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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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경제학의 역사에 비할 때 일천하기 짝이 없는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의 한 분과로 보이는 명칭과 달리 경제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불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경제학에 도입하려는 행동경제학의 시도가 특정 제약조건 하에서 완벽한 이론적 틀을 유지하고 있는 일반경제학자의 눈에 비과학적으로 비친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합리적 경제인 가설'을 신봉하는 일반 경제학의 입장에서 인간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론이 엄밀성을 가지려면 현실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선택하여 그것을 도식화하는 과정이 선험적으로 이뤄져야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인간이 항상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 경제적 의사결정을 수행한다는 가설이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진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잠시 돌아보면 경제학을 배웠던 때에도 그 가설은 교과서의 제일 앞부분에 또렷이 적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당시엔 전혀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가설에 의혹을 가지게 된 데는 최근 몇 년 새 주목 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에 공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행태에 주목하고 인간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는 비합리적 요소를 통해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경제학의 한 분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한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 인간의 탐욕이 키워드로 등장하는 과정을 통해 행동경제학은 전과 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일반 경제학자들이 전과 달리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침묵하는 동안에도 행동경제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낸 데 따른 기대감이 반영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행동경제학 자체의 매력보다는 일반 경제학의 추락에서 반대급부적으로 얻은 이익(반사이익)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맥을 같이 합니다. 또한 행동경제학은 가변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심리적 요인을 분석도구로 삼은 것에 비과학적이라는 잣대를 대는 학계의 비우호적인 태도를 어떻게 불식시키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문제들이 행동경제학을 경제학의 주요 분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중심과제가 될 것입니다. 상황과 경과는 이쯤 해두고 최근 행동경제학이 어떤 주목을 받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행동경제학, 잠시 후 소개해드릴 〈36.5°C 인간의 경제학〉의 저자 이준구 교수에 따르면 행태경제학은 3,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적 지식을 원용하여 인간의 의사결정 행태가 반드시 합리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 일반 경제학의 맹점을 해결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학문입니다. 역사가 일천한 만큼 이론 정립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얘기도 되겠습니다. 이번 경제위기가 행동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행동경제학의 가정-이것을 가정이라고 하기엔 어패가 있습니다만-곧 인간이기 때문에 때때로, 또는 자주 비이성적 결정을 내리는 현실에 착안한 가정이 극히 정상적이라는 점을 우선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은 일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광범한 현실을 의도적으로 축소하여 현실 규정력을 높이려는 장치임에도 마치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 데는 그만큼 우리가 눈에 익숙한 것에 ‘블라인드 스팟‘(맹점)을 지닌 한계 내에 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명의 책을 낸 매들린 L. 반 헤케는 이성적 판단을 막는 블라인드 스팟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물을 '생소하게 보기' 또는 '비틀어보기', '낯설게 읽기' 등의 독창적 시각이 필요함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점에 이준구 교수도 마음이 끌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계경제가 기존 경제학적 지식으로는 해법을 찾기가 곤란한 측면이 심화되어 왔고, 그에 상응할 정도로 이간의 의사결정 또한 복잡다단하게 변화해온 현실을 인정하자는 뜻이 담겨있기도 할 것입니다.  


최근 유력한 경제학자들, 물론 대부분 행동경제학을 전공했거나 행동경제학에 경도된 학자들이지만 그들의 주장엔 빗장을 여는 면이 분명히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번역되어 나온〈야성적 충동〉과 〈버블 경제학〉 저자 로버트 쉴러 교수가 그 선두에 서 있습니다.  


