각해 놓은 약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직장인의 경우 아프다고 마냥 눈치 없이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아쉬운 대로 약국 약으로 치료를 대신하는 게 보편적이다. 수일 내에 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큰 병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외에 생각으로 병을 키우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정확한 의학 지식 없이 큰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몸을 움츠릴 경우 없던 병도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병원에 갈 형편도 안 되고 그렇다고 큰 병이 될지 모르는데 마냥 방치할 수만 없는 경우에 절실히 필요한 게 ‘곁에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지침서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저자 또한 그 점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이미 다년간의 임상 경험과 방송출현, 집필활동 등으로 대중의 필요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 저자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일반인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았을지 모를 병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을 몰아내고 어쭙잖은 반쪽자리 의학 지식을 바로잡기 위해 저자가 이 책을 시중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인이 앓고 있거나 앓을 개연성이 높은 질병군을 모아 질병의 증상과 발병 원인, 그리고 처방에 이르기까지 여성적인 시각으로 섬세하게 적어 놓았다. 아울러 전문의학 용어는 가급적 피하고 평이하게 서술해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용이하다는 장점 또한 갖추고 있다. 따라서 어떤 독자라도 이 책에 관한 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무엇보다 소프트한 내용 못지않게 부드럽게 다가오는 의학 상식은 질병에 대한 근거 없는 걱정을 불식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각의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사항은 관련 서적을 탐독한다든지 직접 병원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일종의 상비약처럼 사용하면 좋을 듯싶다. 가정용 구급함 안에 세상의 모든 약이 들어있지 않듯이 이 책 또한 세상에 퍼진 질병 전부를 담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질병을 심도 있게 살피지도 않았다. 이런 한계는 저자가 이미 서문에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을 막연한 두려움이나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진 일반인들을 위해 쓰였다는 점에 돌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 장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가 진단 항목을 일일이 체크함으로써 현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설혹 진단표에 기재된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 질병의 원인이 충분히 요약 정리되어 있고 병을 물리치는 데 필요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의약처방 등이 망라되어 있어 불안감을 상당부분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질병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대응책은 실전에 써 먹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아무리 훌륭한 비책이라도 현실적응력이 떨어지면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반대급부적으로 전문적인 이론으로 무장한 여타 의학 서적이 갖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콤팩트한 장정도 의학 서적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난해한 성격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핸드백 속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라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작은 판형이 주는 가벼움이 이 책에 보다 자주 손이 가게 하는 데 적절히 작용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곁에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지침서는 일종의 틈새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의학서적과, 또한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사이비처방책들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면서 그 둘의 중간에 속한 지리적 이점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선택은 시의적절하다. 이 책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필두로 기름기 뺀 의학서적의 연속적인 출간을 기대한다. 어깨에 힘이 덜 들어간 사람에 대해 친근감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성정은 그와 같은 책에 대한 선호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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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 - 칭기스칸의 손자, 사상 첫 세계제국을 만들다
김종래 지음 / 꿈엔들(꿈&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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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일수록 결단이 빨라야한다. 멈칫하는 순간 돌파구는 멀어지고 그만큼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 추종자들과 리더를 둔 조직의 경우, 리더는 신속한 판단력과 발 빠른 결단으로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결단은 누구나 주저하는 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멸에 빠지기도 하고, 공멸은 아니더라도 뼈아픈 실책의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자가 물러나야 하는 일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 위험을 감내하는 리더야말로 추종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위기의 시대에 특히 그런 리더의 탄생을 고대하는데, 그것은 과거와 달리 리더와 추종자 사이의 정보의 습득차가 별로 나지 않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과거와 같이 리더가 중요정보를 먼저 알고 그것을 추종자들에게 알려준 후 리더가 방향제시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리더와 거의 같은 시기에 정보를 취득한 추종자들은 그 정보를 가지고 가능한 의사결정의 수를 마련한다. 그리고 리더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지켜본다. ‘온당한 리더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잠정적인 답안도 가지고 있다. 이런 때 리더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까?




우선 과감해야한다. 어떤 결정이든 위험은 따르기 마련이다. 쉽게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서 추종자들의 눈이 리더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리더가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주면...? 추종자의 리더에 대한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쉽다. 리더에게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결정이든 함께 하겠다는 의사표시에 대한 응답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수준의 응답이라면 빠를수록 좋다. 그만큼 신뢰가 더욱 높아지고 조직의 결속력 또한 크게 신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CEO 칭기스칸〉으로 유명세를 탄 김종래의 서적 제목과 같이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이 그런 리더다. 칭기스칸이 이루지 못한 원대한 제국의 꿈을 현실화한 인물, 정치력과 국제 감각을 두루 갖춘 경영자, 동양에서 최초로 발원한 세계제국의 창시자 등 그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많다. 하지만 저자가 관찰한 쿠빌라이 칸은 그런 ‘간판’을 뛰어넘는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결과론적인 타이틀이다. 그런 타이틀을 얻기까지 그가 고투한 정신을 촘촘히 추적하는 데 목적을 둔 저자가 이 책을 여느 책과 같이 연대기적으로 풀지 않은 것이 사려 깊다.




