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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해괴한 녀석이 나타났다!! 틈만 나면 교회에서 제 선생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녀석, 아비 키 작다고 놀리는 녀석에게 '선빵'부터 날리고 보는 손 빠른 녀석!!! 녀석에 대한 시중의 평가, '종잡을 수 없는 놈.'
가족은? 술집에서 작은 키에 중절모를 쓴 채 손님과 춤을 추던 아비는 여자가 엉덩이를 툭툭 친 대가(?)로 돈을 받았다. 나무랄 데 없는 춤이라도 작은 키가 핸디캡이었다. 허우대가 멀쩡한 삼촌은 아비에게 배워 제법 화려한 춤 솜씨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어버버' 투의 말 본새로 손님 '필'을 확 깨게 하는 포스만 없었다면 그 둘의 콤비는 손님을 배꼽 잡게 하는 데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데까지 두루 먹혔을 것이다.
공부하곤 담쌓은 아들, 완득이와 좀 다른 아버지, 강렬한 말 본새를 자랑하는 삼촌 등 주인공 가족의 캐릭터는 평범 그 이상이다. 이 책은 이들 가족의 '일상 다반사'다. 중심구도는 완득이의 생활에 맞춰져 있지만 완득이와 얽힌 다양한 군상들의 독특한 캐릭터가 깨소금냄새를 솔솔 풍기며 독자의 코를 비롯한 감각 전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제 수십 년은 족히 지났을 어린 시절, 야트막한 산 밑 키 작은 동네에 수십 채가 모여 밥짓는 냄새를 담장 안팎으로 주고받으며 정겹게 살았다. 찬바람에 콧물 날리는 것도 잊은 채 낮과 밤을 구별 못하고 사는 아이들의 소리가 골목마다 넘쳐흐르고 멋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채를 움찔하게 만든 제법 큰 개들의 짖는 소리가 정겨웠던 그곳. 철마다 떡볶이, 국화빵, 호떡 냄새가 가실 날 없던 그 동네에도 완득이가 있었을 터. 오늘 이 소설의 주인공, 완득이는 그 시절 아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좀 유별난 아이이긴 해도 악의 없는 말투와 상대를 봐가며 고개를 숙이고 쳐드는 품새며 욱하는 성질머리 등 꼬집어보면 누구에게 있는 성격이 완득에겐 조금 도드라져 보일 뿐 그의 일상은 독자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드리워진 시절의 자신 또는 가까운 친구, 어디선가 들어본 어떤 아이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일상을 파고드는 완득이의 일탈이 눈살 찌푸리지 않게 그려진 이유는 그런 탄탄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울타리라고 불러도 좋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순응과 일탈 사이를 오가는 요즘 아이들의 일상이 그와 같지 않을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을 지나온 중년의 삶이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아이의 순응과 일탈이 가족과 학교 사이에 그 경계를 두고 있다면 중년의 그 경계가 직장과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이라는 형식만 다를 뿐 두르고 있는 울타리라는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이 소설이 더욱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추억되는지 모를 일이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들어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여타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은 팩트가 살아있는 허구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내장하고 그것을 누구에게나 있을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동시킴으로써 독자가 자신을 주인공과 동시적인 존재 또는 주인공의 눈을 가진 가상의 존재로 설정하는 데 거리낌없게 만들어주고 있다. 독자의 강박적이지 않은 위치 설정,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발적인 감정이입의 소설독법은 대상에 대한 몰입을 극한으로 몰고 가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과 내뱉는 말투에 '키득키득', '컥컥' 하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동반케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따라서 옆에 누가 있는지 우선 살필 일이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직장 상사거나 나이 많은 사람이거나 아주 어린아이라면 잠시 책을 덮고 속으로 음미하길 권한다.
이쯤에서 담임 똥주 이야기를 해야겠다. 완득이는 어찌됐건 자칭 조폭 선생인 똥주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때만 되면 교회에 가서 똥주 죽기를 기도했던 완득이조차 똥주의 사랑스런(?) 행동에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 것. 사랑스런 행동이라고 해야 그 또한 좌충우돌이라 '같은 과' 완득이에게도 썩 마음 드는 구석은 아니었다.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완득이 아버지가 재개발 물결에 나가던 술집에서 본의 아니게 쫓겨나 전국 행상을 할 요량으로 똥차를 한 대 샀다. 어느 날 그렇지 않아도 밤마다 똥주가 옥상에서 완득이를 소리쳐 부르는 통에 성질이 날대로 난 앞집아저씨가 차체에 '씨불놈'이라 써놓았고 그걸 본 완득이가 아저씨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경찰서에 끌려간 장본인들 사이에서 똥주가 멋지게(?) 중재를 섰다. 하여 서로 애초 없던 일이 됐다. 그 때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었던 걸까? 베트남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도 똥주. 심부름을 시키면서 굳이 가는 곳에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뱉은 똥주를 용서한 걸 보면 완득이와 똥주의 밀월 관계가 바야흐로 시작되려는지도.....
이 외에도 독특한 캐럭터를 지닌 인물들이 많다. '밤마다 쌍욕을 해대며 똥주와 싸우는 옆집 아저씨', '잊을만하면 등장해서 완득이를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핫산', '똘아이계의 본좌 혁주', '전교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이면서도 완득이에게 관심을 갖는 윤하' 등등 그들이 발산하는 매력이 소설을 더욱 소설답게 한다. 그만큼 작가가 인물들을 잘 살렸다는 의미겠다. 더구나 이들은 중심인물이 아니면서 좀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로 각인된다. 단역들이 대부분 주인공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지원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것과 달리 소설 속 단역들은 하나같이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를 갖고 근거리에서 중심인물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스토리를 전체적으로 밀도 있게 잡아주고 있다. 주인공의 원심력과 단역들의 구심력이 적절한 조화 속에 균형을 이루는 소설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작가의 인물론을 들어보자. "완득이와 똥주는 남 보기에는 싸움도 잘 하고 자신감이 충만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자신감은 불완전한 거예요. 누군가 정곡을 콕 찌르면 곧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자신감인데, 이 자신감 마저 없으면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어 이를 앙다물고 살았던 거죠. 완득이와 똥주는 그림퍼즐 같은 관계예요. 나한테 없지만, 너한테 있는 조각이 맞물려 전체 그림이 완성되니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만들어낸 인물들입니다." "......간혹 독특한 행동이나 말투를 가진 분들을 보면 메모를 해둡니다. 간단한 그림과 함께 그들이 입었던 옷이나 들고 있는 물건 같은 것들을 기록해요. 이건 그저 제 습관이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실제의 인물 두 명의 캐릭터를 섞어 작품 속에서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내기도 하지요."(이상 큰따옴표 부분은 창비의 작가 김려령 인터뷰, 〈반짝반짝 빛나는 열정의 청춘을 위하여〉에서 인용)
생활주변에서 손쉽게 만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를 놓치지 않고 꼼꼼히 기록한 작가의 집요한 열정이 소설 속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쓰였다는 대목에 이르러 감탄했다. 잠시 눈을 돌리면 지금이라도 어느 곳에서나 마주칠 법한 인물들이라는 공감을 이 소설이 불러내는 이유가 사람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말이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 따뜻하고 마음 흥겹게 읽히는 소설의 탄생을 축하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파트가 자기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관찰한다는 설정'이 중심 테마로 그려질 그의 차기작을 서둘러 기대한다. 입심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의 등장은 설레기 마련이다. 대표적 이야기꾼인 성석제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에 김려령이라는 준비된 작가를 만나고 보니 가슴이 한참을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