그는 〈야성적 충동〉에서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중시한 행동경제학적 입장을 줄곧 견지하는 한편 탐욕이 경제위기의 주요인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원인=탐욕’이라는 도식은 자칫 경제위기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할 경제관료와 정부, 그리고 위기신호가 감지된 상황에서도 계속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도록 부추긴 경제학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뿐 아니라 실패한 정책을 계속적으로 집행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극히 위험한 결론이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위기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책임은 반드시 규명되어 하며 그 위에 책임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이 중요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투자 과정에서 수익보다는 위험에 주의할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일견 위험 분산의 효과가 높다고 인정받은 파생금융상품의 확대 보급으로 투자자들이 위험성에 대한 자각을 소홀히 한 데서 기인한다는 그의 지적은 새겨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투자론이 위험과 수익의 상관성(비례관계)을 필두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음은 잘 아실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금융위기는 투자론에서 말하는 ‘고위험→고수익’의 구조가 ‘위험분산→고수익’이라는 도식으로 변질 유포되면서 개인 및 정부를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에게 고수익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더 컸습니다.  


투자자들이 그런 점을 무시하고 너나 할 것 없이 투자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의사결정구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동일 맥락에서 일반경제학의 ‘합리적 판단 가설’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바로 그 부분을 메우고 있는 것이 행동경제학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그런 인간의 비합리성을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경제구조에 반영하고, 또한 경제구조 속에 내재된 비합리성을 어떻게 경제활력의 도구로 만들 것이냐의 문제를 과제로 안고 있습니다.  


로버트 쉴러 교수는 비합리성을 제거할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한 것을 마치 위험이 없는 것처럼 인식한 인간이성의 비합리적 측면을 보완할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특히 장래 위험에 주의를 적게 기울이는 시장의 행태에 일침을 가하려는 뜻에서 환영받을 만합니다. 아울러 그 같은 장치의 출력은 단속적인 자극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충분한 자극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경제위기가 휘몰아치기 수년 전부터 위험신호가 감지되었음에도 무시된 것은 그만큼 자극에 둔감한 인간의 행태적 특성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행동경제학은 경제위기를 진단하는 유효한 도구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반 경제학이 누리는 지위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예년과 달리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이준구 교수의 〈36.5°C 인간의 경제학〉이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가에서 교과서로 인정받은 〈미시경제학〉과 〈재정학〉을 저술한 지명도 높은 학자가 행동경제학 관련 서적을 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이준구 교수는 그 책에서 행동경제학의 특성에 매료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한편 그 분야의 연구를 계속할 뜻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명성 높은 일반 경제학자의 공개구혼과도 같은 〈36.5°C 인간의 경제학〉은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를 통해 대중적 지식인으로 거듭난 이 교수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자가 후자에 비해 조금 더 학문적이라는 특성이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그 두 저서가 대중이 읽기 쉽게 저술되었으며,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현실 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경제학을 다루는 학자가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는지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로부터 끊임없이 러브 콜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6.5°C 인간의 경제학〉은 행동경제학-저자는 행동경제학이 인간의 행태를 다루고 있는 데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보다 행태경제학으로 고쳐 부르고 있습니다.-이 일반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가설’이 풍기는 비인간성에 착안하여 행동경제학이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36.5°C의 체온을 지닌 인간 경제학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각장의 모두에 사례를 적은 후 그 사례를 행동경제학의 프리즘에 대고 풀이한 구성이 한층 읽기 수월하게 만들고 주고 있습니다.  


일본인(도모노 노리오)이 쓴 〈행동경제학〉이 다소 복잡하고 보다 학문적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36.5°C 인간의 경제학〉은 경제학을 배우지 않고도 행동경제학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두드러집니다. 아울러 같은 의미에서 빠르게 독파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경제학 전문 학자가 쓴 책이라 내용이 무겁지 않겠느냐는 판단은 극히 섣부르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를 읽은 독자라면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36.5°C 인간의 경제학〉이 행동경제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한층 증폭시킬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전문 경제학자가 다루는 행동경제학의 모습을 기대하며 읽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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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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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 빠담, 파리〉(양나연, 시아, 2009)  

웃찾사의 개그작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양나연의 32살 일탈기.  

