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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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작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는 아내가 그의 저작을 연달아 구입해 읽는 걸 본 후였고, 다음은 잘 나가는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담아 글을 쓰는지 알아볼 요량으로 구입한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마지막은 모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를 잠시 본 것이 전부인데도 환하게 웃는 그의 인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던 데 원인이 있었다.




아내가 그의 3부작을 읽을 때만해도 그는 대단히 이름 높은 작가였다. 남다른 이력에 더해 여성 독자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아내의 집중력은 여느 때와 달랐다. 두 번째, 책에 비친 그는 한 문장을 내놓기 위해 수십 번의 퇴고를 마다하지 않는 엄밀함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 난 그가 낸 3부작이 ‘시중에 널린 여행기 중 하나’라는 인식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지 않지만 당시 여행기는 출간과 퇴장 사이의 주기가 극히 짧았다. 여행기는 날마다 새로운 장정으로 모습을 바꿔갔지만 시장에서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이목을 사로잡는 사진에 적당히 설명을 붙인 신변잡기류의 여행기 탓이 컸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런 이유로 난 그때 이미 수십 쇄를 찍고 있던 그의 여행기를 신뢰할 수 없었다.




세 번째 만남은 전혀 뜻밖이었다.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그가 출연한 모 프로그램을 잠시 본 것이 전부였다. 그가 질문자와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에 오래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10분이 채 되지 않은 시청시간 동안 그토록 속을 온통 드러내놓고 웃는 이를 오랜만에 보았다는 인상을 지배적으로 가졌던 것 같다. 이후 난 전적으로 그에 관한 한 가릴 게 없게 됐다.




한 순간의 인상으로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하는 말은 너스레로 들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런 ‘순식간의 꽂힘’ 같은 게 아니다. 그의 책을 아내가 독파했다는 어느 한 때의 사실이 퇴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엄밀함과 결합되고 그것이 그의 삶에 녹아들어 성품을 이루고 있다는 확인의 과정이 구슬 꿰듯 자연스럽게 꿰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여느 작가와 달리 그와의 사이엔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점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친밀감의 도가 더하리라는 짐작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책의 머리말에 쓴 것처럼 이 책, 〈그건, 사랑이었네〉가 그의 본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는 책이라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공감이 그를 본 티브이 장면과 중첩돼 더 깊은 공감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더군다나 그는 처음 장부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말의 힘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주는 선한 결과를 줄곧 묵상해온 내게 적잖은 도전을 줬다.




이 책은 솔직한 그의 성격만큼이나 솔직하고 담백하다. 작심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 말은 거침이 없고, 어느 한구석 그늘진 데가 없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 또는 기질이 있을 때 숨기고 싶은 건 일반인에게 자연스런 반응일 텐데, 그에게선 그런 구석이 애초 없다. 명성으로 자신을 가리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무심하게도 솔직하다.




여느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하면 ‘왕따’가 되기 쉽다. 그가 너무 솔직해서 나와 다르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그 또한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그와 ‘왕따’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고한 척 자신을 포장하는 일에 집착하는 여느 유명인과 다른 향취, 바로 그런 향취가 그를 친구와 누나, 언니로 호칭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처럼 마냥 기대고 싶고, 언니처럼 속 깊은 얘기 다 들어줄 것 같고, 거침없이 욕을 뱉어도 다 받아 줄 것 같은 친구의 얼굴을 그가 갖고 있는 것이다.




방벽에 편안히 기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 이 책을 읽어라. 따뜻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면 이 책을 읽어라. 고단한 삶에 너무 지쳤다고 생각나거든 이 책을 보라. 




● 3부작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4〉,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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