연대기적 서술은 일정한 시대적 흐름을 타기 마련이라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저자가 주인공을 통해 조명하려는 핵심사항을 강한 어조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이와 대조적으로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버리면 저자가 주장하려는 바를 주인공의 특정 자질을 빗대 핵심적으로 전달하기가 용이하다. 그와 같은 의도를 담아 저자는 이 책을 총 5개의 장으로 나눴다.




제1장, ‘말 위에서 천하를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통치할 수는 없다.’, 제2장, ‘꿈을 잃어버린 신바람의 땅’, 제3장, ‘오늘은 어제의 끝이자 내일의 시작이다.’, 제4장, ‘매 초마다 지구 단위로 생각하라.’, 제5장, ‘세계를 뒤흔든 대원제국 쇼크’가 그것들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끈 대목은 지구 단위로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경제위기를 예로 드는 게 좋겠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순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일은 이제 화젯거리도 아니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정보와 자본과 물건의 유통이 매초 단위로 이뤄지는 초고속의 세계 속에서 그것들을 다루는 사람의 선택이 어떠해야하는지는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분초를 다투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금’인 시대가 아니라 ‘매 초가 달러’인 시대인 것이다.




국경 없는 경제의 시대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찻잔 속 태풍과 같은 일국 단위의 위기와 해법은 의미 없게 되었다. 선택을 했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남의 나라의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징후를 우린 지난 경제 위기에서 여실히 보았다.




이제 지역단위, 또는 국가 단위의 사고로는 어림없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그런 시대의 선구를 저자가 쿠빌라이 칸에게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게 쿠빌라이 칸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는’ 전형적인 리더였다.




십수 년 전 아이엠에프 위기를 맞아 황망한 세월을 보내던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는 목적에 〈CEO 칭기스칸〉을 집필했다는 저자가 오늘 또 다시 몽골의 후예를 거론하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시 우리가 리더의 부재 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가 어떤 리더를 요구하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물론 자질 있는 한 사람의 리더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영웅주의 사관의 영향으로 시대를 바꾸는 영웅에 대한 기대감이 없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리더가 추종자들과 연합할 때 나타나는 강력한 효과가 근원적인 힘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리더의 모습을 쿠빌라이 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렵고 힘겨운 시대다. 대륙을 호령한 리더를 읽고 웅혼한 기운을 북돋을 일이다. 깊은 산이라고 길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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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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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존경 받는 이유는 한 분야에 전력투구한 데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다종다양한 물건이 튀어나오는 문명 속에서 마음에 둔 한가지만을 줄곧 좇는 일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는 것쯤 다들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몰두하다 자칫 실패하기라도 하면 지나치게 난감하고 두루 알아야 대접받는 시대상에 비춰 그 한 가지에 전심을 다하는 건 고루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사회적 시선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지요. 어느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난 한 사회적 인간이 아닐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내 생각만 고집할 수 없고, 내 주장만 옳다고 내세울 수 없는 이치이고 보면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은 ‘남 보기에’ 집착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시선이 두려운 거지요. 그래서 그런 저런 시선을 뿌리치고 자기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이가 있다면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주는 게 마땅한데, 주위와 섞이지 못한다고 손가락질부터 하는 게 세상 이치가 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어떤 이를 차별적으로 보는 한 우리 사회에서 장인을 키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게 될 것입니다.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그런 인정 속에서 경쟁하며 성장하는 사회를 전 이 책(〈기적의 사과〉)의 주인공을 통해 그려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1949년 아오모리 현 이와키마치에서 대대로 사과재배를 해온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고교졸업 후 취직한 직장을 1년 만에 때려치우고 귀향한 그는 1978년부터 사과재배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생명농법의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읽고 기존 농법에 대변화를 이룹니다. 농약과 비료 없이 오로지 자연의 힘에 의존하는 농법에 대한 이상을 농토에 쏟아 붓기 시작한 그는 9년의 혹독한 시련을 대가로 치릅니다. 그 후에 비로소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과일이 여기 있다! 혀끝을 유혹하는 강렬한 단맛과 신맛, ‘나무 열매’의 생생한 풍미와 신선한 과즙이 그대로 살아있는 야생의 맛이었다”는 찬사를 듣습니다.