29세에 생전 처음 파리를 여행한 그녀였다. 거기서 그녀는 해박한 지식과 다감한 정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가이드를 만난다. 그리고 방송작가 외에 가이드라는 직업도 괜찮아 본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됐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32살 생일에 집앞에서 강도를 당한 후 그녀는 인생과 직업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이것이 내가 정말 바라던 삶이었을까? 고심의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마침내 파리행을 결심한다. 가이드가 되기로 한 것. 

이 책은 그녀의 파리 가이드 좌충우돌기다. 방송작가답게 매끈한 글솜씨가 일품이다. 문어체 냄새가 말끔하게 사라진 지면은 절친한 친구에게 들려줄 따끈한 소식으로 가득 찼다. 그녀와 함께 비행기에 오르고 파리를 누비는 듯한 착각이 전혀 싫지 않다. 필시 그녀의 필력이 주도한 일이라 연신 감탄을 마다하지 않는다.  

즐겁게 잘 읽힌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당연. 툭 터놓고 후일담을 나눈 그녀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테크놀로지의 종말〉(마티아스 호르크스, 21세기북스, 2009)

대형서점 내 수개의 진열대 중에서 유독 그 진열대, 그리고 진열대 위에 올려진 수권의 책에 또한 유독 이 책이 눈에 띤 건 전적으로 이 책이 그 자리에 잘못 놓여진 때문이었다.  그 진열대는 잘 나가는 수필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낯선 사물과 낯선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란 걸 살면서 배웠다. 그런 낯섦이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낯섦은 무료한 일상을 달래는 기폭제로는 그만이다. 더욱이 그것이 전환기를 마련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한 권의 책과의 만남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보편적으로 책은 저자와의 만남이라고 하지 않던가. 

저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유럽 최고의 미래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의 메가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이 책에 끌린 건 그와 같은 저자의 쟁쟁한 약력이 아니었다. 아직 저자가 쓴 말인지 출판사가 판매전략으로 내세운 말인지 감을 잡지 못하겠지만 책표지에 실린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었다. 

"인간은 뚝똑한 기계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제껏 그려왔던 과학기술의 찬란한 미래는 어디 있는가? 인간은 혁명적 미래가 아닌 편안한 미래를 원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의 "편안한 미래를 원한다!"는 말이 두 눈에 꽂혔다. 주변 상황이 송두리째 바뀌는 전면적인 변화보다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하는 입장이야 과거 세대나 지금세대나 과히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극심한 변화는 고통스러운 적응과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것을 배운 탓도 있을 게다. 

테크놀로지의 세계가 인간이 만들어갈 세계임을 새삼 일깨운다면 그와 같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도외시 할 수 없을 텐데도 테크놀러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혁명으로 인지되어 있다. 각종 매체가 다루는 바와 같이 테크놀러지가 펼칠 세상이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세상이라는 이미지와 조응하는 한 그것은 혁명적인 변화와 대구를 이루며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는 불안감을 시중에 유포하고 다니게 된다. 인간 소외의, 인간이 주도권을 잃은, 인간이 배제된 미래가 암울하게 그려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전두엽을 강하게 사로잡은 잠재의식적 이미지의 위력이 실로 놀랍다. 

이 책은 미래의 테크놀러지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찬찬히 살피고 있다. 인간을 대체할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테크놀로지의 꿈이 어디 과학자만의 소망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과학 관련 서적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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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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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러시아 커피를 음차한 말이다. 얼음 궁전에 사는 대제의 근엄한 얼굴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가 초반 배경을 이룬다. 광대한 러시아 숲에 둥지를 튼 주인공. 무언가 걸맞은 일을 성취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주인공은 주인 있는 숲을 팔아치우는 사기단의 일원이다. 이미 낙관위조로 명성을 올린 그녀였다. 어느 날 같은 일을 하는 사기꾼과 운명적으로 만난 주인공은 그와 함께 조선 황실로 흘러든다. 당시 조선은 고종 치세였다. 고종은 명성황후의 비통한 죽음을 커피로 달래고 있었다. 평소 고종은 커피를 우유와 설탕을 듬뿍 타서 먹곤 했었다. 명성황후가 죽기 전까지는.




