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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의외로 남자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나 수필은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주먹의 세계'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정도입니다. 성공적인 직장생활 안내서를 그 범주에 둔다면 많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엄밀한 의미에서 남성의 세계를 다뤘다고는 볼 수 없지요. 이 책을 대하면서 언뜻 이런 류의 책들이 있었나 싶어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식이 짧아서 그런지 떠오르는 책들이 별반 없더군요. 심리학과 의학 서적 중에 몇 권이 나온 걸 본 기억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처럼 또 다른 절반을 이루고 있는 남성을 소재로 한 책이 손꼽을 정도로 적은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남성에 관한 한 그 확고한 이미지가 오히려 관련 책의 출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한 건 아닌지 따져보았습니다. 가장과 직장인, 그리고 장남 등 시시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은 그 이름만큼이나 사회적으로 또한 가정적으로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회학적으로는 강요된 기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년 전 읽은 책(엠마뉴엘 레이노의 〈강요된 침묵-억압과 폭력의 남성 지배문화〉)은 남성성의 이름으로 여성에게 자행되는 범죄를 진단하고 가부장제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남성의 변화를 촉구한 바 있기도 합니다. 양자의 입장을 옹호와 비판으로 확연히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남성성에 관한 시각은 전자와 같이 남성이 사회적으로 떠 안은 과중한 위치에 대한 부담 측면에서 남성성을 바라보는 측과 후자처럼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남성을 여성에 대한 억압 기제로 보고 남성의 근본적인 변화를 역설하는 측으로 2대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남성에 대한 인식은 극단과 극단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랜 세월 남성 지배문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물렀던 여성에게 남성성은 필연적인 극복대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근대 이후 남성 지배 문화의 역사성에 눈뜬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그 점을 역설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대에선 오히려 역차별이 운위될 정도로 여성 우월적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물론 연한으로 따지면 여성 차별의 기간이 남성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달리 이론이 없습니다.
동서가 있고 좌우가 있듯이 남성과 여성은 서로 어느 한 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상호 교류하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여성해방 또는 남성해방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인간해방이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사용되는 이유도 그런 남성과 여성의 독특한 위치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어느 한쪽을 억누르고는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인식의 공유가 강요된 선택 또는 강요된 침묵 속에 들이밀어진 관계가 아닌 소통과 상호작용이 자유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남성의 이야기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압과 폭력에서 떠올려지는 '강한 남성'의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좌절하고 연민에 빠져 눈물짓고 아내에게 매맞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성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들려주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남성과 여성의 관계 변화와 맥락적으로 연결되겠지요.
이제 남성은 과거와 같이 지배문화의 창설자 또는 전파자가 아닙니다. 가정과 사회 내에서 고뇌하고 분투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찾아 이곳저곳, 특히 여성 곁을 기웃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과거 한 동안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온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이분법적 태도의 맹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어느 한쪽을 행해 그의 입장에서 그의 위치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은 데 있지 않겠습니까? 적대적 시각으로는 애당초 관용과 수용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대립과 반복이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절반인 남성과 여성은 극단적으로 대치하며 서로를 향해 비수를 꽂게 되겠지요. 그것의 위험성을 본 것일 겁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향해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강요된 이미지가 아니라 오늘 사회적으로 드러난 본연의 이미지를 날것으로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습니다. 그럴 때 서로 새로운 관계설정이 자유로울 것입니다. 미래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 설정이라는 비전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만큼 설레는 게 또 있을까요? 이 책이 그 도정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책을 통해'현대 남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편의 이야기는 각각 집필자가 한 명의 중복도 없이 평범하거나 비범한 남성들이 썼습니다. 각각의 이야기 말미에 저자가 간단하게 코멘트를 달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약력이나 출처를 밝힌 정도이니 집필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 책과 쌍벽을 이루는 전작,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을 통해 세계 각계 각층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스티브 비덜프는 이미 수십 년 동안 가족문제와 부모 역할에 관한 문제를 다뤄온 심리학자이자 남성에 관한 총체적인 시각을 자랑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