 

그에게 닥친 고난과 그가 이룬 성취를 고작 예닐곱 줄에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삶은 행간이 더욱 웅변적입니다. 삶의 기록이 담지 못한 농밀한 감동의 세계를 그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농법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근․현대농법은 막대한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반자연적인 농법입니다. 오로지 생산물의 극대화만을 위해 기획된 근․현대농법으로는 필연적으로 결과한 지력의 쇠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고혈을 짜내듯 쇠락한 땅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피한방울마저 요구하는 형국으로까지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약품을 줘서 꺾꽂이 꽃을 조금 더 관상하려는 의지와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자연농법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때에 맞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고 뜨겁고 서늘한 햇빛을 고루 비추는 자연의 힘에 의존해 땅과 더불어 생명을 키워가는 농법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자연에 가한 위해를 거두는 농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기무라 아키노리와 같은 대가를 필요로 하는 농법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가 치른 9년여의 고통은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우리 모두에 대한 형벌로 봄이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자연에 기댈 수 있는 건 마찬가지로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 때문입니다. 좋은 것으로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을 기무라 아키노리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자연에서 일궈낸 값진 이름입니다. 그와 같은 이가 우리 땅에도 나와 주길 기대합니다. 농산물 뿐 아니라 공산물에서도 자연의 의미를 돌아보는 신문명인이 태동할 날을 고대하는 건 자연을 거부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맛의 세계는 기무라 아키노리 일궈낸 ‘전과 다른’ 사과 맛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보다 동질적이 될 때 거둘 것이 많다는 사실을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과가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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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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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외로 남자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나 수필은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주먹의 세계'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정도입니다. 성공적인 직장생활 안내서를 그 범주에 둔다면 많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엄밀한 의미에서 남성의 세계를 다뤘다고는 볼 수 없지요. 이 책을 대하면서 언뜻 이런 류의 책들이 있었나 싶어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식이 짧아서 그런지 떠오르는 책들이 별반 없더군요. 심리학과 의학 서적 중에 몇 권이 나온 걸 본 기억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처럼 또 다른 절반을 이루고 있는 남성을 소재로 한 책이 손꼽을 정도로 적은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남성에 관한 한 그 확고한 이미지가 오히려 관련 책의 출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한 건 아닌지 따져보았습니다. 가장과 직장인, 그리고 장남 등 시시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은 그 이름만큼이나 사회적으로 또한 가정적으로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회학적으로는 강요된 기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년 전 읽은 책(엠마뉴엘 레이노의 〈강요된 침묵-억압과 폭력의 남성 지배문화〉)은 남성성의 이름으로 여성에게 자행되는 범죄를 진단하고 가부장제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남성의 변화를 촉구한 바 있기도 합니다. 양자의 입장을 옹호와 비판으로 확연히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남성성에 관한 시각은 전자와 같이 남성이 사회적으로 떠 안은 과중한 위치에 대한 부담 측면에서 남성성을 바라보는 측과 후자처럼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남성을 여성에 대한 억압 기제로 보고 남성의 근본적인 변화를 역설하는 측으로 2대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남성에 대한 인식은 극단과 극단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랜 세월 남성 지배문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물렀던 여성에게 남성성은 필연적인 극복대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근대 이후 남성 지배 문화의 역사성에 눈뜬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그 점을 역설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대에선 오히려 역차별이 운위될 정도로 여성 우월적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물론 연한으로 따지면 여성 차별의 기간이 남성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달리 이론이 없습니다.

 

동서가 있고 좌우가 있듯이 남성과 여성은 서로 어느 한 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상호 교류하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여성해방 또는 남성해방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인간해방이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사용되는 이유도 그런 남성과 여성의 독특한 위치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어느 한쪽을 억누르고는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인식의 공유가 강요된 선택 또는 강요된 침묵 속에 들이밀어진 관계가 아닌 소통과 상호작용이 자유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남성의 이야기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압과 폭력에서 떠올려지는 '강한 남성'의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좌절하고 연민에 빠져 눈물짓고 아내에게 매맞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성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들려주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남성과 여성의 관계 변화와 맥락적으로 연결되겠지요.

 

이제 남성은 과거와 같이 지배문화의 창설자 또는 전파자가 아닙니다. 가정과 사회 내에서 고뇌하고 분투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찾아 이곳저곳, 특히 여성 곁을 기웃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과거 한 동안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온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이분법적 태도의 맹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어느 한쪽을 행해 그의 입장에서 그의 위치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은 데 있지 않겠습니까? 적대적 시각으로는 애당초 관용과 수용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대립과 반복이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절반인 남성과 여성은 극단적으로 대치하며 서로를 향해 비수를 꽂게 되겠지요. 그것의 위험성을 본 것일 겁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향해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강요된 이미지가 아니라 오늘 사회적으로 드러난 본연의 이미지를 날것으로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습니다. 그럴 때 서로 새로운 관계설정이 자유로울 것입니다. 미래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 설정이라는 비전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만큼 설레는 게 또 있을까요? 이 책이 그 도정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책을 통해'현대 남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편의 이야기는 각각 집필자가 한 명의 중복도 없이 평범하거나 비범한 남성들이 썼습니다. 각각의 이야기 말미에 저자가 간단하게 코멘트를 달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약력이나 출처를 밝힌 정도이니 집필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 책과 쌍벽을 이루는 전작,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을 통해 세계 각계 각층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스티브 비덜프는 이미 수십 년 동안 가족문제와 부모 역할에 관한 문제를 다뤄온 심리학자이자 남성에 관한 총체적인 시각을 자랑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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