자기 대에 외세의 침탈을 봐야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한의 세월에 쓰디쓴 커피가 제격이었다. 익히 아버지를 통해 러시아 커피의 단맛과 쓴맛, 향취와 아취를 모두 경험한 그녀가 고종의 커피 수발을 하게 된 것이 당연했다. 조선시대판 바리스타.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각축장이 된 대한제국의 운명은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느 시대고 한나라의 왕이 타국의 공관으로 피신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것은 국권 침탈의 예정된 수순 위에 놓인 수치스런 흔적이었다. 고종은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러시아 벌판에 벌거벗은 채 한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홀로 선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통 자체였을 세월은 차마 죽지 못해 사는 세월과 다르지 않았다. 창백하다 못해 검게 변한 얼굴은 커피색과 같았고 커피의 쓴맛은 전부 헐은 위장과 닮았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은 커피원두를 중앙으로 가른 골과 같았다. 뜨거운 찻잔 위로 아지랑이 피듯 솟는 김은 곧 사라질 터였다. 고종은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운명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그런 고종의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게 들릴 리 만무했다.




불과 100년 전의 일임에도 우리에게 대한제국은 아득하게 기억된다. 대한제국은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낯설다. 왕을 존경의 대상으로 추억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은 일제가 강제한 현실이기에 앞서 대한제국의 총체적 무능이 결과한 그 시대의 미래였다.




최근 고종의 국권회복을 향한 줄기찬 노력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지만 그것이 당시 국가의 최고수장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감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커피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3국이 옥죄어오는 상황에서 고종은 커피가 아니라 칼을 들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이래저래 이 소설을 대하는 심경이 날카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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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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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작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는 아내가 그의 저작을 연달아 구입해 읽는 걸 본 후였고, 다음은 잘 나가는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담아 글을 쓰는지 알아볼 요량으로 구입한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마지막은 모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를 잠시 본 것이 전부인데도 환하게 웃는 그의 인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던 데 원인이 있었다.




아내가 그의 3부작을 읽을 때만해도 그는 대단히 이름 높은 작가였다. 남다른 이력에 더해 여성 독자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아내의 집중력은 여느 때와 달랐다. 두 번째, 책에 비친 그는 한 문장을 내놓기 위해 수십 번의 퇴고를 마다하지 않는 엄밀함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 난 그가 낸 3부작이 ‘시중에 널린 여행기 중 하나’라는 인식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지 않지만 당시 여행기는 출간과 퇴장 사이의 주기가 극히 짧았다. 여행기는 날마다 새로운 장정으로 모습을 바꿔갔지만 시장에서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이목을 사로잡는 사진에 적당히 설명을 붙인 신변잡기류의 여행기 탓이 컸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런 이유로 난 그때 이미 수십 쇄를 찍고 있던 그의 여행기를 신뢰할 수 없었다.




세 번째 만남은 전혀 뜻밖이었다.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그가 출연한 모 프로그램을 잠시 본 것이 전부였다. 그가 질문자와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에 오래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10분이 채 되지 않은 시청시간 동안 그토록 속을 온통 드러내놓고 웃는 이를 오랜만에 보았다는 인상을 지배적으로 가졌던 것 같다. 이후 난 전적으로 그에 관한 한 가릴 게 없게 됐다.




