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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기준에 관한 모호성을 묘파한 책으로 단연 〈문명과 야만〉이 돋보인다. 문명 특유의 의식 또는 행동양식이 전혀 문명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인식적 전환을 이 책만큼 재간 넘치게 그린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책은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의식, 생활양식, 준거)이 궁극적으로 문명과 야만의 구별 모호성 또는 구분의 불필요를 입증하는 근거가 됨을 묘파했다. 예를 들어 문명국에 고유한 행동양식을 야만국이 보인다면, 또한 야만적이라고 비난했던 특정 행동양식을 문명국에서 발견한다면 어떨까?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그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이와 논점은 다소 다르지만 이 책, 〈문명의 관객〉 또한 뒤틀린 시각들을 교정하고 있다는 면에서 앞서 언급한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특히 통계 수치의 인용과 전문가 집단의 대외 자료를 근거로 제시된 각종 위험정보가 실은 관련 기업을 살찌우는 데 사용되고 있음을 공박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과거 황우석 파동을 겪은 우리 사회를 향해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특정 사안과 사건을 맹신하거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대포장 하는 한 사안과 사건에 내재된 위험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사회의 몫으로 남는다. 열광이 성찰을 동반하지 않을 때 과열이 끓어오르고 그것이 오히려 과학을 선도하는 가치 전도 현상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아진다.
황우석 파동은 그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검증이 필요한 각종 조치들은 생략되었고, 위험하게도 그런 사전 조치들을 요구한 사람들을 마치 민족 반역자처럼 취급하는 분위기가 사회 안에 팽배했다. 탈이성과 비이성이 주도한 사회는 세계 최초, 최고라는 찬사에 열광한 나머지 그 열광 뒤에 감춰져 있을지 모를 각종 위험성을 시야에서 간단히 치워버림으로써 다가올 위험을 예고했다. 실험 난자의 추출 문제만 보더라도 난자를 제공해야하는 여성의 건강과 존엄성 문제는 국가 위상을 절대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맹신 앞에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이 점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다.
황우석 신드롬에 빠진 우리 사회의 집단적 광기를 강도 높게 비판한 저자의 혜안이 〈문명의 관객〉 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글은 보다 유연해진 반면 호소력은 더욱 높아졌다. 편지글 형식의 실험도 돋보인다. 친구의 편지를 대하듯 가볍게 읽히는 것도 장점. 저자가 주장하려는 바가 저자의 폭넓은 학식과 통찰에 힘입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한 조류독감과 기름유출사고를 저자가 비켜갈리 없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에 만연한 공포와 달리 지난 10년간 일반 독감에 의한 사망자는 500만 명인 반면 조류독감으로는 246명이 목숨을 잃었단다. 조류독감 예방약을 발매한 제약회사는 2007년 한해만 21억 달러를 벌어들었는데 그 약의 약효는 검증되지 않았다. 조류에 전격 노출되었을 축산업자나 살처분에 동원된 사람들 중 누구도 조류독감에 희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이르면 더욱 기막히다. 공포의 생산과 확대재생산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기름유출사고의 경우엔 보다 심각하다. 기름제거작업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점은 처음부터 알려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방제장비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름제거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작업은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기름 방제 작업이 '독성 물질'을 다루는 일이라는 점은 나중에서야 알려졌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위험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셈이었다.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데 정서적으로 호소하거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효과적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동원되는 사람들의 인권과 건강의 심각한 침해 위험성을 원천적으로 무시한다는 데 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을 공포감을 조성해 팔거나 작업의 위험성 등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보 취득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한 채 국민정서에 일방적으로 기댄 기름유출사고의 뒤처리방식은 두고두고 곱씹을 구석이 많다.
이 책의 미덕이 그런 것 아닐까? 현상 뒤에 가려진 진실에 눈뜨도록 고무하는 그런 것 말이다. 진실이 가려진 곳엔 허위와 위선이 똬리를 튼다. 그리고 그것들이 판단을 그르치게 하고 결정적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악순환을 재생산한다. 그 고리를 끊어내려면 현상에 대한 성급한 단정을 벗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통칭해서 사회적 공기라 할 수 있는 언론과 정부, 전문가 집단이 특정 목적을 위해 바람직한 부분만 부각시킬 일이 아니라 부정적인 부분에 관한 정보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그 바탕 위에서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와 토대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황우석 파동과 조류독감의 공포,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비적절한 대응 등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 어느 때까지 우리 사회에서 인재가 반복되는 것을 참고 봐야 하는가. 성급한 판단과 비이성적 열광을 벗고 냉철한 비판의 잣대와 성찰의 도구를 서둘러 찾아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