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중 처세어록 - 경박한 세상을 나무라는 매운 가르침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묵은 작가의 다른 책이 나왔다. 인문학 분야에서 잘 나가는 작가로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는 그는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등을 썼다. 그는 조선지식인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단 권으로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2007년)을 썼을 뿐 아니라 〈다산어록청상〉을 연이어 냈다. 이 책, 〈성대중 처세어록〉은 조선 지식인 찾기의 두 번째 책인 셈.

 

2004년 〈미쳐야 미친다〉을 출간한 후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이들 조선지식인들의 인간적인 면이란 현대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는 질문에 그는 "그들은 벽(癖)에 들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난이나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주인되는 삶을 살다 갔다. 그 인간다움은 삶에 대한 통찰력을 일깨워주고 있다. 책에는 김득신이라는 조선중기 시인이 나온다. 그는 본래 아둔한 사람이다. 그러나 수많은 책을 수천번, 수만번씩 읽고 외웠다. 사기의 백이전은 10만번 넘게 읽었을 정도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으로 우뚝 선다. 노력하고 미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것을 그 어렵던 시대의 조선지식인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자신의 노둔함을 탓하지 않고 오로지 노력으로 삶을 일궈낸 그의 인간다움에서 현대인들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고 답했다. 그가 조선 지식인들을 재조명하는 이유다.

 

쉽게 얻으려 하고 얻은 것을 좀체 내주려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들려줄 말을 그가 조선 지식인의 입을 통해 대리 발설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다만 전작인 〈다산어록청상〉의 다산과 달리 성대중은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는 정도뿐이다. 저자의 의도가 '온고지신에 기반한 성찰'이라면 조선시대의 지식인 반열에 든 사람은 누구든지 그에게 간택될 확률이 높은 법일 게다. 성대중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 조금 다르다면 이번엔 처세에 관한 글을 묶었다는 데 있다.

 

처세서에 대한 어감이나 인상이 좋지 않았던지 요즘엔 주로 실용서로 불린다. 여태 실용서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지 않다.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적어놓고 당연하게 판다는 것이 주 이유다. 과거에 요즘 말하는 처세서가 있었을까 싶지만 과거라고 사람 사는 모양이 크게 다르진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맞다면 그 시절이라고 처세에 관한 책들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주로 몸가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지금과 다르다면 다를 터.

 

하지만 성대중 처세어록은 몸가짐에 한정하지 않았다. 저자가 10개의 주제어를 택해 선별 작업을 하고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후 제목을 〈성대중 처세어록〉으로 했을 뿐 이 책의 원전은 10편의 중국고사에 평론을 덧붙인 취언과 댓구로 이루어진 120여 항의 격언을 모아놓은 질언, 100여 편의 국내 야담을 모은 성언으로 이뤄진 청성잡기(靑城雜記)다. 성대중은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영조의 탕평책에 힘입어 청직(淸職)에 임명 된 후 박제가, 박지원, 유득공 등과 교유했다고 전해진다.

 

당대는 북학파가 이용후생의 실천정신을 주도적 기치로 내세운 때였다. 당시(18세기) 조선은 존화양이라는 명분에 쌓여 있었다. 알려진 대로 성리학이 그 토대였다. 하지만 18세기 성리학은 성리학 본연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내성적(內省的) 측면을 유지한 채 실천철학적인 측면은 배제되어 있었다. 북학파는 정덕(正德) 이후에 이용후생이 있다는 성리학적 입장에 정면으로 맞섰다. 명분론에 앞서 청나라의 문물과 학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는 북학파의 주장은 주목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선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던 터라 그들의 실험은 실험으로 그치고 말았다. (앞서 청성잡기의 구성내용과 성대중의 교유 부분, 성리학의 토대 부분은 두산백과사전에서 인용하고 간략하게 정리했음을 밝힌다)

 

그들의 정신만이라도 계승되었으면 좋으련만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영조시대에 만개한 그들의 학문적 성취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당시 사상계와 정치계에 만연한 천석고황과 같은 성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대중이 자신의 호에서 지켜내고 싶었던 것이 '노쇠하지 않는 푸른 성채(靑城)'였다는 점에서 그가 떠 안았을지 모를 시대적 모순이 아프게 전해져 온다.

 

〈성대중의 처세어록〉을 읽는 내내 그런 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대중의 전언은 때론 푸른 바다보다 깊고 청명한 하늘보다 높았지만 곧 비 뿌릴 하늘처럼 흐릿하고 어두워 보였다. 시대적 한계 내에 존재하는 지식인의 괴로움을 반영하는 듯 그의 글은 힘과 함께 현실 감내와 같은 저린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시대가 정신마저 묶어 둘 수는 없었을 터. 그의 정신이 이렇게 글로 남아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다.

 

몸이 스러진다고 정신마저 흩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그를 통해 보아야 한다. 정신을 값싸게 취급하는 현대인들에게 올곧게 살다간 그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어디 경제적 문제에 한정되랴. 정신이 살아야 물질도 제 위치를 찾는 법이다. 천민 자본주의의 폐해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그의 가르침이 매섭게 몰아치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