한 순간의 인상으로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하는 말은 너스레로 들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런 ‘순식간의 꽂힘’ 같은 게 아니다. 그의 책을 아내가 독파했다는 어느 한 때의 사실이 퇴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엄밀함과 결합되고 그것이 그의 삶에 녹아들어 성품을 이루고 있다는 확인의 과정이 구슬 꿰듯 자연스럽게 꿰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여느 작가와 달리 그와의 사이엔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점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친밀감의 도가 더하리라는 짐작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책의 머리말에 쓴 것처럼 이 책, 〈그건, 사랑이었네〉가 그의 본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는 책이라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공감이 그를 본 티브이 장면과 중첩돼 더 깊은 공감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더군다나 그는 처음 장부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말의 힘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주는 선한 결과를 줄곧 묵상해온 내게 적잖은 도전을 줬다.




이 책은 솔직한 그의 성격만큼이나 솔직하고 담백하다. 작심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 말은 거침이 없고, 어느 한구석 그늘진 데가 없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 또는 기질이 있을 때 숨기고 싶은 건 일반인에게 자연스런 반응일 텐데, 그에게선 그런 구석이 애초 없다. 명성으로 자신을 가리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무심하게도 솔직하다.




여느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하면 ‘왕따’가 되기 쉽다. 그가 너무 솔직해서 나와 다르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그 또한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그와 ‘왕따’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고한 척 자신을 포장하는 일에 집착하는 여느 유명인과 다른 향취, 바로 그런 향취가 그를 친구와 누나, 언니로 호칭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처럼 마냥 기대고 싶고, 언니처럼 속 깊은 얘기 다 들어줄 것 같고, 거침없이 욕을 뱉어도 다 받아 줄 것 같은 친구의 얼굴을 그가 갖고 있는 것이다.




방벽에 편안히 기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 이 책을 읽어라. 따뜻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면 이 책을 읽어라. 고단한 삶에 너무 지쳤다고 생각나거든 이 책을 보라. 




● 3부작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4〉,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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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애 사계절 1318 문고 46
김종광 지음 / 사계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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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책이었다. 두 군 데 서점을 더 뒤져서야 비로소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주목받고 있는 작가의 소설이라 더욱 부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 또한 자신이 성석제와 닮은 소설쓰기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히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어귀에 이제 막 당도한 듯 이제 곧 만날 식구들 생각에 옷매무새를 고치고 선물 꾸러미를 다 잡는 모습이 영낙 샌님의 그것이다. 풀어낼 이야야기는 많고 들려 줄 이야기 또한 산더미 같은 그가 어떤 형식으로 그것들을 쏟아낼지 자못 궁금하다. 실타래가 풀여나오듯이 그의 입담이 독자들 곁에 하나 둘씩 쌓여 그가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단 형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이미 그는 1998년 계간 ‘문학동네’ 문예공모에 당선된 이래,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2000) ‘모내기 블루스’(2002) ‘낙서문학사’(2006) ‘처음 연애’(2008), 장편소설 ‘율려낙원국’(2007) ‘첫경험’(2008) 등을 낸 중견 작가다. 신동엽창작상과 제비꽃서민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2008년에 낸 소설 한 권으로 그의 전부를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작 모두를 읽어야 그가 어떤 작가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 단계에서 이 소설집, 처음연애〉가 그가 보여 줄 다채로운 형식의 일부를 내장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웃음과 페이소스를 가미한 단편은 시종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격정적인 해학이라든지 반전이 번뜩이는 페이소스에 이르지 못한채 서둘러 끝맺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것이 그런 것들과 다른 무엇이라면 기대해 볼만하다. 우린 성석제표와 또 다른 김종광표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만이 지닌 독특함, 때론 이국적이면서 때론 극히 질박한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 주길 바란다. 그런 면에서 처음연애〉는 후자에 보다 가깝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을 뒷동산의 풍경을 그림처럼 담아내고, 애틋하기 그지 없는 첫사랑의 절망과 황홀경을 가슴 저리게 노래한다. 이쯤에서 간파했듯이 전편을 흐르는 주제는 젊은 남녀간의 지순한 사랑이자 치기어린 연애감이다.

