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연애 사계절 1318 문고 46
김종광 지음 / 사계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의외로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책이었다. 두 군 데 서점을 더 뒤져서야 비로소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주목받고 있는 작가의 소설이라 더욱 부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 또한 자신이 성석제와 닮은 소설쓰기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히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어귀에 이제 막 당도한 듯 이제 곧 만날 식구들 생각에 옷매무새를 고치고 선물 꾸러미를 다 잡는 모습이 영낙 샌님의 그것이다. 풀어낼 이야야기는 많고 들려 줄 이야기 또한 산더미 같은 그가 어떤 형식으로 그것들을 쏟아낼지 자못 궁금하다. 실타래가 풀여나오듯이 그의 입담이 독자들 곁에 하나 둘씩 쌓여 그가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단 형식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이미 그는 1998년 계간 ‘문학동네’ 문예공모에 당선된 이래,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2000) ‘모내기 블루스’(2002) ‘낙서문학사’(2006) ‘처음 연애’(2008), 장편소설 ‘율려낙원국’(2007) ‘첫경험’(2008) 등을 낸 중견 작가다. 신동엽창작상과 제비꽃서민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2008년에 낸 소설 한 권으로 그의 전부를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작 모두를 읽어야 그가 어떤 작가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 단계에서 이 소설집, 처음연애〉가 그가 보여 줄 다채로운 형식의 일부를 내장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웃음과 페이소스를 가미한 단편은 시종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격정적인 해학이라든지 반전이 번뜩이는 페이소스에 이르지 못한채 서둘러 끝맺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것이 그런 것들과 다른 무엇이라면 기대해 볼만하다. 우린 성석제표와 또 다른 김종광표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만이 지닌 독특함, 때론 이국적이면서 때론 극히 질박한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 주길 바란다. 그런 면에서 처음연애〉는 후자에 보다 가깝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을 뒷동산의 풍경을 그림처럼 담아내고, 애틋하기 그지 없는 첫사랑의 절망과 황홀경을 가슴 저리게 노래한다. 이쯤에서 간파했듯이 전편을 흐르는 주제는 젊은 남녀간의 지순한 사랑이자 치기어린 연애감이다.

 

대중적인 주제인 사랑을 노래한 시나 소설은 많다. 스펙터클한 영상을 선호하는 취향에 종래 발맞추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모두 우연과 필연이 지나치게 얽히고설켜 도무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최근 경향과 추세에서 보면 이 작품은 지나칠 정도로 지고지순하고 청순하다. 지고지순과 청순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요즘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랑을 찾아 볼 수 없는 게 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 사랑이 있다고 해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 또한 많지 않다는 데서 그렇다. 현실에서 보면 그와 같은 지고지순과 청순은 제대로 대접받기가 어렵다. 현실은 보다 계산적이고 보다 관능적이며 보다 직접적이다. 

 

하지만 고민은 다른 데 있다. 그런 사랑을 완전히 배제한 채 현실에 안주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만큼 이율배반적이다. 몸은 현실에 뿌리박고 있되 마음은 순수를 향한 갈망을 여전히 멈추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사랑은 일종의 로망이다. 가질 수 없다 해서 포기하고 마는 꿈이 아니라 언제든 현실로 화할 것을 믿는 기대, 우린 그것을 로망이라고 부른다. 물론 로망은 안개와 같아서 일순간 부서질 수도 있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로망이 얼마나 가슴을 설레이게 하며 기분을 한껏 고양시키던가.

 

그런 점에서 작가의 사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려는 듯보인다. 소리없이 가슴을 무너뜨리며 떨어져 가는 사랑이 그렇고, 맞아죽어가는 중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응시하며 씨익 웃는 사랑은 현실과 비현실을 사이에 두고 어느 한쪽에 전폭적으로 기대지 못한 행보를 계속한다. 서울로 떠난 '천재'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사랑은 또 어떤가? 하나같이 경계에서 흔들거린다. 그런 몰감각이 가슴을 저리게 하고 잔잔했던 심중을 뒤흔든다. 과거 어느 시점에 나도 그와 같은 사랑을 하지 않았던가 하는 공감이 들풀처럼 다가오는 걸 막을 수 없는 심리상태에 이르러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주변 인물과 상황은 달라도 '농민'과 '순영'과 '무현'에게서 자신을 투사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러웠는지 모른다.

 

작가의 무대 현실은 요즘의 정서와 비교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신비화하지 않음으로써 현실감을 갖추고 있다. 비현실이 신비와 결합할 때 비현실은 더이상 로망이 되지 못한다. 기대감을 지닌 비현실,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비현실이 로망으로 기억 속에 남는 순간 그 비현실이 우리가 살아낸 과거의 어느 한 때와 가볍게 조우하는 법이다. 동시에 독자는 그 비현실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독자가 비현실을 현심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흡인하는 또 다른 장치는 인물들을 시대 배경 위에 올려 놓은 데 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된 때와 전태일이 몸을 불사른지 얼마 되지 않은 때, 태풍 셀마가 거침없이 이 땅을 유린하던 때, 88년 서울 올림픽 때 모두 겪었거나 역사서에서 배운 시대배경들이다. 시대배경 위에서 그 시대의 환경을 관통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구성력에 힘입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독자의 그것과 혼동될 정도로 감정이입의 폭과 깊이가 상당하다. 집중호우가 할퀴고 간 마을의 처참한 광경을 초등학교 교실에 모인 마을 사람들의 표정과 오가는 말에 모두 담아낼 정도로('집중호우') 작가의 정경묘사와 심리묘사는 탁월했다. 

 

씨줄과 날줄이 견고하게 틀을 갖춘 스토리 얼개와 그 안에 담아내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밀물과 썰물이 정교하게 오가는 해안을 닮은 이 번 소설집이 또 다른 진화를 향한 힘찬 일보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익히 그는 이후 작으로 장편, 〈첫경험〉을 내놓은 상태다. 걸출한 작가의 출현을 기대하는 독자의 요구에 그가 얼마만큼 부응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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