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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장인이 존경 받는 이유는 한 분야에 전력투구한 데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다종다양한 물건이 튀어나오는 문명 속에서 마음에 둔 한가지만을 줄곧 좇는 일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는 것쯤 다들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몰두하다 자칫 실패하기라도 하면 지나치게 난감하고 두루 알아야 대접받는 시대상에 비춰 그 한 가지에 전심을 다하는 건 고루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사회적 시선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지요. 어느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난 한 사회적 인간이 아닐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내 생각만 고집할 수 없고, 내 주장만 옳다고 내세울 수 없는 이치이고 보면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은 ‘남 보기에’ 집착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시선이 두려운 거지요. 그래서 그런 저런 시선을 뿌리치고 자기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이가 있다면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주는 게 마땅한데, 주위와 섞이지 못한다고 손가락질부터 하는 게 세상 이치가 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어떤 이를 차별적으로 보는 한 우리 사회에서 장인을 키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게 될 것입니다.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그런 인정 속에서 경쟁하며 성장하는 사회를 전 이 책(〈기적의 사과〉)의 주인공을 통해 그려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1949년 아오모리 현 이와키마치에서 대대로 사과재배를 해온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고교졸업 후 취직한 직장을 1년 만에 때려치우고 귀향한 그는 1978년부터 사과재배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생명농법의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읽고 기존 농법에 대변화를 이룹니다. 농약과 비료 없이 오로지 자연의 힘에 의존하는 농법에 대한 이상을 농토에 쏟아 붓기 시작한 그는 9년의 혹독한 시련을 대가로 치릅니다. 그 후에 비로소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과일이 여기 있다! 혀끝을 유혹하는 강렬한 단맛과 신맛, ‘나무 열매’의 생생한 풍미와 신선한 과즙이 그대로 살아있는 야생의 맛이었다”는 찬사를 듣습니다.
그에게 닥친 고난과 그가 이룬 성취를 고작 예닐곱 줄에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삶은 행간이 더욱 웅변적입니다. 삶의 기록이 담지 못한 농밀한 감동의 세계를 그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농법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근․현대농법은 막대한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반자연적인 농법입니다. 오로지 생산물의 극대화만을 위해 기획된 근․현대농법으로는 필연적으로 결과한 지력의 쇠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고혈을 짜내듯 쇠락한 땅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피한방울마저 요구하는 형국으로까지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약품을 줘서 꺾꽂이 꽃을 조금 더 관상하려는 의지와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자연농법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때에 맞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고 뜨겁고 서늘한 햇빛을 고루 비추는 자연의 힘에 의존해 땅과 더불어 생명을 키워가는 농법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자연에 가한 위해를 거두는 농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기무라 아키노리와 같은 대가를 필요로 하는 농법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가 치른 9년여의 고통은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우리 모두에 대한 형벌로 봄이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자연에 기댈 수 있는 건 마찬가지로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 때문입니다. 좋은 것으로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을 기무라 아키노리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자연에서 일궈낸 값진 이름입니다. 그와 같은 이가 우리 땅에도 나와 주길 기대합니다. 농산물 뿐 아니라 공산물에서도 자연의 의미를 돌아보는 신문명인이 태동할 날을 고대하는 건 자연을 거부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맛의 세계는 기무라 아키노리 일궈낸 ‘전과 다른’ 사과 맛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보다 동질적이 될 때 거둘 것이 많다는 사실을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과가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