 

대중적인 주제인 사랑을 노래한 시나 소설은 많다. 스펙터클한 영상을 선호하는 취향에 종래 발맞추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모두 우연과 필연이 지나치게 얽히고설켜 도무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최근 경향과 추세에서 보면 이 작품은 지나칠 정도로 지고지순하고 청순하다. 지고지순과 청순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요즘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랑을 찾아 볼 수 없는 게 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 사랑이 있다고 해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 또한 많지 않다는 데서 그렇다. 현실에서 보면 그와 같은 지고지순과 청순은 제대로 대접받기가 어렵다. 현실은 보다 계산적이고 보다 관능적이며 보다 직접적이다. 

 

하지만 고민은 다른 데 있다. 그런 사랑을 완전히 배제한 채 현실에 안주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만큼 이율배반적이다. 몸은 현실에 뿌리박고 있되 마음은 순수를 향한 갈망을 여전히 멈추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사랑은 일종의 로망이다. 가질 수 없다 해서 포기하고 마는 꿈이 아니라 언제든 현실로 화할 것을 믿는 기대, 우린 그것을 로망이라고 부른다. 물론 로망은 안개와 같아서 일순간 부서질 수도 있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로망이 얼마나 가슴을 설레이게 하며 기분을 한껏 고양시키던가.

 

그런 점에서 작가의 사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려는 듯보인다. 소리없이 가슴을 무너뜨리며 떨어져 가는 사랑이 그렇고, 맞아죽어가는 중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응시하며 씨익 웃는 사랑은 현실과 비현실을 사이에 두고 어느 한쪽에 전폭적으로 기대지 못한 행보를 계속한다. 서울로 떠난 '천재'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사랑은 또 어떤가? 하나같이 경계에서 흔들거린다. 그런 몰감각이 가슴을 저리게 하고 잔잔했던 심중을 뒤흔든다. 과거 어느 시점에 나도 그와 같은 사랑을 하지 않았던가 하는 공감이 들풀처럼 다가오는 걸 막을 수 없는 심리상태에 이르러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주변 인물과 상황은 달라도 '농민'과 '순영'과 '무현'에게서 자신을 투사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러웠는지 모른다.

 

작가의 무대 현실은 요즘의 정서와 비교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신비화하지 않음으로써 현실감을 갖추고 있다. 비현실이 신비와 결합할 때 비현실은 더이상 로망이 되지 못한다. 기대감을 지닌 비현실,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비현실이 로망으로 기억 속에 남는 순간 그 비현실이 우리가 살아낸 과거의 어느 한 때와 가볍게 조우하는 법이다. 동시에 독자는 그 비현실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독자가 비현실을 현심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흡인하는 또 다른 장치는 인물들을 시대 배경 위에 올려 놓은 데 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된 때와 전태일이 몸을 불사른지 얼마 되지 않은 때, 태풍 셀마가 거침없이 이 땅을 유린하던 때, 88년 서울 올림픽 때 모두 겪었거나 역사서에서 배운 시대배경들이다. 시대배경 위에서 그 시대의 환경을 관통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구성력에 힘입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독자의 그것과 혼동될 정도로 감정이입의 폭과 깊이가 상당하다. 집중호우가 할퀴고 간 마을의 처참한 광경을 초등학교 교실에 모인 마을 사람들의 표정과 오가는 말에 모두 담아낼 정도로('집중호우') 작가의 정경묘사와 심리묘사는 탁월했다. 

 

씨줄과 날줄이 견고하게 틀을 갖춘 스토리 얼개와 그 안에 담아내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밀물과 썰물이 정교하게 오가는 해안을 닮은 이 번 소설집이 또 다른 진화를 향한 힘찬 일보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익히 그는 이후 작으로 장편, 〈첫경험〉을 내놓은 상태다. 걸출한 작가의 출현을 기대하는 독자의 요구에 그가 얼마만큼 부응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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