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꿈꾸지 않는 인간은 땀 흘리지 않는 사람과 같다. 그런 사람은 많은 독을 쌓을 뿐이다." 트루만 카포우트가 한 말이다. 사람은 땀을 통해 몸 안의 독성물질을 배출함으로써 정상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배출되지 않고 몸 안에 축적된 독성물질은 다양한 형태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이 땀을 흘리지 않아 생긴 결과와 다를 바 없다는 그의 말이 실감나게 들려온다.

 

'꿈과 희망 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해 길 떠난 두 사람의 여정을 방해꾼들의 공작과 엮어 긴박감 넘치게 그려냄으로써 잊혀진 꿈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고 있는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은 단편집 〈생리통〉에서 세밀한 문체와 디테일한 묘사로 존재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평가받은 이세벽의 신작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정의와 자유를 향한 꿈을 물질문명의 혜택과 맞바꾼 채 별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의식 외벽에 깊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결국 선택은 현대인들의 몫이다.

 

철수와 부장판사가 찾아 나선 꿈과 희망발전소는 그들이 가동한다해도 사람들이 꿈을 깨우지 않으면 소용없는 한계 내에 존재한다. 그것은 꿈을 찾아 떠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불안요소일 뿐 아니라 예측 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다. "꿈과 희망의 발전소를 돌리면 저절로 불이 들어온다고 그랬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겠구나." "불을 켜고 안 켜고는 사람들 마음에 달려 있어요. 하지만 먼저 꿈과 희망의 기운을 사람들에게 보내줘야 해요." "안 켜면 헛수고만 하는 거 아니냐." "켜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점차 늘어날 테고."

 

그리고 그것은 꿈을 되찾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돈이야말로 진정하고도 영원한 행복지수거든. 내 밑에서 일하면 돈은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잖아. 필요한 만큼이 중요해. 돈을 너무 많이 주면 독이 돼. 조금은 모자라게 해 줘야 돼. 그래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거든. 그게 진정한 꿈이고 희망이지. 꿈과 희망을 얻기 위해서 나한테 충성하게 되고. 기브앤 테이크야. 주고 받는 거만큼 공평한 게임이 어딨어. 안 그래."

 

아무리 보잘것없는 꿈이라도 꿈은 성질상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힘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꿈은 또한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걷는 희망에 대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처럼 꿈을 잃으면 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성립하기도 할 것이다. 꿈은 곧 다가올 내일을 여는 문이다. 문은 반드시 스스로 열어야 한다. 난관은 있다. 인상 험악한 문지기들이 그 문을 지키고 있다는 것. 문으로 향하는 걸 겁내거나 아예 문 근처에도 가려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을 볼 수 없다. 새로운 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꿈을 가지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건 고단하다고 지레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꿈꾸기를 그만둔다면 꿈이 후대를 타고 이어져 새로운 기운을 생성하고 새 삶을 보장한다는 걸 영원히 알지 못한다.

 

"멈추어 섰던 꿈과 희망 발전소가 재가동 되었다. 골짜기의 뼈들은 서로 제 짝을 찾아서 결합하였고 그 위로 핏줄이 돋고 살이 돋았다. 죽었던 꽃과 나무들이 살아났으며 바람과 햇빛에도 생기가 스며들었다."

 

아홉 살에 지하철역에 유기된 철수는 어느 날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황금쥐가 휘하를 시켜 지하철역 이정표를 모조리 떼어 가는 걸 목격한다. 황금쥐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갈등하던 부장판사는 이정표가 사라진 지하철역에서 갑작스럽게 실종된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우체통을 만난 그들은 우체통에게서 철수의 출생의 비밀을 듣게된다.

 

세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황금쥐는 세상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경배의 대상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가 지닌 재력과 권력에 대항할 꿈조차 꾸지 않고 사람들은 그의 세계관에 동조하고 그가 벌이는 다양한 사업에 찬동한다. 얼토당토않은 식탐에 사로잡힌 황금쥐가 벌인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지하철역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그 여파로 경영악화에 휘청거리던 지하철업계가 황금쥐 손에 넘어가게 되자 황금쥐는 지하세계 건설에 대한 오래된 꿈을 키운다. 그의 야심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꿈과 희망의 불을 지피는 것뿐. 철수와 부장판사의 손에 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당도한 그들은 꿈과 희망 발전소를 힘차게 돌리는데....

 

엄마를 찾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철수와 정의로운 판결에 대한 이상을 품고 현실과 끝내 타협하지 않은 부장판사는 꿈을 지닌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의정에 속아 꿈을 방기할 때조차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들은 세상을 바꿀 동력으로 화려하게 탄생했다. 희망의 불씨는 작지만 불씨가 큰불의 진원지가 되듯이 그들이 단행한 고된 여정은 사람들에게 꿈을 안겨줌으로써 결정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작게는 철수는 엄마를 만났고 부장판사는 가족과 재회하는 것으로 보상이 이뤄졌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꿈과 희망의 가치에 관한 깨달음을 전 인류를 향해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역할은 선구자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시대가 조금 덜 오염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질과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만 국한한 극히 즉물적인 가치관과 세계관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은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런 꿈이 없다면 세상은 브레이크 잃은 열차처럼 속도를 내다 결국 송두리째 파멸하고 말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세계화 물결이 전세계를 휘감는 동안 대안 세계화는 철저히 잦아들었다. 실제 그들의 목소리가 수면 아래로 잠긴 것이 아니라 세계화가 광풍처럼 우리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온통 점령해 버린 탓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된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게된 세계경제가 바야흐로 대안 세계화에 눈을 돌리게 된 건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안 세계화라는 꿈이 없었다면 위기의 순간에 이 세계가 보았을 황망함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소수자의 꿈이라도 그것이 있기에 무한 독주의 야망을 잠시라도 접을 수 있었을 테고 마지막 파멸의 순간에 되돌아서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꿈은 어떤 형태라도 방기되어서는 안 된다. 꿈꾸지 않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다. 원대한 비전을 갖고 꿈을 꾸고 희망을 곧추세울 때 현실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한 꿈은 요원할 뿐이다. 보다 나은 내일의 꿈은 어느 때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철수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다가 갑작스럽게 부장판사가 등장하면서 그가 철수와 짝을 이뤄 문제를 해결해 가는 설정은 준비 없이 뒤통수를 맞은 듯 낯설고 소설의 주제로 선택된 꿈과 희망의 함의가 대중적으로 어필하기에는 진부한 면이 있다는 걸 숨길 수 없다. 황금쥐로 대표되는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와, 꿈을 사이에 두고 그것을 찾아오려는 인간과 그를 죽이려는 대결구도 또한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이란 원래 엉킨 실타래처럼 난맥상이 심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 못할 구석이 없지 않다.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안타깝게도 사어처럼 변해 가는 이 시대에 그 의미를 의식의 정수리에 깊이 찔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전자의 진부함 또한 상당 부분 가려질 것이다. 꿈과 희망을 일깨우는 일, 무엇보다 시급히 요청되는 일이다. 요즘처럼 살기 힘들다는 말이 자주 들릴 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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